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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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은 소설가이면서도 시인, 자유주의 논객, 사회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저자에 대한 이러한 수식어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자유주의자라는 단어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유명한 복거일이지만 나는 이 책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경덕출판사. 2006)을 통해서 그와 처음 만났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이 과연 어떤 삶인지가 제일 궁금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제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이란 어떤 삶인가?

 

여기에서 세속적이라는 의미는 돈을 말하는 것이고, 현명하게라는 뜻은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그는 이타주의와 자선 활동에 현명함의 비중을 넣어서 말을 한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이타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바로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인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부분들을 이야기로 꾸며 들려주므로, 소설은 삶의 본질과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성찰한 기회를 독자들에게 준다.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길로는 소설만한 것이 드물다. 이것이 소설에 대한 복거일의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복거일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복거일은 과학 소설 읽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현대 문명이 본질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그래서 지식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반면에, 수학과 과학 지식을 직접 쓰지 않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수학과 과학에 대한 무지로 입는 갖가지 무형적 손실을 점점 늘어난다라고 복거일은 수학과 과학 공부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학 공부를 못해서 문과를 선택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은 단순히 셈만을 가르치는 과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또 치밀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과목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수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한다. 모든 학문은 논리적인 부분을 기본적인 속성으로 가지고 있기에 수학을 못한다면 다른 학문도 잘 할 수가 없다. 물론 문학은 이러한 논리성의 필요성이 다른 분야보다 덜 필요하지만 문학 분야에서도 논리적이라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본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저자의 글 곳곳에서 과학과 관련된 부분이 계속 나온다. 특히나 진화론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람의 모습 등은 독자들에게 색다르게 저자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 같다.

 

문학의 사회 참여 부분에 대해서는 김치수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문학은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배고픈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서양의 격언이 그대로 가슴에 들어온다.

 

200쪽을 조금 넘는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저자는 질적으로 좋은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의 거의 전 부분에서 걸쳐 저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자유주의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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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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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의 그림이 심상치 않다. 쪼그려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쪼그리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세도 아니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은 채 주저앉아 있는 자세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이다. 과연 이 표지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모 코레아니쿠스? 이건 또 어떤 뜻인가? 새로운 인종이 생긴 것인가? 호모속의 코레아니쿠스 종이라는 것인데...저자 진중권은 유럽의 백인들과는 다른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 이 책에서 아주 길게 이야기 하고 있다.

“하비투스(habitus)란 우리말로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다.“ 즉, 저자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하비투스(습속)을 밝히고자 시도하고 있다.

어떤 가치관이나 이 책에서 말하는 ‘습속’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비교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주된 비교대상은 독일과 프랑스이다. 왜! 독일과 프랑스인가! 그것은 진중권이 유학을 갔다 왔기에 그들과 비교한 것이다. 아마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면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이 비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독일인과 한국인은 어떤 습속이 다른가?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앞으로 옥스퍼드사전에도 등장할지 모른다. 한국인의 습속을 대표하는 단어 일테니 말이다. 이데 대한 진중권 표현은 재미있다. “때로 한국의 슬로푸드는 미국식 패스트푸드보다 더 빠르다. 어떤 식당에서는 정말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나 나오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음식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고는 그냥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빠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까지 도달하는데, 200년 이상이 걸렸는데 한국에서는 불과 두 세대 만에 해치웠다. ‘빨리빨리’가 없었다면 한국의 현재 모습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우리는 적응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며 품위 있게 즐길 수 있는 회전목마를 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매일매일이 아주 어지럽다. 이것에 호모 코레아니쿠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기구일 것이다.

