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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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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의 제목으로 붙어있는 낙천주의자 클럽 또한 정말 낙천주의자들이 모인 것은 아니다. 면면을 살펴보면 참 가관이다. 의사였던 이고르, 조종사 레오니트, 한때 나치와 맞서 싸웠던 독일인 베르네르, 배우 티보르, 그의 매니저 임레, 파벨, 토마시, 블라디미르. 그리고 가끔 클럽에 들르는, 그래서 외부인에게는 클럽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배척받기도 하는 샤사, 클럽인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마오. 그리고 아마도 정신적 지주일 케셀, 샤르트르.

 

이들의 공통점은 뿌리가 뽑혔다는 것이다. 마오나 케셀, 샤르트르는 언급되는 부분이 적으니 판단내리기 어려우나, 프랑스의 이 비스트로에서 클럽을 유지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망명자에 지나지 않는다. 망명자는 망명자끼리만 이야기가 통하는 법인가보다. 싸우고,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다툼을 벌이더라도 그 다음날이 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맞이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일종의 망명자인데, 맹랑한 녀석이다. 주인공 미셸은 책을 좋아하고, 아주 좋아하며,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서, 아마도 독서의 신의 가호가 있었을 것 같지만, 단 한 번 사고를 겪은 - 그것도 그 사고로 여자친구를 만든 - 녀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소설의 조숙한 주인공들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식을 펼쳐보이는 일도 거의 없다. 가끔은 친한 누나, 세실의 목욕하는 사진, 을 찍고 싶어하는 그런 사춘기 소년이리라.

 

이런 미셸이 어째서 저런 클럽에 들어갔냐면, 아마도 맹랑함 때문일 것이다. 이미 출생부터 비범하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만나 쁘띠 부르주아가 된 가정에서 태어났고, 수학은 젬병이며 언어는 곧잘한다.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본인이 남들과 달라, 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굽히려 들지는 않는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래도 대등하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맹랑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리라.

 

이런 맹랑함은 클럽의 일원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클럽의 일원으로 넘어가는 순간, 테이블 축구에서 체스로 갈아타는 순간, 술집의 앞 테이블에서 커튼이 처진 영역으로 한 발 내딛는 때, 학교 친구인 니콜라를 버리고 어른 친구들인 이고르, 레오니트 등을 만날때, 그는 자발적인 망명자가 된다.

 

망명자들끼리는 방금도 말했지만, 사실은 자기들 밖에 없는 거다. 자신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에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고 영영 다시 안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처음부터 누구도 붙잡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올 곳은 여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느슨하게 이어간다. 정작 연이 빨리 끊기는 쪽은 망명자의 외부, 주인공의 학교와 가정이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니콜라는 자신에게 말도 안하고 음악 시디를 가진 채 사라져버린다. 가정에서 미셸의 형인 프랑크는 여자친구를 놓아두고도 다른 여자와 바람피워서 사라진다. 주인공의 부모는 이혼한다. 글쎄, 소설적으로 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그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대가를 치뤘기 때문에 주인공이 결국 망명자가 된 건지, 아니면 '자발적' 망명자가 되는 대가인가?

 

미셸과 세실의 관계, 그리고 합쳐서 카미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실은 프랑크, 그러니깐 미셸 형의 여자친구다. 처음 미셸이 세실을 만났을때, 미셸은 세실에게 반쯤 반했지만, 세실이 프랑크와 찐하게 키스를 하자 그 마음을 반쯤 포기했다. 미셸이 세실의 옆을 맴도는 것은 어쩌면 형의 대신이라도 좋아, 그래도 그녀 옆에 있고 싶어 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세실의 차례인데, 세실이 미셸을 대하는 것은 거의 반쯤 가족에 가깝다. 부담없는 남자사람친구, 그러니깐 서로가 서로를 보는 눈높이가 다르다.

 

단적으로 말해서, 미셸이 계속 열심히 '누나, 목욕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요' 라고 계속 졸랐다면, 세실은 다른 생각 없이 - 성적인 함의없이 - 어쩌면 여러 제한 조건을 붙여서 찍게 했을 것 같다. 미셸은 모르겠지만 세실은 미셸을 연애의 대상으로는 전혀 보고 있지않고 있으니깐. 프랑크의 존재가 그들을 그렇게 강제한다. 그러나 만약에 프랑크로 인하여 그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파국을 맞이했을 것이다. 감정의 불균형이란 늘 그렇게 되는 거다.

