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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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에서 50발을 쏴 49발을 맞추고, 100발을 쏴서 98발을 맞추었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의 양궁선수를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활을 잘 쏘았다면 아마 유명한 장군이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는 조선시대의 한 왕의 이야기다.

위의 인용문에서 활을 쏜 사람은 바로 조선에서 제일 학문에 밝았던 왕인 정조다. 공부만 했었다고 생각한 정조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정조의 활쏘기 성적은 <어사고풍첩,御射古風帖>이라는 책에 나와 있다고 한다.

정조가 활을 쏘던 145미터의 거리에서 국내 최고의 궁도 선수들이 쏘면 어떨까? 선수들이 아무리 잘 쏴도 40발을 맞히지 못했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선수라도 50발을 모두 명중시키는 일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기록이라고 하니 정조의 활솜씨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조가 50발 중에 49발을 맞춘 것은 마지막 한 발을 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신엽 욱군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말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군주로서 신하들에게 겸양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한다. 정조가 이렇게 명궁이 된 것은 당연하게도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는 말인데, 정조는 왜 이렇게 활을 잘 쏘게 되었을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혀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의하면 영 정조시대에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없앴다고 나오는데, 실제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정조는 죄인(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에 제왕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와 또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많은 신하들이 권력집단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조가 즉위한다면 그 사건에 관련된 신하들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조는 즉위 자체도 문제가 많았지만 제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기에도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나 군권이 신하들에게 있었기에 정조는 자신이 직접 무예를 익히고 나아가 정예 군사를 발굴하고 키워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왕권과 신권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결말은 정조의 암살로 이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아무튼 <한국사傳 2>(한겨레출판.2008년)에는 이처럼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조의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정조 이외에도 9명이 소개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소현세자빈 강씨, 토정 이지함, 승장 김윤후, 내시 김처선, 김춘추, 조완벽, 단원 김홍도, 백헌 이경석, 정약용이다.

수록된 사람들 가운데 조완벽과 벽헌 이경석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색다른 인물이었다.

조완벽이란 사람의 이야기부터 알아보자. 이 사람을 소개하는 장의 제목은 ‘베트남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가 베트남으로 간 것은 사신이나 무역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베트남으로 간 것은 조선의 슬픈 역사 때문이었고, 조완벽 개인에게도 역시 아주 가혹한 일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10만 여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에 가서 노예로 살았다. 조완벽은 포로 가운에 한 명이었다. 일본에서 조완벽은 상인에게 팔려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다. 한문을 자유롭게 쓰고 읽을 수 있었던 그에게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베트남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의 영향이 미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런데 조완벽의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졌을까. 그것은 조완벽이 기적적으로 조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포로 중 일부는 조선과 일본의 합의에 의해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수는 1418명에 불과했다. 조안벽은 그 중 한 명으로 생환하여 그의 고향에서 남은 생애를 선비로서 훌륭한 못브을 보여주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번에는 벽헌 이경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조선 중기 한반도는 전쟁의 폭풍우에 휘말려 있었고, 이로 인해 조선 사회는 크게 변화했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패배한 전쟁이었다. 병자호란이라고 하면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전쟁의 원인도 그것 때문이었고, 전쟁 중에 신하들의 다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명분과 실리는 그대로 살아남아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청은 조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을 한다.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만한 일이었다. 삼정도비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과연 이 치욕적인 비에 비문을 누가 쓸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 비문을 쓰는 사람은 후대에까지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쓰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써야만 했다. 그것은 조선왕조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경석은 조선과 인조를 위해 비문을 썼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읽어야 한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 그 자체를 배운다’는 의미와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병자호란에 관련한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움의 장을 열 수 있다.

유교 세계관에 있어서 명분은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가치관이었다. 그렇기에 임진왜란에서 우리를 도운 명나라 편을 들어야 했고, 오랑캐나라인 청에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 결과 조선은 온통 전쟁터가 되고 말았고, 그 결과는 백성들의 죽음과 피폐한 삶으로 이어졌다. 선비들은 자신의 명분을 지킬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로 말미암아 고통은 모든 백성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조완벽이 삼전도비문을 쓴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꼭 써야할 비문을 자신이 쓰기로 결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이나 가문에게 오명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생명과 백성들의 삶이었다. 개인적인 가치관을 앞세워 자신은 독야청청하고자 했던 무리들은 바로 백성을 어려움에 빠뜨린 무리배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해 이경석은 진정한 선비이고 관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고 있는 내용이다. 소개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우리들이 역사교과서에서는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진면목을 소개해주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과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또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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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음식 - 음식 상식의 오류와 맹신을 고발한다
마이클 E. 오크스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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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 <불량 음식>(열대림.2008년)을 읽으면서 인간은 온갖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합리화하고 있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음식에 대한 편견 중에서 ‘지방’에 대한 부분은 마치 법정의 다툼을 보는 바와 같이 격렬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있는지, 반면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법정의 다툼처럼 구성해본다면 어떨까!

