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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인가, 국가인가? -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 ㅣ 서강인문정신 12
이종욱 지음 / 소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몇 년 전에 천문학자인 박창범의 책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천문기록이 실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인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내용이다. 실상 천문현상은 물리학적인 법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기에 과거의 별자리 모습조차도 컴퓨터를 통해서 그대로 재연할 수 있다. 그 결과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떤 사서보다도 정확했다. 즉 삼국사기의 초기에 나와 있는 기록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과서에 의하면 고구려는 태조왕, 백제는 고이왕, 신라는 내물왕 시대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 배웠다. 즉 세 왕 때부터 삼국이 고대국가 체제로 들어갔고, 그 이전에는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국가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배웠다.
그렇게 된 이유는 쓰다 소키치(津田 左右吉)라는 일본 학자에서 기원한다. 그는 중국 정사서 중의 하나인 <삼국지> 한조의 기록을 기본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삼국지>에 맞지 않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즉 일제의 한반도 지배를 위한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가 동원된 것이다. 그러니까 식민사학은 정치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만들어진 역사이다. 또한 텍스트로 사용한 <삼국지> 조차도 중국 세계 질서 속에서 주변을 오랑캐로 보는 관점에서 작성한 민속지이다. 민속지의 자료를 가지고 정치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이다.
하지만 해방이후 식민사학을 몰아내면서 한국사를 새로 세운다고 했지만 한국 학자들조차도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수록 내용을 불신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데, 다른 단추를 아무리 제대로 끼우려고 노력해도 옷은 비뚤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국사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첫 단추를 바로 끼우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인 것이다.
나는 이 책 <민족인가, 국가인가?>(소나무. 2006년)의 저자인 이종옥교수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그의 ‘역사하는 방법론’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그의 책을 여러권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그가 외롭게 주장했던 내용들이 이 책에서 정리가 되고 있고, 자신의 학문을 통해 얻은 진실이 한국의 통설에 맞지 않아, 학회의 논문집에 자신의 논문을 실어주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싸움을 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런 학자적 양심이 내게는 좋아보였던 것이다.
1990년대 말에 발굴이 이루어진 풍납토성의 유물을 통해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사의 통설로 받아들여진다면 많은 사람들의 박사학위 논문이 휴지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더욱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다. 또한 신라의 건국 현장인 나정의 발굴도 이종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원삼국관’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가진 전시실의 이름도 바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이종옥의 견해에 모든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 책에서는 여러 개의 비슷한 논문을 나열하다 보니 동일한 개념적 정의가 계속 나온다. 여러 개의 논문을 한 책에 담으려면 전체적인 얼개 속에 이론을 전개해 나감으로 독자들에게 중복된 내용을 추려서 소개해야 했다. 그것이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