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을 찾아서 - 제노그래픽 프로젝트
스펜서 웰스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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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같은 주제의 책이 두 권 출간이 되었다. 한 권은 <최초의 남자>(사이언스북스.2007년)이고 한 권은 이 책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말글빛냄.2007년)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염색체를 통해 인간의 기원을 찾는 프로젝트인 제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를 다루고 있다. 제노그래픽은 유전자(gene)와 지리학(geographic)을 합성한 단어이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저자는 같은 사람이었다. 스펜스 웰스라는 이름의 젊은 학자이다 그렇다면 제노그라픽 프로젝트란 무엇일까.

이는 유전자연구를 통해서 호모 사피엔스가 언제 탄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한 종으로서 우리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것이다.

인간의 습성 중 하나는 어떤 대상이 되는 사물이 있을 때 그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책으로 말한다면 소설이나 인문 그리고 실용과 같이 어떤 기준을 정해서 분류하듯이 이 지구상의 생물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어떤 기준에 의거해 분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너무 많기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카를 폰 린네(Carl von Linne)는 세계의 모든 종에 대한 분류법을 고안했다. 이 분류법은 이명법(二名法, binominal nomenclature)으로 생물의 학명을 속(屬)과 종(種)으로 표기하는 체계로 그는 인간에게 호모(속) 사피엔스(종)(homo sapiens)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또한 린네는 호모 사피엔스의 외적인 면모를 기준으로 아페르(아프리칸), 아메리카누스(아메리칸), 아시아티쿠스(아시안), 에우로파이우스(유러피안) 그리고 몬스트로수스로 아종을 정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예전에는 인간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통해서 호모 사피엔스를 연구하려고 했다. 형태학(morphology)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방법은 20세기 중반에 DNA를 발견하면서  바뀌게 된다. 즉 유전자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기원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분자생물학의 진보는 유전적 성질의 핵심, 즉 분자 DNA의 해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왜 현재와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되었는가 하는 매커니즘의 연구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DNA는 간단한 암호로 적힌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25쪽)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쉽게 그 안에 담긴 비밀을 내놓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1980년대에 이르러서 DNA 염기서열 분석기술을 앞세워 미토콘트리아 DNA를 연구하면서 인간 최초의 여자인 이브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녀의 이름은 ‘미토콘트리아 이브’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이브의 짝인 아담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Y염색체 ’를 분석해낼 만큼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과학은 Y염색체에서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는 수백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Y염색체’는 인간의 기원을 밝히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Y염색체를 제외한 모든 염색체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염색체를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다양한 재조합을 통하여 인간은 진화의 길을 걸어오긴 했지만, 많은 재조합은 그만큼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밝히는 데에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Y염색체는 뒤섞임이나 재조합 없이 대대로 남성에게만 전해진다. 그래서 Y염색체가 유전학자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Y염색체는 재조합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각 지역에 사는 남자들의 Y염색체를 채집해서 연구하면 Y염색체의 특정한 부분에 유전표지가 같은 그룹이 있다. 이들은 '하플로그룹(Haplo group)'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공통조상을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그 공통조상이 언제 어느 곳에 존재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만을 가지고 인류의 지구상에서의 모든 여정을 파헤칠 수는 없다. 고고학, 기후학, 언어학 등 다른 분야의 자료가 더해짐으로써 우리는 과거 우리 선조의 모습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유전자 증거는 ‘누가’, ‘어디에서’,‘언제’라는 물음에는 대답할 수 있지만 ‘왜’와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는데, 이는 고고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학적인 증거를 종합해보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미토콘트리아 이브’는 17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고, 아담은 6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의 탄생시기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왜일까?