 

일군의 사람들이 ‘지방’을 법정에 고발했다. 그들은 ‘지방’이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앗아가고 있다고 고발이유를 밝혔다. 그들을 보통 ‘지방 제한론자’라고 부른다.

 

‘지방 제한론자’들은 우리가 지방을 섭취하면 비만이 되고, 동맥에 침전물이 쌓이기 쉽다고 얘기한다. 특히나 젊은 여성들의 경우에는 로우 팻(low fat)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 지방(anti-fat)까지 주장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에게 최대의 적은 바로 비만이기 때문에 지방 제한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지방을 ‘소리 없는 살인자’라 칭하고 있으며 비만의 핵심인자로 보고 있다. 이 시대에 비만은 모든 성인병의 원인이며, 여자들은 이를 더욱 나쁘게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비만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은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지방 옹호론자’라 불린다.

 

지방 옹호론자들은 지방 제한론자들의 견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방은 너무나 중요한 영양성분일 뿐이며, 여러 과학적 데이터에 나타난 결과는 과장되었다. 심지어 포화지방 조차도 그토록 악명 높을 까닭이 없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지방 식이를 하면 중년 층 남자들에게서 심장병 발병을 줄여주기는 하지만 다른 질환(다양한 심장 관련 증세를 포함하여)에 대해서는 질병의 감수성을 높인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또 최근 이루어진 폭 넓은 연구에서는 지중해식 식이를 하는 동안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나 그럴 경우에도 실제 콜레스테롤 프로파일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히면서 옹호론자의 목소리에는 좀 더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양측의 의견은 팽팽하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지에 대해서 재판부는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재판장은 전문가들을 불러 그들의 의견을 듣기로 한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한마디로 말하면, 지방이 건강을 해치는지 아니면 좋은지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고 말한다. 확실한 결론을 내기위해서는 대규모로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방이 몸에 이로운지 해가 되는지를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포화지방의 소비가 정말로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인지 아니지를 알아보려면 건강한 지원자들을 양껏 불러 모아서 무작위로 그룹을 나눈 다음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하며 사망할 때까지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과연 수천 명의 지원자를 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연구 기간이 수십 년이 넘어가고, 그만큼 비용도 엄청날 텐데, 그리고 참여자들의 식이가 포화지방만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비슷해야 하는데, 지시된 대로 식사를 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포화지방이 유해하다는 전제로 이런 실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인 반대에 직면할 수 있기에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재판장은 판결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안다. 하지만 그는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는 결심한 듯 판결문을 읽는다. “지방을 우리의 식단에서 없애야 한다는 고발사건에 대해서 재판부가 양측의 주장을 들어봤으며, 또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재판부는 지방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이 결정은 미래의 재판에  넘기는 편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또 다른 편견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루에 사과 한 개를 먹으면 평생 건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결론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동안 속아왔다는 것인데, 사과에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틀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과가 그처럼 좋은 평판을 얻을 만한 다른 요소라도 있었다는 것인데.

음식의 역사에서 사과에 필적할 정도로 전설적 지위를 누린 과일과 채소는 없었다고 말한다. 스미소니언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나 시, 우화, 신화에서부터 종교 서적에 이르기까지 사과만큼 자주 등장하는 과일은 없다고 한다. 특히 미국인들이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는, 전설적인 주인공 조니 애플시드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기에 사과는 비타민이 발견되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과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연식품’ ‘신선함’ ‘지방 없음’ 등 20세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들이 모두 사과에 해당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쉽게 사과를 최고의 식품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양학적으로 보았을 때 사과는 완전히 과대포장된 것이라는 것이 영양학적인 연구 결과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소금, 설탕, 이이스크림, 감자, 햄버거 등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은 과학적인 결과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잘못된 근거에 의거해 오류와 편견에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궁금하다. 마이클 E. 오크스는 영양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다. 그는 음식과 영양에 관한 심리학을 파헤친 책을 출간해왔다고 한다. 이 책도 이전의 책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많은 상식이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영양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기에 이런 책을 쓰기에 더 적격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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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별의 집 - 엄마가 쓴 열두 달 야영 일기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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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자연 속에 작은 집을 짓자. 이왕이면 절기에 맞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이 책 <바람과 별의 집>(마고북스.2008년)은 이렇게 시작된다.

바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옛말 ‘마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큰딸과 바다라는 뜻의 ‘바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작은 딸, 그리고 남편을 ‘빛나는 별’이라고 부르고, 아내이자 엄마인 자신을 ‘강한 바람’이라고 부르는 한 가족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 책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아빠와 엄마가 만든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집을 가지고 있었을까.

