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2
이덕일.김병기.박찬규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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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는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경쟁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이는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 2004년 유네스코가 중국 내 고구려 초기 수도와 왕릉, 귀족들의 무덤과 함께 북한 내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고구려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고구려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실상 오랜 기간 동안 고구려는 연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고구려의 강역이 중국과 북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입장에서 고구려를 직접 연구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북한이나 중국, 일본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을 답습하거나 중국 사서의 내용을 문헌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의미로 국가주도의 고구려재단이 설립되고 고구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저자도 이 책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역사의아침.2007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고구려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동북공정으로 인한 중국의 역사 왜곡과 또한 국내 사학계에 아직도 존재하는 식민사관 입장에서 서술한 역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고 있는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실체와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즉 식민사관의 시각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논리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60여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식민사관의 잔재는 국내 사학계에 그대로 남아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고구려 역사를 바라보니,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나라였던 것이다. 중국의 황제만을 천자(하늘의 아들)자로 칭했지만, 고구려인들은 고구려 왕을 천자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중국과 고구려 간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던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전쟁 상황이 증명해주고 있다.




남북조의 분열을 이용해서 강력을 넓힌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소개된 부분에서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이를 국내 정세에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보였고, 또한 왕권 강화를 통해 군사력을 팽창시키고, 이를 통해 수당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할 수 있었다.




475년 백제의 수도인 한성(풍납토성으로 추정)을 점령하고 백제 개로왕을 참수했지만 백제를 멸망시키지 않은 까닭은 중국 측의 움직임에 항상 경계를 해야 했던 고구려의 지정학적 위치를 깨닫게 해준다.




700년 간 이어온 강한 기마 민족의 나라 고구려는 21세기 초인 지금 오래전의 그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에 의치한 지방정권이나 조공국이 아니라 중국과 대등한 천자의 나라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 마지막 쪽에 별책 부록인 ‘고구려의 최대 강역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북으로는 러시아에서 서쪽으로는 몽골, 동으로는 연해주에 이르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웅혼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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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박경남 지음 / 포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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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비석을 세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름과 생몰 년도를 쓰고, 그 자식들의 이름을 쓴다. 그러나 일부 유명인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생전에 했던 일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삶을 간략히 평하는 말을 써놓는다. 과연 유명인들의 묘비명에는 어떤 문장들이 써있을까?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포럼.2007년) 에는 유명인들의 묘비명이 수록되어 있다. 인생, 150여 개의 묘비명은 사랑, 행복, 자유, 정의, 예술, 명예, 성공, 수신, 희망이라는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다.




“괜히 왔다간다”

기행으로 유명한 중광스님의 묘비명에 써있는 문장이다. 의 삶이 기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묘비명도 시니컬하다.





“고로 여기 이 철학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그의 묘비명처럼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절반이 여기 잠들다.”

칼 마르크스의 아내이자 마르크스의 혁명동지인 예니 마르크스의 묘비명에 나오는 문장으로, 마르크스가 아내의 가치를 표현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 유명한 문장은 그의 묘비명에 까지 적혀 있다.




“잘 사는 것이 최상의 복수이다.”

러브 스토리와 대부의 제작자 로버트 애반스의 묘비명, 자본주의의 가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묘비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직 살아있다 미국인들은 명사들이 자신이 죽기 전에 미리 묘비명을 정해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이순신의 전쟁에 임하면서 장수로서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절체절명의 조선을 구해낸 것은 바로 이순신의 이러한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well-being 이란 단어가 우리네 삶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삶의 질을 생각하기에는 매일 매일의 삶에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이 되자. 우리는 너나없이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well-being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생각해봐야할 때이다. well-dying은 단순히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나를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well-being과 well-dying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을 한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내가 그동안 미워했던 사람에게도 손을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단순히 나 혼자만의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부분일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회 안에서 ‘사람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유명인들의 묘비명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사후에 세상에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 책은 지금 이 땅에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이 ‘well-being’인지와 또 ‘well-dying’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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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 극한의 인간 도전 ... 정상에 그들이 있었다
이용대 지음 / 마운틴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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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시나요”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