지난 몇 년 전부터 ‘TV 토론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 이유를 진중권은 한국의 구술문화에서 찾고 있다. 즉 유럽의 문자문화에서의 논쟁은 지루하나, 구술문화의 논쟁은 오락성이 강하여 구경꾼을 잡아끄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토론을 할 때 구술문화권의 사람은 토론 사안에 대한 논리적, 이성적 해결보다는 그 토론 자체에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모두 걸고 있으니, 논쟁에서의 패배를 죽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게 접근하다보면 논쟁에 모든 것을 걸은채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보는 사람들을 또 편을 갈라놓기에, 시청자들은 마치 투우를 보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 인기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논쟁 당사자 두 명이 피 튀기며 싸우고 한 사람이 죽더라도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피가 튀지도 않고, 비릿한 피 냄새도 맡지 않으며 즐길 수 있으니, 아주 좋은 게임 아닌가. 어쩌면 러시안 룰렛 게임과 같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게 되지만, 진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주위의 구경꾼들은 그 게임에 돈을 걸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에 살고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있거나, 어느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모두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다른 점도 많은데 이는 특수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한국인의 특수성을 하비투스란 쉽지 않은 용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설명을 읽다보면 진중권의 현란한 글쓰기 솜씨를 만날 수 있다. 초지일관 자신의 논지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런 글 속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우리들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워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하비투스에 나타난 우리의 모습은 유럽과 비교해서 부끄러운 모습이다. 표지의 그림이 그런 부끄러워하는 모습인 처럼 보여 기분이 씁쓸하다. 또 이러한 진중권의 논지는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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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주의 리뷰에 뽑혔어요.
 
생명의 진화를 밝힌다 다윈의 종의 기원 Easy 고전 21
이중원.정은주 지음, 박종호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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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원(Origin)이란 말처럼 인간이 좋아하는 단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책들의 제목에서 ‘~기원(The Origin of~)'이 많이 있다. 이 책 <종의 기원>(삼성출판사.2006년)은 이러한 제목을 가진 책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책일 것이다.

생명의 시작(기원)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이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창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론이다. 뉴튼의 만유인력법칙의 발표로 말미암아 유럽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기독교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던 부분에까지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간다. 드디어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은 성경의 창세기를 허물려고 한다. 그런 그의 업적을 이 책 머리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다윈은 인류의 지성사에 큰 획을 긋는 혁명적인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진화론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다윈이라는 사람이 진화론을 세상에 알린 그 배경에 대해서도 알려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진화론은 산업혁명 덕분에 탄생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그동안 사용하여 오던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체 에너지를 찾은 것이 바로 석탄이다. 석탄이 뭍여 있는 곳을 알려고 하다보니 땅속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졌고, 땅 속을 파고 보니 지층이 시루떡처럼 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지층마다 출토되는 동물화석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로 인해 영국에서는 먼저 지질학이 발달하게 된다. 다윈은 찰스 라이엘의 책 <지질학의 원리>를 교과서로 삼아 공부했다. 또 맬서스의 <인구론>은 다윈의 이론에 영감을 주었다. 다윈이 위대한 이론을 이끌어낸 배경에는 라이엘이나 멜서스와 같은 멘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85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은 모든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고 이 책에서 자연선택에 대한 이론이 전개된다. 그리고 12년 후인 1871년 <인간의 유래, 성선택>에 대한 책이 출간된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성선택 이론이 드디어 나타난다.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성선택(Sexual selection)이 바로 진화론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진보’라는 개념은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반해 ‘진화’는 목적이 없다. 시계가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우연히 인간이 된 것이지 마치 인간이 ‘진화의 꽃’인것 처럼 즉, 진화의 마지막 목적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는 이 책 27쪽의 표현을 빌리면 “진화는 우연과 선택을 통해 진행되어 온 역사적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결정적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즉, 진화는 설계되어있지 않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보여준다. “자연선택은 생물들을 환경과 연관지어 점점 더 개량해 가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생물들은 점진적으로 진보하게 됩니다.”(80쪽)

현재 세계적인 진화론자 사이에도 다툼이 있는 부분이 ‘점진설’과 ‘단속평형설’이다. 즉 진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대한 견해로, 점진설은 말 그대로 서서히 진화한다는 입장이고, 단속평형설은 오랫동안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한 순간에 진화한다고 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두 집단 간에도 다툼이 없는 부분은 진화론을 진리를 담고 있는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창조론과의 논쟁 부분에 대해서도 만족할만한 대답이 전개되고 있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근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중요한 것은 화석의 ‘잃어버린 고리’와 ‘지구의 나이’이다. 즉 생물들이 진화했다면 화석에서도 일관되게 진화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과 또 진화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지구는 그만큼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진화론의 반박이 87쪽에 있으며(화석기록에 대한 불완전성) 또 지구의 나이는 과학적으로 분석결과 45억년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45억년이면 진화가 일어나도 엄청나게 일어났을 만큼 길고 긴 시간이다.