“이브와 같은 시대에 존재하던 남성 혈통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초기 인류의 성적 습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통집단에서는 소수의 남자들이 종족번식을 도맡는다”(193쪽)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나의 Y염색체는 어떤 하플로그룹에 속해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언제 출발했으며, 언제 한반도에 도착했는지, 또 그들의 그 먼 여정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가 궁금하다. 제노그래픽 프로젝트가 더욱 발전한다면 아마 나의 의문이 풀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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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
김기봉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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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는 단어처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그리 많지 않다. 음식문화에서부터 주거문화, 문화재 등 문화라는 말은 항상 우리의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즉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을 생각해서야 대답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정의도 다양할 할 것이다. 그것은 문화의 정의를 딱히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 사전적 의미로서 ‘문화’를 알아보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국어 사전적 정의를 보면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부분 전체가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우리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유전적인 요소와 태어난 이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요인이 합쳐져서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문화’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음식문화를 한 번 생각해보자. 음식이란 일단 재료에 의존하는 바가 제일 클 것이다. 그런데 그 재료라는 것이 공간의 환경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추운 지방과 더운 지방에서는 전혀 다른 재료가 생산될 것이며, 강수량의 다소에 의해서도 달라질 것이고, 가축의 경우도 많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식문화란 오랫동안 어느 일정 지역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해서 그들에게 생존의 기본이 되는 먹거리에 대한 샐활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거주하는 공간이 다르다면 음식문화도 다른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음식문화란 철저하게 일정집단에 기초한 것이기에 이의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편견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화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엄청나게 많이 존재할 것이다. 이 책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7년)에는 주요한 우리의 문화를 29가지를 각각의 필자가 소개하고 있다.

그 키워드 중 일부만 보더라도 ‘마니아 문화’, ‘독립영화’, ‘종교’, ‘양성 평등 문화’, ‘익스트림 스포츠’, ‘잘 죽음’, ‘행복 산업’ 등 어찌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포함되어 있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실제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29개의 키워드들이 나름대로의 일관성 있는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문화지형도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 다양성과 상대주의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단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에는 획일화와 단일화, 표준화가 성공의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군대와 같은 조직에서는 이런 점들이 전쟁의 승리에 직결이 되는 점이다. 한국 현대에서 있어서도 군사독재시절에는 획일화가 문화가 주된 흐름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큰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몸을 경량화해야만 빠르고 쉽게 변화를 수용할 수가 있다. 이런 부분이 21세기에 요청되는 부분이다.

그러한 부분이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의 패턴이다. 이미 20세기의 산업사회는 지나갔고,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문화로 바꿈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키워드는 ‘대량(mass)’이라는 접두어였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매스 미디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 대량은 쓸모가 없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생산 시스템을 보더라도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각자의 개성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너와는 다른 나, 혹은 그들과는 다른 우리 등 서로 다름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고, 또 그 다름에 대해 가치를 부여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입장에 있는 것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입장도 존중받으며 소수가 결코 부끄러워하고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 바로 21세기가 그런 사회이다. 이 책을 읽으면 21세기 우리 한국인들에게 닥쳐온 다양한 문화 패턴을 읽어낼 수가 있다.

이런 패턴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것 역시 각자의 가치관에 의해 선택될 것이며, 그것이 소수의 선택이더라도 사회 전체에서 기꺼이 다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21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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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 - 중국문학자 김월회가 말하는 역동적 고전 읽기
김월회 지음 / 안티쿠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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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 천 년도 더 지난 시기에 중국에서 쓰여 진 많은 책들이 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니 대나무(죽간)에 기록한 글들이다. 이런 고전들이 시공간이 다른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안티쿠스.2007년)은 위의 의문에 답을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으로 고전에 있는 텍스트를 그 자체의 ‘결대로’ 읽는 한편 그 안에 스며있는 제반 맥락(context)을 ‘폭 넓고도 속 깊게’ 복원하여 읽는 ‘내재적(immanent) 일기’를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논어>의 독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한 번 들어보자.