 

이 말은 등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또 이 말을 한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아는 문장일 것이다. 멜로리가 남긴 이 말을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로 알고 있으나 이 경우에서 'It'은 모든 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라는 특정 산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두고 있는 멜로리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강연회를 할 때 나온 말로, 맬로리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산에 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함축한 불후의 명언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를테면 “너 그사 람 어디가 좋아서 사귀니”라는 주변의 질문에 ‘그가 잘생겼고 성격도 좋다’는 말 대신에 “그냥 그가 좋아”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다. 즉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말 보다는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2007년)에는 등산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등산과 관련한 장비나 기술의 발달 그리고 등산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웅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어찌 보면 영웅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멋진 산의 모습과 유명한 등산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책으로 500쪽 정도 되는 굵은 책이다. 저자 이용대씨는 한국산악계를 대표하는 분으로 현재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등산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났으며,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암벽 루트를 선등하는 현역 등산인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등산백과사전에서는 ‘알피니즘이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알피니즘은 알프스에서 나온 단어로. 유럽인들이 알프스 지역에서 근대적인 개념의 등산을 하기 시작했기에 파생한 말이다. 만약 히말라야에서 등산이 시작되었다면 히말라야이즘이 되었겠고, 백두산에서 시작이 되었다면 ‘백두산이즘’이 되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 본능은 20세기가 시작되자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극지 탐험을 시작한다. 미국인 피어리는 1909년 북극점에 도달하고, 그 유명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으로 유명한 남극탐험은 1911년 아문센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극지탐험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히말라야의 고봉으로 향한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제9차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지구상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영국이 1921년부터 시작해서 1953년까지 32년 동안 9차례나 도전한 끝에 이룩한 것으로, 그동안 15명의 귀한 목숨이 이 산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영국은 에베레스트를 ‘제3의 극점’이라고 부른다. 극점도달에 실패했던 영국인들은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업적을 높게 평가받고 싶었기에 제3의 극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었던 것이다.

1964년 8000미터 이상의 거봉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시샤팡마가 등정됨으로써 피크 헌팅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산에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리고 새로운 루트 등정, 거벽 등반, 단독 등반, 무산소 등반, 동계 등반, 14개 봉 모두 등정, 한 시즌 3개 봉 등정을 의미하는 해트트릭 등 다양한 등산 방법이 시도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대단한 영웅은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사람이다. 등산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사람을 몰랐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메스너는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등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루트로 등정을 한다. 게다가 산소 용구, 고소 포터, 중간 캠프, 고정 로프를 쓰지 않는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간다. 그는 알프스의 4000 미터 급 산을 오르는 방식으로 8000 미터 급 고봉을 사흘 만에 오른 것이다. 이런 등반방식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기에 메스너의 성공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8000미터 고봉에 대한 도전 방식이 바뀌게 된다.

메스너는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처음으로 모두 오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도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알파인 방식으로 올랐고, 또 한 시즌에 8000미터 이상의 고봉 3개를 등정하는 해트트릭도 한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등반가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9월에 고상돈과 세르파 1명이 에베레스트 남동릉으로 등반함으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에 이름을 올린다. 등정자 순위로는 고상돈이 초등자 이래 57번째의 등정자가 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 등정은 1986년 정봉완, 김창선, 장병호가 남동릉으로 등정을 한다.

