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표지의 그림이 심상치 않다. 쪼그려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쪼그리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세도 아니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은 채 주저앉아 있는 자세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이다. 과연 이 표지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모 코레아니쿠스? 이건 또 어떤 뜻인가? 새로운 인종이 생긴 것인가? 호모속의 코레아니쿠스 종이라는 것인데...저자 진중권은 유럽의 백인들과는 다른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 이 책에서 아주 길게 이야기 하고 있다.

“하비투스(habitus)란 우리말로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다.“ 즉, 저자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하비투스(습속)을 밝히고자 시도하고 있다.

어떤 가치관이나 이 책에서 말하는 ‘습속’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비교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주된 비교대상은 독일과 프랑스이다. 왜! 독일과 프랑스인가! 그것은 진중권이 유학을 갔다 왔기에 그들과 비교한 것이다. 아마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면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이 비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독일인과 한국인은 어떤 습속이 다른가?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앞으로 옥스퍼드사전에도 등장할지 모른다. 한국인의 습속을 대표하는 단어 일테니 말이다. 이데 대한 진중권 표현은 재미있다. “때로 한국의 슬로푸드는 미국식 패스트푸드보다 더 빠르다. 어떤 식당에서는 정말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나 나오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음식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고는 그냥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빠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까지 도달하는데, 200년 이상이 걸렸는데 한국에서는 불과 두 세대 만에 해치웠다. ‘빨리빨리’가 없었다면 한국의 현재 모습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우리는 적응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며 품위 있게 즐길 수 있는 회전목마를 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매일매일이 아주 어지럽다. 이것에 호모 코레아니쿠스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기구일 것이다.

지난 몇 년 전부터 ‘TV 토론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 이유를 진중권은 한국의 구술문화에서 찾고 있다. 즉 유럽의 문자문화에서의 논쟁은 지루하나, 구술문화의 논쟁은 오락성이 강하여 구경꾼을 잡아끄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토론을 할 때 구술문화권의 사람은 토론 사안에 대한 논리적, 이성적 해결보다는 그 토론 자체에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모두 걸고 있으니, 논쟁에서의 패배를 죽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게 접근하다보면 논쟁에 모든 것을 걸은채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보는 사람들을 또 편을 갈라놓기에, 시청자들은 마치 투우를 보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 인기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논쟁 당사자 두 명이 피 튀기며 싸우고 한 사람이 죽더라도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피가 튀지도 않고, 비릿한 피 냄새도 맡지 않으며 즐길 수 있으니, 아주 좋은 게임 아닌가. 어쩌면 러시안 룰렛 게임과 같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게 되지만, 진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주위의 구경꾼들은 그 게임에 돈을 걸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에 살고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있거나, 어느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모두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다른 점도 많은데 이는 특수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러한 한국인의 특수성을 하비투스란 쉽지 않은 용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설명을 읽다보면 진중권의 현란한 글쓰기 솜씨를 만날 수 있다. 초지일관 자신의 논지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런 글 속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우리들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워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하비투스에 나타난 우리의 모습은 유럽과 비교해서 부끄러운 모습이다. 표지의 그림이 그런 부끄러워하는 모습인 처럼 보여 기분이 씁쓸하다. 또 이러한 진중권의 논지는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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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주의 리뷰에 뽑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