전직 산악잡지 기자인 김선미는 가족과 함께 한 평도 안 되는 텐트를 차에 싣고는 한 달에 한 곳씩 일 년간 총 12회에 걸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12회는 단순히 한 달에 한 번이란 의미를 넘어서 절기에 맞추고 있다. 예를 들자면 ‘입춘과 우수’에 즈음하여 ‘변산반도 격포’로 여행을 가지고 있다. 일 년은 24절기니까 2절기에 맞추어 여행을 하면 꼭 1년이 걸리는 여행이다. 사실 텐트로 여행해본 사람들은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상당히 불편한 여행이다. 잠자고 씻고 먹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게다가 안락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텐트 여행은 거의 고행의 수준에 가깝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런 여행은 장점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 장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국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집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자연을 향해 무한하게 열려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다.”

이 책이 다른 여행서와 다른 특징은 여행 중에 일어나는 가족 간의 소소하지만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이들과 부모와의 사랑과 갈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다. 또 해당지역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과 역사적인 내용, 그리고 전설과 현실의 삶을 저자의 훌륭한 글 솜씨로 녹여내고 있다.

‘88고속도로를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인간의 길은 부득이 하게 자연에 대해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표현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 가족의 자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 이 길에 깔려있는 정치적인 의미(광주민주화 운동이 끝난 후인 1981년 착공했으며, 이 길의 의미로 동서화합의 장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붙이고 있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의도)룰 표시하고 있는 곳에서는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이지만 이곳애서도 우리의 슬픈 과거도 서려있음을 저자는 독자들을 위해 읽어주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인 큰 딸은 MP3를 항상 귀에 꽂고 다닌다. 엄마는 이것이 불만인 것이다. 가족과의 대화를 단절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여행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에 사소한 불만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부분에서는 사람의 삶이 모두 비슷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 가족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울릉도에 간다. 그러다 보니 직접 배낭을 메고 다녀야 했으니, 다른 곳을 여행할 때보다 훨씬 힘이 들었을 것이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는 그동안 언젠가는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쓸데없이 쌓아놓고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던가. 이렇게 배낭 하나로 해결될 만큼 사는 게 단출하면 좋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버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지금은 필요 없는 물건일지라도 언젠가 필요한 시기가 올 수도 있기에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 인간의 선조들은 오랜 기간 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영위했기에 집을 짓거나 해체하기 쉽게 간단히 만들었다. 또한 이동하기 쉽게 짐도 단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로서 우리의 의식주는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우리의 본능 속에 노마드는 그대로 살아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읽으면 본능이 작용해 그대로 따라하고 싶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다.  

이 가족처럼 일 년에 12번을 야영 여행을 못할지언정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족과 함께 야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나또한 그 본능을 가슴깊이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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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케냐에서 발견한 아프리카의 맨얼굴, 그리고 몹쓸 웃음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김소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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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란 나라 이름을 들으면 우선 야생동물이 생각난다. 그리고 요즘은 미국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 아버지의 출신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항상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빌 브라이슨이 그곳 케냐에 갔다. 왜 그곳에 갔을까. 야생동물을 보러?


어느 날 빌 브라이슨은 국제적인 구호단체 CARE로부터 케냐를 방문하고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정글짐이라는 제목의 아프리카의 정글을 담은 시리즈 영화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아웃 어브 아프리카>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빌 브라이슨이 아프리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는 베란다에 누워 있다가 터번을 두른 하인이 커피를 가져오면 그저 우아하게 마시는 곳”이라는 낭만적인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CARE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연실색한다. 그곳 여행은 목숨을 걸고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각종 풍토병에다가 강도, 비행기 추락의 위험성 등 여려움은 곳곳에 있었다. 케냐에 가는 것이 일종의 모험이지만 별 일 없을 것이라는 CARE 직원의 말에 빌 브라이슨의 8일간에 걸친 케냐 모험은 시작된다. 그리고 8일간 그가 그곳에서 겪은 내용이 이 책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21세기북스.2008년)다. 

 
2002년9월 빌 브라이슨은 영국 런던의 히드로 국제공항을 출발한다. 그가 첫 번째로 간 곳은 키베라(Kibera)지역이었다. 이곳은 빈민촌으로 거주민의 5분의 1일 에이즈 보균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곳이다. 그런데 키베라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케냐 정부는 이곳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증거의 부재가 존재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진실인 모양이다. 정부에서 키베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골에 있는 사람이 밀물처럼 이곳으로 몰려올 것을 걱정해서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엄연히 살고 있는 곳이다. 케냐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의 키베라로 몰려드는 것은 그래도 그곳은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에는 빈민촌만 있지는 않았다. 그곳은 지구에서 가장 값진 유물이 있었다.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빌 브라이슨은 케냐 국립박물관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초기 인류의 화석이 있었다. 케냐는 루이스 리키와 리처드 리키 등 리키 가문에 의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부터 호모 엘렉투스의 화석이 발굴된 곳 있었다. 전 세계에서 발굴된 인류 화석이 5,000여개에 불과한데 케냐 국립박물관은 그중 500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놀랄 만하다. 