 

2000년에 엄홍길이 12년을 소요하며 8000 미터 급 14봉을 완등 8위에 오르고, 2001년에는 박영석이 8년을 소요하며 역시 완등을 하고, 2003년 한왕용이 9년을 소요하며 14번째 완등자가 된다. 이로서 한국은 완등자를 3명 보유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완등자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야자 영웅들을 보면 8000미터 이상의 거봉을 최초로 등정한 여자는 바로 일본인이었다. 1974년 마나슬루에 나카세고, 우치다, 모리가 등정을 한다. 그리고 1975년에는 에베레스트에도 역시 일본여자 다베이 준코란 이름의 여자였다. 그녀는 세 살짜리 딸을 둔 35세의 주부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우리나라 고상돈보다 빨리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다베이 준코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해서 “기술과 능력만으로는 정상에 설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의지력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영웅들에 대한 존경이 절로 생겼다.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 8000 미터 급의 등정보도가 나오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다면 어쩌면 생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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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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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물리학의 세기라고 말한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었으며, 뒤이어 물리학 이론이 그 어느 학문보다도 성취가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에는 생물학이 부각이 되기 시작했으며,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1976년 불과 35세에 불과한 젊은 동물행동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2006년)를 펴내며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20세기 후반의 생물학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책이었다.


2006년은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생물학자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이를 기념해 책을 출간한다. 책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2007년)였다.  살아있는 학자의 한 권의 책을 가지고 그 영향력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결론은 찬사로 끝났다. 그들 중 두 명의 의견만 살펴보자.

 

 

 

<이기적 유전자>에서 많이 인용된 바있는 옥스퍼드대학의 동물학과 교수인 존 크렙스는 

“(리처드 도킨스) 그가 하고 있는,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하는 일은 지독할 정도의 엄밀함, 깊이, 명확함을 도구로 삼아 다른 사람들의 발견을 재분석하거나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즉, 리처드 도킨스가 생물학 부분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에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아니다. <이타적 유전자>, <붉은 여왕>의 저자인 매트 리들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졌다. 하나는 문장이 진정으로 뛰어났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문장은 운율이 가장 잘 맞았고, 사용된 용어도 아주 정확했고, 유익한 논증으로서만이 아니라 세련된 문학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조리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논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논증을 너무나 새롭고 지극히 의외이고 심히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노골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독자들로 하여금 끝나지 않은 논쟁에 은밀히 관여하는 듯이 느끼게 하는 한편으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 매트 리들리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의 글 솜씨에 찬사를 늘어놓는다. 독자들도 느낄 수 있지만 도킨스는 정말 다방면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적합한 인용문을 적절히 끌어다 쓰는데 정말 탁월하고, 또 딱딱한 과학책이면서도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게 썼다.

 

 

그러나 대중 과학서라고는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결코 쉽지 않다.  서문에서는 이 책이 일반인도 읽을 수 있게 전문 용어의 사용을 최소화 시킨 책이라고 하고 있지만,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용어에서부터 막힌다. 그러나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이 책에서 도킨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진화와 유전자와의 관계이다. 도킨스는 진화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책을 쓰고자 했다. 특히나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인간의 주인은 불멸의 복제자인 유전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를 위한 생존기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유전자의 지령은 자연 선택에 의해 조립되어 온 것이므로 물론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건축가'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인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는 생존기계인 인간의 예상 수명은 10년 단위로 표현할 수 있지만 유전자는 100만년 단위로 측정해야만 하기에 불멸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도킨스는 또한 이 유전자가 ‘이기적’이란 말로 한 번 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즉 유전자의 최종 목표는 생존과 유전자의 존속인데 이를 위해서 유전자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이타주의적으로 보이는 행위라도 실제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점은 "밈(meme)"이라는 용어를 창조해낸 것이다. 밈이란 언어나 문화와 같은 부분도 유전자처럼 진화하며 게다가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하며 문화적 유전의 특징과 유전적 진화와의 유사성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이후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도킨스는 유전적 진화와 밈의 관계 하에 이런 얘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도킨스는 자신이 유전자결정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은연중 유정자결정론자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그의 의견을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현대의 지식인의 필독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을 만큼 유명하고 또 많은 영향을 준 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 읽은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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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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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고(藏經板庫)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렸다. ‘장경판고’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인데 이는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 중요한 것은 대장경판인데, 건물만 등재되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유네스코의 취지는 움질일 수 있는 동산 문화재보다 건물이나 탑 등 부동산 문화재와 자연유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경판늘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고’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장견판고와 경판도 함께 등록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양적인 의미부터 살펴보자.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에 벌써 양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정말 팔만대장경은 팔만개인가? 81,258개가 정답이다.


