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매일 매시간 끊임없이 쏟아지는 News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News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News 간에 경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News의 생산자인 기자는 소비자 보다 항상 빠르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직업보다 빠름이 생명이다. 그리고 빠름은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이 아니던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시속 몇 킬로미터 등 빠른 움직임은 이 시대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빠름은 현대인에게 편리함은 가져다주기는 했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로 동경에 가서 점심을 먹고, 업무를 보고 다시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삶을 일백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러한 빠른 삶에 잘 적응할 수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석기시대의 걷는 생활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금과 같은 패스트 라이프(Fast life)는 낯설다 빠름에서 오는 편리함에 만족을 누리기에 우리가 쓰는 비용은 많다.

빠름을 덕목으로 하고 있는 기자생활 20여 년 동안 지쳐버린 이 책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2008년)의 저자 서명숙은 50세를 한 달 앞두고 빠름에서 탈출한다. 그녀는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도전한다. 스페인의 와랑와랑(이글이글의 제주도 방언)한 태양아래에서 간세다리(게으름뱅이의 제주도 방언)가 되어 걸으며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제주를 떠올린다. 그런데 고향은 육체가 떠난다 해도 자신에게서 지워지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고향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생물학적 한계와 같아서 우리의 몸과 의식에 평생 그대로 각인이 되어 있는 곳이다.

 

그녀는 산티아고에는 없는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을 그녀의 고향, 제주에서 만든다. 40여 일 간의 예비답사를 거쳐 그녀는 푸른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안고 걷는 길에 ‘제주 올레’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의 거리 길로 나가는 진입로가 올레다. 즉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최초의 길이 바로 올레다. 그녀는 드디어 세상과의 멋진 접점을 만든 것이다.

 

그녀가 만든 제주올레는 7개 코스 101.1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런데 2008년10월30일자 신문에 보니 10코스까지 200 킬로미터로 길이가 추가되었다고 전한다. 산티아고에서 또 제주올레에서 그녀는 도보여행을 만끽하고 있다. 그녀는 도보여행이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켜준다”고 말한다. 그녀는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청각을 즐겁게 하고,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은 ‘촉각’을 살려주고, 꽃향기를 흠흠 맡으며 후각을 느끼고, 풀섶에 숨은 산딸기와 볼레낭(꼬마 보리수) 열매를 따먹으면서 미각을 느낀다. 그리고 나비의 미세한 날개 짓은 눈을 크게 만든다.

 

필자도 지난여름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서 춘천에서 서울까지 걷기를 했었다. 춘천 서울간은 약 100 킬로미터로 달하기에 아이들과 사흘간 걸을 계획으로 시작했다. 이틀 동안 춘천에서 남양주 입구까지 약 50 킬로미터를 걸었으나 삼일 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나머지 길은 걸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었다. 경춘가도는 산과 강을 끼고 있어서 아주 아름답다. 그렇지만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과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켰다. 그래서 좀 더 아름답고 안전한 길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분을 간직하고 있었던 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산티아고에서 걸으며 그녀가 생각한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가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39쪽) 길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내년 초 12코스까지 만들어질 것이고, 11박12일의 일정으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 걷기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 축제에 함께하고 싶다. “두 발로 발 도장을 찍는 곳만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144쪽)는 그녀의 말이 함축하는 의미를 나도 느끼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내년에는 제주 올레 축제에 서 멋진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느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