 
기차와 경비행기로 이동하는 중에 위험한 상황이 닥쳐와 고생하는 모습은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아주 유머러스하다. <나를 부르는 숲>이나 <발칙한 유럽산책>과 다른 점은 이번 여행은 빈민구호단체를 통해서 했기에 웃음이 점잖다고나 할까? 그리고 성과 관련된 유머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점은 에는 빌 브라이슨의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문 사진가가 이 여행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빈민 구호단체가 활동하는 만큼 케냐의 경제상황은 아주 어둡다. 그러나 밝은 면도 있었다. 웨드코라는 이름의 대출업체에서 소액대출을 받아 시장에서 장사를 함으로써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CARE를 통해 다양한 작물을 풍성하게 기를 수 있게 되어 부를 거머쥔 농부의 모습도 있다. 

 
8일간이라는 짧은 케냐 여행에서 빌 브라이슨은 영화 <아웃 어브 아프리카> 같이 멋지지는 않지만,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자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또 멋진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는 CARE의 활동은 빌 브라이슨에게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나 싱긋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많은 위험 속에서도 남을 돕는 구호단체 직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들의 일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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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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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매시간 끊임없이 쏟아지는 News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News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News 간에 경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News의 생산자인 기자는 소비자 보다 항상 빠르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직업보다 빠름이 생명이다. 그리고 빠름은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이 아니던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시속 몇 킬로미터 등 빠른 움직임은 이 시대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빠름은 현대인에게 편리함은 가져다주기는 했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로 동경에 가서 점심을 먹고, 업무를 보고 다시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삶을 일백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러한 빠른 삶에 잘 적응할 수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석기시대의 걷는 생활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금과 같은 패스트 라이프(Fast life)는 낯설다 빠름에서 오는 편리함에 만족을 누리기에 우리가 쓰는 비용은 많다.

빠름을 덕목으로 하고 있는 기자생활 20여 년 동안 지쳐버린 이 책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2008년)의 저자 서명숙은 50세를 한 달 앞두고 빠름에서 탈출한다. 그녀는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도전한다. 스페인의 와랑와랑(이글이글의 제주도 방언)한 태양아래에서 간세다리(게으름뱅이의 제주도 방언)가 되어 걸으며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제주를 떠올린다. 그런데 고향은 육체가 떠난다 해도 자신에게서 지워지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고향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생물학적 한계와 같아서 우리의 몸과 의식에 평생 그대로 각인이 되어 있는 곳이다.

 

그녀는 산티아고에는 없는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을 그녀의 고향, 제주에서 만든다. 40여 일 간의 예비답사를 거쳐 그녀는 푸른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안고 걷는 길에 ‘제주 올레’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의 거리 길로 나가는 진입로가 올레다. 즉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최초의 길이 바로 올레다. 그녀는 드디어 세상과의 멋진 접점을 만든 것이다.

 

그녀가 만든 제주올레는 7개 코스 101.1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런데 2008년10월30일자 신문에 보니 10코스까지 200 킬로미터로 길이가 추가되었다고 전한다. 산티아고에서 또 제주올레에서 그녀는 도보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그녀는 도보여행이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켜준다”고 말한다. 그녀는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청각을 즐겁게 하고,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은 ‘촉각’을 살려주고, 꽃향기를 흠흠 맡으며 후각을 느끼고, 풀섶에 숨은 산딸기와 볼레낭(꼬마 보리수) 열매를 따먹으면서 미각을 느낀다. 그리고 나비의 미세한 날개 짓은 눈을 크게 만든다.

 

필자도 지난여름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서 춘천에서 서울까지 걷기를 했었다. 춘천 서울간은 약 100 킬로미터로 달하기에 아이들과 사흘간 걸을 계획으로 시작했다. 이틀 동안 춘천에서 남양주 입구까지 약 50 킬로미터를 걸었으나 삼일 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나머지 길은 걸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었다. 경춘가도는 산과 강을 끼고 있어서 아주 아름답다. 그렇지만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과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켰다. 그래서 좀 더 아름답고 안전한 길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분을 간직하고 있었던 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산티아고에서 걸으며 그녀가 생각한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가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39쪽) 길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내년 초 12코스까지 만들어질 것이고, 11박12일의 일정으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 걷기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 축제에 함께하고 싶다. “두 발로 발 도장을 찍는 곳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144쪽)는 그녀의 말이 함축하는 의미를 나도 느끼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내년에는 제주 올레 축제에 서 멋진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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