이 경판을 가로로 눕혀 높이 쌓으면 거의 백두산 높이가 되고, 이으면 그 길이가 150리, 무게로는 250톤에 이른다고 하며, 안에 수록된 글자가 무려 5,200만 자라고 한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이 수록하고 있는 글자 수인 5,600만자와 비슷하다. 5,200만자라고 하면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한자에 능숙한 사람이 하루 8시간 씩 30년을 읽어야 내용이 파악될 정도의 양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양이다.


질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경판에 새긴 한 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1.5 센티미터 정도이며 글자 한 획의 두께는 약 1.5밀리미터에 불과한 글자가 5,200만자에 달하건만 한 자도 틀린 글자가 없다고 한다. 고려 목공들은 대장경에 글자를 한 자 새길 때마다 한 번씩 합장하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대장경 제작에 지극 정성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대장경 제작에 혼신을 기울였을까.


판만대장경이 새겨질 시기의 고려의 정세를 한 번 생각해보자. 1236년에 시작해 1251년까지 16년이란 시간을 들인 작품이다. 1236년이라고 하면 고려는 풍전등화에 처했던 시기이다. 세력을 확장한 몽골의 힘은 드디어 중국 대륙을 넘어 한반도에까지 이른다. 초조대장경을 제작함으로 인해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불교 국가 고려에서는 몽골이라는 강력한 외침을 막기 위한 모종의 힘이 필요했을 시기였다. 국력이 모자란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바로 종교의 힘으로 조국을 지키고자 했다. 고려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바로 불력(佛力)이었던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이유 때문이었는지, 고려는 멸망하지 않는다. 모든 아시아 국가와 지금의 동유럽 전역이 몽골의 말발굽 아래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고려는 지도에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려 목공들의 정성 때문이었을까?


지금으로부터 760년 전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한반도는 지속적으로 전쟁에 시달려 왔었고, 대장경을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에도 수많은 화재에 시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손되지 않고 남아있다. 이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전쟁당시 해인사는 지리산자락에 있었기에 빨치산 치하에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군이 출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편대장인 김영환대령은 폭탄으로 공격하지 않고 기관총으로만 적을 공격한다. 그는 폭탄으로 공격하면 적을 섬멸할 수 있지만, 팔만대장경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군의 명령에 항명한 것이다. 만약 편대장이 우리 역사나 문화유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때 팔만대장경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해인사에 가면 김영환대령의 공적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김영사.2007년)은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지금부터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목재조직학자인 박상진교수이다. 그는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김영사. 2004년)에서 보듯이 나무를 통해서 역사를 해석해 낸 학자이다.


팔만대장경의 재료가 되는 나무에 대해 교과서를 비롯해 대부분의 의견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나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각종 문헌에서 나무의 명칭에 대해 자작나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세포 모양과 배역을 현미경으로 연구하는 목재조직학으로 살펴본 바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의 표본조사결과 산벚나무, 돌배나무, 거제수나무가 8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통설에서 말하는 자작나무는 하나도 없었다.


또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인 경판의 탄생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통설에 의하면 경판은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려사를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조차도 강화도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판의 재료인 나무들이 자라는 장소와 함께 그 많은 양의 경판을 옮긴다는 것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 한다면, 경판의 제작지는 최우의 식읍지였던 진주를 비롯하여, 해인사와 가까이에 있는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헌에 나타난 증거를 박상진교수는 목재조직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매우 과학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자연현상이나 역사적인 유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역사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학문의 도움이 필요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김영사.2002년)와 같은 책은 학제간 연구가 필요함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역사학이 더욱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목재조직학과 같은 다른 학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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