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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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재미있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 처음 접한 말이 있는데 ‘오쟁이지다’와 ‘정자전쟁’이었고, 그 책의 제목은 <일부일처제의 신화>(해냄.2002년)였다.

‘오쟁이지다’의 사전적인 뜻이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私通)하다”라는 것이었다. 즉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을 하고 더 나아가 애기를 분만했으나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것으로 알고 부양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쟁이지다는 멍청한 수컷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일은 한국 사회에서도 심심히 않게 일어나는 일로 가끔 신문 가십 기사에 나오기도 한다.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빠와 전혀 닮은 점이 없어 DNA검사를 해보니 아이가 아버지와 생물학적으로 친자 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그 남자는 정말 오쟁이 진 것이 된다. 이런 일이 우리 선조들에게도 어느 정도 발생했기에 ‘오쟁이지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비율이 약 10퍼센트 정도는 된다고 하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자전쟁’이란 여자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성 전략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했었고 그 책에서 인용한 것이 바로 이 책 <정자전쟁>(이학사.2007년)이었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를 정말 잘 모르겠고 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다. 물론 역으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 책에서 보면 인간의 암컷은 우리가 생각하기 보다는 정숙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여자는 그 나름대로 성 전략을 짠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성 전략을 양(量)에다가 두고 있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많은 상대하고 섹스하려고 한다는 것이고, 여자의 전략은 질(質)에다가 두고 있기에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하고 섹스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남편보다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의 유전자를 받고 싶어지기에 남편과 장기적인 부부(성)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단기적(1회 일수도 있다)인 관계를 가져서 임신을 하려고 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여자의 몸 속(내성기)에는 두 사람(그 이상 일수도 있다)의 정자가 섞여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이 다툼을 바로 ‘정자전쟁’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여자는 자신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정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자! 독자들이여 이런 이야기가 진실로 들리는가? 저자인 로빈 베이커는 진실이라고 외치고 있다.

인간의 암컷들은 일부일처제에 맞을 만큼 정숙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자신의 후손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게 하기 위해 여자는 기꺼이 다수의 남자와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생명체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인데, 이 책은 온통 이 번식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른 일곱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고 이를 진화생물학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에피소드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로 생각된다. 그 사건을 보면 동성애, 자위, 강간 등도 아주 좋은 성 전략이라고 결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저자의 글 솜씨나 논리를 나는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인 ‘인간이란 존재는 유전자를 배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강간이라는 것도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성 전략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있다. 이에 대한 논거를 전개하는 내용이 데이비드 부스의 <이웃집 살인마>에서 우리는 모두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즉 우리 안에는 강간범이나 살인자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조상에는 반드시 강간범과 살인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보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의사(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유전자라는 것이고, 우리의 몸은 유전자 기계라는 도킨스의 사고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도 ‘유전자결정론’이란 비판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유전자 결정론이란 비판과 아울러 어쩌면 난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간의 성생활을 지나치게 표현하고 있다는 독자들의 반대에 두려워서 인지,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일부일처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이 유명하고 재미있는 책은 분량(400쪽)이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웃음도 나오는 부분도 있고, 심각하게 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내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정자전쟁이 손실보다는 이익이 많다면 이는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후손의 유전자 안에 고이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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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1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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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Vienna coffee)의 부드러운 크림 맛을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 결과 생겨난 커피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비엔나! 다른 말로 하면 빈(Wien)이다. 빈에 가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곳에는 항상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도 한다. 이 책 <빈이 사랑한 천재들>(열대림. 2007년)은 빈에서 활동한 6명의 천재들을 소개하고 있다. 과연 이 책 제목에서처럼 빈이 그들을 사랑했을까?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 브르크너, 브람스, 슈트라우스 말러가 빈 출신 음악가들이다. 그러니 빈이란 도시에서는 항상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은 월드컵이 열린 해이기도 하지만,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오스트리아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모차르트 마케팅을 퍼부었다. 그 덕에 빈과 모차르트의 탄생지인 잘츠부르크에는 엄청난 관광객이 몰렸다고 하니, 위대한 예술가 한 명의 위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그 모차르트도 이곳 빈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본 그의 삶은 우울했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그의 교향곡 몇 곡의 음조는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다. 또 저자는 베토벤을 만난다. 음악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인 청력을 잃으면서도 작품에 몰두하는 베토벤의 모습과 이로 인한 인간적인 갈등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읽는 나도 괜스레 슬퍼진다.