내재적 읽기의 핵심은 ‘해당 텍스트가 생성되는 시점에 텍스트에 내재했던 결을 읽어내는 것, 즉 그 시대의 가치관과 환경, 또 저자의 사상 등을 이해한 상태에서 고전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해당 고전 텍스트에 있어서 저자의 글쓰기 관습, 통사, 문자의 탐구에 익숙해야 한다고 하니 고전을 직접 읽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맹자>라는 책을 이해하려면 맹자라는 인물에 대해 우선 알아야 하며, 또한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53~BC 221)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 <노자>란 책을 읽을 때는 항상 <논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노자가 늘 공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문을 보면 공자가 “군자는 한 용도에만 쓰이고 마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君子不器)”고 하자, 노자는 “큰 그릇은 완성이 미뤄진다(大器晩成)” 고 말하고 있다. 즉 노자의 텍스트는 공자를 비교대상으로 삼았기에 <논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노자>도 읽어낼 수 없다는 의미니, 책을 읽는 순서는 <논어>를 먼저 읽고 난 후에 <노자>를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2부는 고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시경, 詩經>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시(詩)라는 말은 원래 <시경>에 실린 고대 중국의 노래 가사를 가리켰다. 이 <시경>은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춘추시대 중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까지 민간이나 조정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를 모아둔 책이다. 그런데 이 시경에 수록된 시는 아주 음란한 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경전이란 의미가 통치의 정통성과 합법성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책인데 이런 책에 음란한 부분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을까? “누가 봐도 선정적인 시를 성인이 그대로 놔둔 까닭은 음란했던 세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또 <시경>이 경전인 이류를 텍스트 바깥에서 찾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경>은 아주 깨끗해서 사람들을 교화하는 책인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면 읽는 이가 음탕한 자라는 것이다. “음란함이 <시경>의 텍스트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해석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장자>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자. 중국에게 있어서 이민족들은 모두 오랑케였다. 즉 자신들만이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족들은 모두 미개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오랑케의 문명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바로 ‘불교’였다. 즉 유교를 통한 통치에 우선을 두었던 그들에게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중국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얕보았던 오랑케의 사상이 중원에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을 중국인들은 어떻게 해석해 내었을까? 이 부분에서 노자가 등장한다. 중국인들의 습성이 일단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 속도와 정도가 상상을 벗어나는 게 중국인의 습성이라고 한다. 즉 중국인들은 도가를 방법적으로 활용하여 불교라는 외부의 상당한 도전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즉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통하여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핑계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 책을 쭉 읽어가면서 고전이 시공간을 떠나서 오랫동안 살아있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도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심성이 있는 것인데, 고전은 그러한 보편적인 부분에 대해 유의미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고, 또한 시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함으로 보편적인 부분을 두텁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지적인 책으로 고전 읽기의 길라잡이 해당하는 의미 있는 책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중국 문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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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8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
심형철 지음 / 포스트휴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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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천 백 여 년 전 흉노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한무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나라와의 연합이었다. 이를 위해 장건을 파견했지만 원래의 파견 목적이었던 흉노에 대항하고자 하는 연합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장건은 후세 인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바로 실크로드이다. 그가 연합을 하기 위해 다녀온 길이 바로 실크로드였던 것이다.

이 길을 통하여 장건 이후 동양과 서양은 2000년 이상을 교류해왔다. 실크로드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을 통해 비단이나 도자기, 나침반, 종이, 인쇄술, 화약 등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졌으며, 결과적으로 유럽의 문명의 기반구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이 실크로드가 가지고 있는 문명사적인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이 실크로드를 보자. 실크로드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를 기능적으로 해석한다면 길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우리가 고속도로에서 느끼는 것처럼 물자가 수송되는 길의 수준에서 의미를 읽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길을 통해서 물자만 오고간 것은 아니다. 이 길을 통해 사람도 그리고 사상이나 종교 등도 교류되었던 것이다.

실크로드는 한 가지 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세 군데 길을 합쳐 실크로드라고 부르는데, 첫 번째로 오아시스 초원로는 중국의 시안에서 출발해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북위 40도 정도의 위도에 걸쳐있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연결된 길을 말한다. 오아시스로 이외에도 실크로드 초원로와 실크로드 해양로가 존재한다. 그러나 흔히들 실크로드라고 하면 실크로드 오아시스로를 말한다.

