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박경남 지음 / 포럼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비석을 세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름과 생몰 년도를 쓰고, 그 자식들의 이름을 쓴다. 그러나 일부 유명인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생전에 했던 일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삶을 간략히 평하는 말을 써놓는다. 과연 유명인들의 묘비명에는 어떤 문장들이 써있을까?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포럼.2007년) 에는 유명인들의 묘비명이 수록되어 있다. 인생, 150여 개의 묘비명은 사랑, 행복, 자유, 정의, 예술, 명예, 성공, 수신, 희망이라는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다.




“괜히 왔다간다”

기행으로 유명한 중광스님의 묘비명에 써있는 문장이다. 의 삶이 기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묘비명도 시니컬하다.





“고로 여기 이 철학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그의 묘비명처럼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절반이 여기 잠들다.”

칼 마르크스의 아내이자 마르크스의 혁명동지인 예니 마르크스의 묘비명에 나오는 문장으로, 마르크스가 아내의 가치를 표현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 유명한 문장은 그의 묘비명에 까지 적혀 있다.




“잘 사는 것이 최상의 복수이다.”

러브 스토리와 대부의 제작자 로버트 애반스의 묘비명, 자본주의의 가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묘비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직 살아있다 미국인들은 명사들이 자신이 죽기 전에 미리 묘비명을 정해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이순신의 전쟁에 임하면서 장수로서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절체절명의 조선을 구해낸 것은 바로 이순신의 이러한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well-being 이란 단어가 우리네 삶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삶의 질을 생각하기에는 매일 매일의 삶에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 의식주가 해결이 되자. 우리는 너나없이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well-being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생각해봐야할 때이다. well-dying은 단순히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나를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well-being과 well-dying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을 한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내가 그동안 미워했던 사람에게도 손을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단순히 나 혼자만의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부분일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회 안에서 ‘사람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유명인들의 묘비명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사후에 세상에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 책은 지금 이 땅에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이 ‘well-being’인지와 또 ‘well-dying’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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