저자는 그곳에서 또 클림트, 코코슈카, 실레, 쇤베르크와 같은 화가들을 만난다. 클림트와 실레는 내가 알고 있는 화가이다. 클림트는 작년에 그에 관한 책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내게는 더욱 친숙히 다가온다.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클림트였지만, 클림트를 차지한 마지막 승자는 에밀리 플뢰게 라고 생각한다. 저자도 바로 에밀리 플레게를 보고 싶어 박물관으로 향한다. 카를츠 광장의 빈 역사박물관으로 간 저자는  에밀리를 먼저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에곤 실레의 <자화상>도 오스카 코코슈카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대작들 도 지나친다.. 그가 만나고 싶어하던 에밀리 플레게는 벽면의 중앙 부분에 서 있었으며, 턱을 살짝 쳐든 오만하고 도도한 모습이라고 이 책에 적혀져 있다. 내가 그곳에 갔더라도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나도 클림트의 키스 같은 작품보다도 오히려 에밀리 플레게를 만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황금빛 에로티시즘의 거장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보다도 나는 클림트의 사랑을 차지한 에밀리 플뢰게라는 여자에게 더욱 마음이 끌린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21세기 후반부터 불어 닥친 뇌과학과 신경과학 덕분에  많이 허물어진 상태이지만 20세기에 그는 여러 분야에 영감을 준 정신분석학자이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도 그의 영향이라고 한다. 지금도 프로이트가 모든 갈등의 근원을 성이라고 보는 것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는 은연중에 우리 곁에서 마치 진실인양 자리하고 있다.

아돌프 로스와 오토 바그너 이 두 사람은 건축가이다. 건축을 잘 모르고 또한 빈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좀 감흥이 일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들어있는 두 사람의 작품인 건축물을 보면 예술사적 의미는 이해가 안가더라도 멋지다는 탄성이 나온다. 이처럼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야스퍼스의 말은 항상 옳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빈이라는 도시는 인류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국의 찬란했던 영광이 아마 이들의 예술적인 능력을 잡아둘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그 막강한 제국의 영광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에 태동한 여러  영웅이나 천재들의 모습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전 지구인에게 감동과 환희를 주고 있다.

2005년 여름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관광청의 초청으로 몇 명의 기자들과 처음으로 빈에 갔던 저자는 현재 주간조선 기자이다. 2005년 11월 그는 두 번째로 빈을 방문한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취재로 빈과의 만남을 시작했지만 그는 빈에 빠져들고 드디어는 2006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그곳에서 보내며 이 책을 쓸 준비를 마친다. 저자 덕분에 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또 그 속에서 삶의 영욕을 맛본 6명의 천재를 만나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빈에 가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나도 에밀리 플레게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제목이 거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들이 사랑한 빈’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천재들로 인하여 빈이 더욱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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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길을 묻다 - 영상아포리즘 01
김판용 지음 / 예감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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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진들과 시를 읽는 것 같은 에세이가 어우러진 따스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 책 <꽃들에게 길을 묻다>(2007년2월) 안에 들어있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도 만날 수있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서는 정말 자연은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가 말하는 나무와 식물에 대한 표현을 한 번 살펴보자.

“(나무는)땅 밑의 유기물들을 공기로 정화시키지만 몸은 항상 깨끗하다....나무는 제 몸이 더러우면 제 삶을 마감할 뿐 남까지 더럽히지는 않는다.”

“식물들은 어두운 땅 속을 뿌리로 더듬어서 세상이 버린 썩고 추한 것들을 걸러내 빨강과 노랑, 보라색의 꽃을 피운다.”

나무와 식물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인간이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경구로 보이며, 저자는 우리 주위에 있는 미물에서 조차도 그 안에 오롯이 담겨있는 의미를 읽어내고 있다.