 

카미유는 주인공이 세실과 헤어진 뒤 - 물론 사귄 것은 아니지만 - 책을 들고 읽으며 거리를 가다가 부딪힌 아가씨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불만인데 너무 늦게 나타나서 너무 빨리 미셸의 인생에서 퇴장하는 아가씨다. 처음에는 세실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나타나려나 했는데, 왠걸 미셸은 그 짧은 단락에서 전형적인 한 눈에 반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이 책에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정말 많이 뒤섞여 있는데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그렇게 드러나 우울하다.

 

카미유는 점성술에 빠져있다. 미셸은 용케 점성술에 대하여 뭐라고 지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보들의 왕'이 되지 않았지만 -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혈액형 심리학이라던가, 손금이라던가, 이런 것에 빠져있으면 굳이 그걸 반박하려고 하지 마라. 이해되는가? - 결국에는 그녀를 확 붙잡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보냄으로써 바보들의 왕에 등극한다. 이 바보들의 왕, 이라는 말은 클럽 동료인 레오니트가 먼저 쓴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도,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는 이윽고 떠나보내고 만다. 그 당시에는 떠나보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얼마나 참담한 일을 했는지 깨닫고 비통해한다. 바보다. 아니, 바보들의 왕이다.

 

레오니트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밀렌이라고, 그녀와 운명적인 만남, 이라고 불릴만한 사건을 겪고 그녀를 향해 날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운행했던 전설적 소련의 영웅이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그저 백수였을 뿐. 밀렌에게만 의존하게 되던 스스로를 비관하던 그는, 그 끔찍한 열등감과 비탄을 그녀에게 내뱉었고, 이윽고 바보들의 왕에 등극한다.

 

소설에서는 레오니트, 밀렌의 사랑이야기를 프랑크, 세실의 이야기와 병행하지만, 실제로 병치되어야 할 이야기는 미셸, 카미유이리라. 미셸 또한 레오니트 뺨칠 정도로 멋진 일로 여자친구를 만들어내었지만 레오니트 정도의 용기도 없었고, 없을만도 할 주변 상황때문에 사랑과 헤어지게 된다. 레오니트 이야기야 결국 해피앤딩이 되었다지만 미셸은 어떨까? 작가는 끝끝내 미셸의 상황은 숨겨버린다. 미셸은 어린아이였고, 나중에 크니깐 어릴 때 사랑이란 그저 추억에 지나지 않고 잊어버렸다고, 그렇게 해석해도 좋은걸까?

 

그리고 다시 프랑크와 세실이다. 미셸까지 엮인 이 복잡한 관계는, 미셸이 처음 프랑크와 세실이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프랑크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겠다는 생각에 전선에 뛰어들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상관에 대한 불복종, 그리고 탈영, 그리고 다른 여자친구다. 세실은 기다리지만, 그리고 그 시간을 미셸과 떼우지만, 자신이 마음이 있는 사람은 프랑크이기 때문에 시간과 마음에 공백이 생긴다. 그 마음의 반만 미셸에게 향했다면 어쩌면 서로에게 더 좋았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차갑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끌리고,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생각하다니. 세실도 바보들의 왕이었나 보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사샤다. 앞서 이름만 잠깐 언급한 이 사샤는 클럽 회원들에게 배척받는 사람이다. 구성상 너무 뜬금없이 등장하고, 너무 뜬금없이 퇴장하지만, 그리고 너무 뜬금없이 모든 것을 밝혀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샤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저 많은 클럽 회원들 중 미셸의 친구가 아닌, 도움을 주는 아버지같은 존재였으니깐. 사샤의 등장 타이밍이 주인공의 부모가 이혼하는 타이밍과 겹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쭉, 끝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끝나는 짤막한 이야기가 이 소설에 잔뜩 녹아있다. 샤르트르의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가 금방 사라지고, 망명자의 애환을 다루는 듯 하다가도 바로 주인공의 삶에 밑줄이 그여지고,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할 듯하면 다시 주변 가족의 이야기로 바뀐다. 한 권의 소설에 몇 권의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결국, 이 책은 사실 잡탕이다. 그런데 잡탕이지만 두서없이 쓰여진 그래서 뭔가 불만족스러운 잡탕이 아니다.

 

그래서 제목은 수정되어야 한다 :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뒤섞인 잡탕, 그러나 대작.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p.s. 중간에 세실과 주인공이 수학 문제를 푼다.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문제를 풀어본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일단 그 문제가 의도하는 정답은 30km/h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가 잘못되었다. 문제가 의도하는 정답을 이끌어내려면 현실적인 조건들을 모두 무시해야만 한다. 그러니 주인공이 세실의 말을 듣고 - 세실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상상해보자고 말한다 - 문제를 풀기 위해서 시도했을때 풀지 못한 것이 전혀 이상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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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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