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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 극한의 인간 도전 ... 정상에 그들이 있었다
이용대 지음 / 마운틴북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산에 오르시나요”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
이 말은 등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또 이 말을 한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아는 문장일 것이다. 멜로리가 남긴 이 말을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로 알고 있으나 이 경우에서 'It'은 모든 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라는 특정 산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두고 있는 멜로리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강연회를 할 때 나온 말로, 맬로리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산에 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함축한 불후의 명언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를테면 “너 그사 람 어디가 좋아서 사귀니”라는 주변의 질문에 ‘그가 잘생겼고 성격도 좋다’는 말 대신에 “그냥 그가 좋아”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다. 즉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말 보다는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2007년)에는 등산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등산과 관련한 장비나 기술의 발달 그리고 등산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웅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어찌 보면 영웅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멋진 산의 모습과 유명한 등산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책으로 500쪽 정도 되는 굵은 책이다. 저자 이용대씨는 한국산악계를 대표하는 분으로 현재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등산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났으며,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암벽 루트를 선등하는 현역 등산인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등산백과사전에서는 ‘알피니즘이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알피니즘은 알프스에서 나온 단어로. 유럽인들이 알프스 지역에서 근대적인 개념의 등산을 하기 시작했기에 파생한 말이다. 만약 히말라야에서 등산이 시작되었다면 히말라야이즘이 되었겠고, 백두산에서 시작이 되었다면 ‘백두산이즘’이 되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 본능은 20세기가 시작되자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극지 탐험을 시작한다. 미국인 피어리는 1909년 북극점에 도달하고, 그 유명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으로 유명한 남극탐험은 1911년 아문센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극지탐험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히말라야의 고봉으로 향한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제9차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지구상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영국이 1921년부터 시작해서 1953년까지 32년 동안 9차례나 도전한 끝에 이룩한 것으로, 그동안 15명의 귀한 목숨이 이 산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영국은 에베레스트를 ‘제3의 극점’이라고 부른다. 극점도달에 실패했던 영국인들은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업적을 높게 평가받고 싶었기에 제3의 극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었던 것이다.
1964년 8000미터 이상의 거봉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시샤팡마가 등정됨으로써 피크 헌팅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산에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리고 새로운 루트 등정, 거벽 등반, 단독 등반, 무산소 등반, 동계 등반, 14개 봉 모두 등정, 한 시즌 3개 봉 등정을 의미하는 해트트릭 등 다양한 등산 방법이 시도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대단한 영웅은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사람이다. 등산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사람을 몰랐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메스너는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등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루트로 등정을 한다. 게다가 산소 용구, 고소 포터, 중간 캠프, 고정 로프를 쓰지 않는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간다. 그는 알프스의 4000 미터 급 산을 오르는 방식으로 8000 미터 급 고봉을 사흘 만에 오른 것이다. 이런 등반방식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기에 메스너의 성공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8000미터 고봉에 대한 도전 방식이 바뀌게 된다.
메스너는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처음으로 모두 오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도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알파인 방식으로 올랐고, 또 한 시즌에 8000미터 이상의 고봉 3개를 등정하는 해트트릭도 한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등반가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9월에 고상돈과 세르파 1명이 에베레스트 남동릉으로 등반함으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에 이름을 올린다. 등정자 순위로는 고상돈이 초등자 이래 57번째의 등정자가 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 등정은 1986년 정봉완, 김창선, 장병호가 남동릉으로 등정을 한다.
2000년에 엄홍길이 12년을 소요하며 8000 미터 급 14봉을 완등 8위에 오르고, 2001년에는 박영석이 8년을 소요하며 역시 완등을 하고, 2003년 한왕용이 9년을 소요하며 14번째 완등자가 된다. 이로서 한국은 완등자를 3명 보유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완등자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야자 영웅들을 보면 8000미터 이상의 거봉을 최초로 등정한 여자는 바로 일본인이었다. 1974년 마나슬루에 나카세고, 우치다, 모리가 등정을 한다. 그리고 1975년에는 에베레스트에도 역시 일본여자 다베이 준코란 이름의 여자였다. 그녀는 세 살짜리 딸을 둔 35세의 주부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우리나라 고상돈보다 빨리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다베이 준코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해서 “기술과 능력만으로는 정상에 설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의지력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영웅들에 대한 존경이 절로 생겼다.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 8000 미터 급의 등정보도가 나오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다면 어쩌면 생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