저자는 자연을 통하여 사람 세상을 보고 있다. 즉 자연 속에서 우리네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찾고 있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러다보니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기운이 훈훈하다.

사월초파일, 즉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날 저자는 사찰에 간다. 그곳에 달려있는 연등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글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어머니일 것이다. 어머니는 그 자체가 사랑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글이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내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네명의 자식을 키우느라고 쉴 틈 없이 젊은 시절을 사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또 자식들이 다 성장했음에도 불구하며 자주 전화를 거시면서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말에 때로는 귀찮아하며 통화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내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야 겠다.

저자는 세상에 없어져 가는 것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꽃’은 피우기가 무섭게 진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듯이 아름다움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다. 또 인위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간이역’과 ‘폐교된 시골 학교’의 모습 속에서 그것들은 없어져 가고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아닌지....


“겨울, 눈 속에서도 꽃은 핀다. 동백꽃도 매화도 눈 속에서 꽃이 핀다. 매화 중에서도 홍매는 눈 속에서 피어야 색조 대비가 선명해서 더 아름답다. 흔히 눈 속에서 은은한 향을 내며 피어있는 매화를 아취고절(雅趣孤節)이라고 부르며 선비의 꽃으로 취급한다.”

“여름 아침에 길을 걷다보면 보랏빛이 더욱 싱싱하게 보이는 달개비꽃을 만날 수 있다. 둘이 나란히 피어 있는 달개비꽃을 보면 마치 밤을 같이 보낸 신혼부부처럼 수줍고 청초해 보인다.”

이렇게 저자는 우리 주변에 들에 피어 있는 꽃을 보며, 그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해석해내고 있다. 이런 글을 읽고 들에 나아가 이름 모를 꽃들을 본다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보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록된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책을 다 읽고 나니 세상을 보는 내 시야가 달라진 것 같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만큼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이제 들에 풀이나 꽃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인 봄이다. 휴일에 들로 나가 만물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싶다.  그리고 나도 그 꽃들에게 삶의 의미를 아니 ‘길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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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인가, 국가인가? -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 서강인문정신 12
이종욱 지음 / 소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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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천문학자인 박창범의 책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천문기록이 실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인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내용이다. 실상 천문현상은 물리학적인 법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기에 과거의 별자리 모습조차도 컴퓨터를 통해서 그대로 재연할 수 있다. 그 결과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떤 사서보다도 정확했다. 즉 삼국사기의 초기에 나와 있는 기록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과서에 의하면 고구려는 태조왕, 백제는 고이왕, 신라는 내물왕 시대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 배웠다. 즉 세 왕 때부터 삼국이 고대국가 체제로 들어갔고, 그 이전에는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국가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배웠다.

그렇게 된 이유는 쓰다 소키치(津田 左右吉)라는 일본 학자에서 기원한다. 그는 중국 정사서 중의 하나인 <삼국지> 한조의 기록을 기본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삼국지>에 맞지 않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즉 일제의 한반도 지배를 위한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가 동원된 것이다. 그러니까 식민사학은 정치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만들어진 역사이다. 또한 텍스트로 사용한 <삼국지> 조차도 중국 세계 질서 속에서 주변을 오랑캐로 보는 관점에서 작성한 민속지이다.  민속지의 자료를 가지고 정치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이다.

하지만 해방이후 식민사학을 몰아내면서 한국사를 새로 세운다고 했지만 한국 학자들조차도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수록 내용을 불신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데, 다른 단추를 아무리 제대로 끼우려고 노력해도 옷은 비뚤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국사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첫 단추를 바로 끼우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인 것이다.

나는 이 책 <민족인가, 국가인가?>(소나무. 2006년)의 저자인 이종옥교수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그의 ‘역사하는 방법론’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그의 책을 여러권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그가 외롭게 주장했던 내용들이 이 책에서 정리가 되고 있고, 자신의 학문을 통해 얻은 진실이 한국의 통설에 맞지 않아, 학회의 논문집에 자신의 논문을 실어주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싸움을 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런 학자적 양심이 내게는 좋아보였던 것이다.

