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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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재미있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 처음 접한 말이 있는데 ‘오쟁이지다’와 ‘정자전쟁’이었고, 그 책의 제목은 <일부일처제의 신화>(해냄.2002년)였다.

‘오쟁이지다’의 사전적인 뜻이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私通)하다”라는 것이었다. 즉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을 하고 더 나아가 애기를 분만했으나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것으로 알고 부양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쟁이지다는 멍청한 수컷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일은 한국 사회에서도 심심히 않게 일어나는 일로 가끔 신문 가십 기사에 나오기도 한다.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빠와 전혀 닮은 점이 없어 DNA검사를 해보니 아이가 아버지와 생물학적으로 친자 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그 남자는 정말 오쟁이 진 것이 된다. 이런 일이 우리 선조들에게도 어느 정도 발생했기에 ‘오쟁이지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비율이 약 10퍼센트 정도는 된다고 하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자전쟁’이란 여자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성 전략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했었고 그 책에서 인용한 것이 바로 이 책 <정자전쟁>(이학사.2007년)이었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를 정말 잘 모르겠고 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다. 물론 역으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 책에서 보면 인간의 암컷은 우리가 생각하기 보다는 정숙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여자는 그 나름대로 성 전략을 짠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성 전략을 양(量)에다가 두고 있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많은 상대하고 섹스하려고 한다는 것이고, 여자의 전략은 질(質)에다가 두고 있기에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하고 섹스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남편보다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의 유전자를 받고 싶어지기에 남편과 장기적인 부부(성)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단기적(1회 일수도 있다)인 관계를 가져서 임신을 하려고 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여자의 몸 속(내성기)에는 두 사람(그 이상 일수도 있다)의 정자가 섞여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이 다툼을 바로 ‘정자전쟁’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여자는 자신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정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자! 독자들이여 이런 이야기가 진실로 들리는가? 저자인 로빈 베이커는 진실이라고 외치고 있다.

인간의 암컷들은 일부일처제에 맞을 만큼 정숙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자신의 후손이 좋은 유전자를 가지게 하기 위해 여자는 기꺼이 다수의 남자와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생명체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인데, 이 책은 온통 이 번식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른 일곱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고 이를 진화생물학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에피소드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로 생각된다. 그 사건을 보면 동성애, 자위, 강간 등도 아주 좋은 성 전략이라고 결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저자의 글 솜씨나 논리를 나는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인 ‘인간이란 존재는 유전자를 배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강간이라는 것도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성 전략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있다. 이에 대한 논거를 전개하는 내용이 데이비드 부스의 <이웃집 살인마>에서 우리는 모두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즉 우리 안에는 강간범이나 살인자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조상에는 반드시 강간범과 살인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보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의사(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유전자라는 것이고, 우리의 몸은 유전자 기계라는 도킨스의 사고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도 ‘유전자결정론’이란 비판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유전자 결정론이란 비판과 아울러 어쩌면 난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간의 성생활을 지나치게 표현하고 있다는 독자들의 반대에 두려워서 인지,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일부일처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이 유명하고 재미있는 책은 분량(400쪽)이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웃음도 나오는 부분도 있고, 심각하게 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내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정자전쟁이 손실보다는 이익이 많다면 이는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후손의 유전자 안에 고이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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