이 책은 중1에서 고1학년 학생들의 고전읽기 책 중 한 권이다. 그런데 이 나이의 아이들이 읽기에는 힘든 면이 있다. 특히나 생물학의 용어들은 성인들에게도 힘든데 아이들이야 더 말할 바가 없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이해하게 되면 인간도 모든 동물들과 공통조상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연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가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은 아이들 뿐만아니라 진화에 대한 입문서로서 어른들에게도 좋을 것같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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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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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김영사. 2006)이 베스트셀러 순위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논술과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 시점의 한국 현실에 딱 들어맞는 도서였기 때문이리라. 나도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상업성을 앞세운 제목과 주제, 그리고 내용을 너무 길게 늘어놓음으로 해서 오히려 책값만 비싸진 것 같이 느껴져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다.


그리고는 이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2001)를 읽었다. 이 책은 다산의 편지를 그냥 번역해서 편집한 책이고, 정민교수의 책은 다산의 편지 글을 기본으로 나름대로 체계화하여 살을 붙인 책이지만, 이 책이 정민교수의 책보다 훨씬 담백했고 다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1991년에 초판, 그리고 2001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내가 본 책은 개정판 17쇄였으니, 지난 16년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왜 독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까?

다산 정약용은 정조 시절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 시기였던 정조 치세기에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학문의 융성이었다. 이를 위해 규장각을 설치했다. 그리함으로 많은 책들이 청나라로부터 들어왔으며, 조선에서도 많은 책을 출판했던 시기였다하지만 정조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1년 후 다산은 귀양살이를 시작한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7년간이다. 어떻게 보면 천당에서 지옥으로 간 느낌이 들 것이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박탈감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져있을 상태라고 생각이 되지만, 다산은 이런 와중에 17년간 수많은 책을 집필한다. 저술을 한다는 것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은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또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다산은 학문을 융성시켰던 정조 시절 이미 지식의 대부분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고, 그러한 바탕 위에 사회에서 강제로 격리된 기간은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다산에게나 아니면 지금 다산을 읽는 사람에게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조선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전편에 걸쳐 효제(孝悌)가 키워드로 흐르고 있으며, 지금 한국사회에서 없어져 버린 인성교육(人性敎育)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산은 가정에서의 교육은 아버지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가! 아버지는 바깥에서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일임하고 만다. 이것이 가정 붕괴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권위는 없어지고 다만 권위적인 모습만 남은 아버지는 이미 아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아내로부터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혼율 세계 1위 국가로 만든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 중 대표적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이제 이 땅에서 없어졌다. 이것이 학교를 병들게 했고, 가정을 파탄 내버렸으며, 나라의 지도자까지도 국민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다산이 강진에 유배당했을 때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둘째 형님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및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먼저 반드시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38)

 

위 글은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그 근본이 효제에 있다는 유교의 규범을 말해주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어떤 잘못도 용서되는 요즈음의 세태를 생각하게 되는 편지이다. 이외에도 다산은 아들들에게 글을 쓰는 법, 책을 만드는 법, 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있다. 특히 부지런함()과 절약()에 대한 다산의 편지 내용은 고결한 선비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무릇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은 언제나 지지(地誌)의 축척법을 준수해야 하니 지구가 둥글다는 올바른 이치를 모르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분명치 못하게 되어 결국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경위선(經緯線)을 곤여도(坤與圖)처럼 만든다면 매우 좋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천리를 그릴 때마다 그 사각형의 공간을 확정하고는 먼저 지지를 검토하여 4개의 직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의 축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202~203)

 

위 글은 다산의 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다산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보여준다. 다산은 지도에 까지도 그의 관심 영역을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라는 지리책을 저술하게 된다. 이 편지 외에도 다산은 형에게 학문적인 논쟁을 벌인 편지들도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공부에 있어서는 형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저서하는 법에 있어서도 우선은 경학(經學)을 바탕으로 한 경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어주는 학문이고 국방과 여러 가지 기구에 관한 분야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하는 그의 편지 내용은 다산 공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생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까지 통합하려고 했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윌슨이 통섭으로 전 세계에 큰 소리를 치기 거의 200년 전에 다산은 그것을 실행한 멀티 사이언티스트였던 것이다.