이 책 <꿈의 실크로드를 찾아서>(포스트휴먼.2007년)는 중국의 오아시스로에 있는 많은 오아시스 도시를 방문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즉 이 책의 특징은 문명이나 문화, 교류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실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지리적으로는 중국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저자 심형철은 중국에서 민속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딴 사람으로, 중국 측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삶에 대해 공부를 한 사람이기에 이 책에서 그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측 실크로드는 물론 서안에서 시작을 하지만 사막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은 둔황에서부터 카스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 지역에 지금은 이주정책으로 말미암아 한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원래는 한족이 거주하던 지역이 아니었다. 웨이우얼족을 비롯해 하사커족은 오랫동안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으며, 가난하지만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이슬람을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색다른 세계이다.

싱싱샤(星星峽)란 곳에 대한 책의 소개를 한 번 보자.

“이곳은 주민이 100명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로..작은 식당을 열고 나그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곳이다.”

즉 싱싱샤는 실크로드에 소재한 작은 마을로 순전히 고속도로에서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역사상 많은 문인, 상인, 군인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고 이제 나도 그 중 한 명이 되었으니, 싱싱샤는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일부분이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싱싱샤라는 작은 마을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저자는 호텔 식당 관리인의 소개를 통해 웨어우얼족 농촌 가정을 방문한다.

“마루 위에는 넓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손님이 왔다고 양탄자 위에 수박과 하미꽈, 석류 등을 푸짐하게 내 놓는다” 웨어우얼족의 손님에 대한 따스한 대접과 배려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벌써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아이를 업은 아낙네부터 할머니, 꼬마들까지 집안 마루가 동네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래전 우리네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었다. 또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생각이 난다.

이렇게 이 책에는 실크로드 곳곳에 산재한 마을이나 도시에 대한 이야기와 또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애환이 스며있어서 실크로드에 관련된 다른 주제로 전개된 책을 읽는 것과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 시중에 부쩍 실크로드 관련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자동차를 페리에 싣고 인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기에 실크로드가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니 실크로드에 가서 문명사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유적지와 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또 이 책의 내용을 CD로 만들어 부록으로 넣어져있어, 멀티미디어로 실크로드를 접할 수 있는 점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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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가지 법칙
켄 로빈슨 지음, 유소영 옮김, 백령 감수 / 한길아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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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천재였으며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즉 학교 성적과 그의 뛰어난 과학적 능력은 직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천재성을 파악해낼 만한 도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학교에서의 교과목 편성이나 학습능력 테스트는 그의 천재성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공교육의 문제점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보니 사람들은 공교육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안학교에 자신들의 자녀를 입학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안학교에 보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험이 따를지도 모르는 것에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미래를 걸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신의 자녀를 대안학교로 보내는 주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인 성적 지상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 부모나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성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대학에 몇 명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학생의 능력이 평가받고 있으며, 학교도 그렇다. 그런데 대안학교에 가는 부모들은 이런 성적지상주의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대안학교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많은 대안학교에서는 이 시대 공교육이 포기한 전인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영수 성적보다는 지덕체를 통하여 참된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는 데에 부모들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대안학교의 교육 시스템은 단순히 대안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받아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 가지 법칙>(한길아트. 2007년)에 보면 유럽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메스를 가하고 있다. 즉 영국의 교육제도는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오래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으로는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도 제대로 일에 적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창의력도 소멸된다고 말한다.

“창의성은 순수한 지적과정이 아니다. 다른 능력 특히 감정, 본능, 유희적인 상상 등이 창의성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시대의 교육은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기에 감장이나 본능 등은 무시하고 만데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은 나로서도 적극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교육제도란 무엇일까?

저자는 지능에 대한 개념정립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현재 사람들의 지적능력으로 파악하고 있는 IQ의 효용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학생의 타고난 재능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이것이 창의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논지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 예술, 과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현실 교육에 대한 원용은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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