1990년대 말에 발굴이 이루어진 풍납토성의 유물을 통해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사의 통설로 받아들여진다면 많은 사람들의 박사학위 논문이 휴지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더욱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다. 또한 신라의 건국 현장인 나정의 발굴도 이종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원삼국관’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가진 전시실의 이름도 바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이종옥의 견해에 모든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 책에서는 여러 개의 비슷한 논문을 나열하다 보니 동일한 개념적 정의가 계속 나온다. 여러 개의 논문을 한 책에 담으려면 전체적인 얼개 속에 이론을 전개해 나감으로 독자들에게 중복된 내용을 추려서 소개해야 했다. 그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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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재앙 보고서 - 지구 기후 변화와 온난화의 과거.현재.미래, E Travel 1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이섬민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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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섭씨 0.6~1도 올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 계속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무려 5도 정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온도 1도의 상승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교차만 하더라도 10도 이상이나 차이가 나기에 이 정도는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체온을 한 번 생각해보자. 체온이 1도만 높아지더라도 우리 몸은 이 열을 내리기 위해 우리 몸 안의 에너지를 사용해 땀을 내서 체온을 낮추는 체온 자동 조절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러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체온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하지만 체온이 5도가 올라간다고 하면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우리의 생명에 관계가 되는 문제가 된다. 5도가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5도라는 작은 온도가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을 만큼 큰 온도이다. 그런데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의 온도가 5도가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위적 강제력(anthropogenic forcing)’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후 변동을 말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가 더워진 원인의 약 80%가 인간에 의한 것이며 자연적으로 된 것은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이 쉬워질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원인 제공을 한 인간의 행위를 없애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우선은 태양 에너지가 제일 가까이 있을 것이고, 또 수소 에너지 이용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한 시설에도 재생 불가능한 지구의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고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의 활용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이 위기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5도 상승한다면 지구의 모든 생태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아마 그린란드의 빙상이나 서남극 빙상이 녹는다면 해수면의 높이가 지금보다 11미터는 높아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육지 공간이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는 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는 45억 년 전에 생성된 후 끊임없이 기후 변동이 있어왔다.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지구의 많은 생물종들이 멸종되고 또 새로 태어났을 만큼 극단적인 변화도 많이 있었지만 이는 자연 질서의 일부이다. 하지만 인위적 강제력으로 인해 지구의 변화가 급격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살펴보면 해류 패턴의 변화, 지구 궤도의 변화, 태양 에너지 양의 변화, 화산 분화, 빙하 등 매우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기후가 결정되는 지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인간의 과학 수준은 아직도 이 지구의 비밀을 밝혀내기에는 초보 수준임에 틀림이 없다.


제임스 러브록의 유명한 책 <가이아>를 보면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고 하는 ‘가이아 가설’이 나온다. 지구는 유기체와 같기에 항상성이 있어서, 항상 정상적인 평형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가설은 환경론자들이나 회의적 환경론자들 모두에게 인용된다. 특히나 회의적 환경론자들은 이대로 놔두어도 ‘가이아 가설’ 덕분에 지구는 평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성도 임계치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몸을 한 번 예를 들어보더라도 그렇다. 인간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몸의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깨지면 병에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한다. 그 균형이 깨지는 점이 바로 임계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도 그 임계치가 존재할 것인데,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그 임계치가 얼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회의적 환경론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는 흔히 과학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즉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하지만 아직 자연의 원리를 파헤치지 못하는 인간 과학 수준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해서 이를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무시한다면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가 재연된다는 것에 나는 돈을 걸겠다.


이 책은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가 2005년 봄호 <뉴요커 New Yorker>지에 기사 세 편을 올린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구의 재앙이 다가오는 무수히 많은 현장을 답사하며 해당 전문가들을 만나보는 등 발품을 팔며 글을 쓰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철저한 직업 정신 속에서 마치 미스터리를 파헤치려는 탐정과 같이 활동하는 그녀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은 환경 관련 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선동적’인 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런 점이 이 책의 장점으로 보여진다.


‘내일이면 늦으리!’.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일 것이다. 정말 우리는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어리석은 인간의 마지막 이성을 기대하며 희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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