 

닭을 기르려거든 닭에 대해 연구하여 ‘계경(鷄經)’ 같은 책을 저술해 보라고 말하는 다산의 편지 글은 가슴에 와 닫는다. 내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느끼며, 이러한 그의 세계관이 무려 500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나 지난 편지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산이 말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들이 지금도 유효할뿐더러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러한 부분이 이 책을 스테디 셀러로 만든 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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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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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물론 이러한 호기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만들어 왔을 테니 말이다. 현재의 모습이란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이다. 즉 다른 동물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만 적응할 수 있었다. 예컨대 열대의 기후에 적응한 동물은 한대의 기후에서는 결코 생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어떤 기후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자연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호기심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보여 진다.

 

호기심은 왜! 라는 의문에서 시작이 될 것이다. 사물이나 현상의 보이지 않는 속에 감추어져 있는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은 현대의 과학을 낳게 했으며, 이러한 호기심은 인간에게 탁월한 적응력을 부여해주었다. 아마 인간은 미래에 달이나 다른 행성에서도 거주할 것이다.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는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의 호기심은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 많은 것들 중에는 인간이나 혹은 인간의 주된 환경을 파괴하는 것들도 있었다. 항상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이 책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 서재. 2005)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책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벌어진 20세기의 실험 열 가지가 소개된다. 이 실험 중에는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것도 있고 아주 생소한 실험도 있다. 하지만 실험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획기적인 실험을 통해 실험자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것과(악명도 포함), 우리 스스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생각, 언어 등을 꼽을 것이다. 생각이나 언어는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뇌에서 벌어지는 생각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이를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실험을 시도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을 만들어낸 스키너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동물실험을 통해 ‘보상과 강화’가 인간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실험결과 인간들에게는 ‘자유의지’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러한 스키너의 결론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에 의해 시작된 행동주의 심리학은 21세기 다시금 그 중요성이 인정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키너의 실험 이야기가 이 책의 첫 번째 실험이다.

 

살인 사건이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은 새벽 315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으며, 사건의 목격자는 38명이었지만 그들 중 신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도덕적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두 명의 심리학자가 실험에 나선다. 존 달리와 밥 라타네가 그들인데, 그들의 연구결과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책임감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은 적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목격자들의 이러한 행동이 충격으로 마비를 일으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는 ‘작동거부(affect denial)'의 산물이거나 폭력적인 텔레비전의 내용에 종속되어 현실과 텔레비전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탤레비전이 주범‘이라는 가설도 내놓은 학자가 있었다. 이것에 이 책에 나와있는 열 개의 실험 중 세 번째 실험이었다.

 

2005년 출간된 이후 이 책은 꾸준히 팔리는 있는 스테디셀러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이 팔릴까?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실험을 한 10명의 학자들도 인간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그들을 실험으로 내 몬 동인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호기심과 왜라는 의문에 의해서 실험을 하게 되었고, 또 독자들은 같은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도 의문은 계속 남아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 심리를 연구하고 또 뇌과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스스로의 본질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될 만큼 파악하기에 어려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일생 동안 뇌를 연구한 학자도 많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느끼곤 한다. 이것은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일곱 개의 머리가 자라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히드라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 수전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사이언스북스.2005)이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인 로렌 슬레이터의 글 솜씨가 아주 좋다. 그녀는 심리학자이고 또 컬럼니스트이다. 그러니 심리학에 관련된 이러한 주제의 책을 잘 쓸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표면에 나타난 이런 것 때문에 이 책이 잘 쓰여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심리학자들을 만났으며, 또 실험에 참가했던 피실험자까지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또 마약의 복용의 결과를 알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마약을 복용하기도 하는 등,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덕분에 이 책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우리들에게 어필하면서 꾸준히 읽혀지고 있는 요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속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고, 아직도 갈 길은 먼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호기심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서 멸종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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