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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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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여덟 편의 소설 중에 내 마음을 움직인 소설은 단 한 편이다. 관통, 이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인데, 아마도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인 모양이다. 표지를 보라. 표지에 검은색으로 주욱, 길게 금이 나있잖는가. 이게 바로 관통, 의 중심 소재다. 주인공인 미온, 은 결국 소설 마지막에 금에다가 '한쪽 다리를 깊이' 넣고 (p.95) 그림 너머에 있는 이계로 훌쩍 떠나버린다. 우리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갔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니깐 소설이다. 결국 우리가 여기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다른 삶에 대한 동경, 정도의 주제일 것이다. 아니, 제대로 이야기하자. 물론 소설전반적으로 지금의 삶과 다른 삶이 평행을 이루며 서로 잇닿지만, 실제로는 다른 삶은 부가된 것이다. 결국 내 삶에 대한 절망, 그 끝없는 절망이 바로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이리라.

 

저 주제는 비단 관통, 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아가씨는 재수없게 입에서 두꺼비와 뱀이 나오게 되었다. 뭐, 그 대가로는 가뭄에 찌든 마을에 비가 내리게 되었지만. (파르마코스, p.65) 뭐, 입에서 꽃과 보석이 나오게 된 아가씨도 그다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게 이 이야기의 포인트다. 어떤 아가씨는 '내일모레면 서른' (p.269) 인 채로 뿌리뽑혀 다니던 고객센터에서 뛰쳐나온다. (어디까지를 묻다, p.268) 사실은, 인생은 정말 X같은 거다. 너무 X같은데 또 살지 않을 수가 없는게, 이런 인생이라는 거다. 가장 큰 문제는, X같아서 그만둔다, 가 안된다는 거다. 그냥 살다보니깐, 그냥 살다보니 X이 되어가는 거다. 뭐, X에는 좋아하는 말을 넣어달라.

 

어쩌다보니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주선자가 나에게 어찌나 상대방 집에 돈이 많니, 어쩌니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주선자야 나에 대한 호의로 그런 말들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자꾸 어린왕자, 가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린왕자다, 라는 그런 호러블한 소리를 하려는게 아니라, 앞부분에 저 집은 벽돌이 붉은 색이고 제라늄이 위에 장식되었네, 정말 예쁘네, 라고 하면 어른들은 못알아듣고, 저 집에 오억넘는 집이야, 라고 하면 으억하고 넘어가는게 어른들이라고. 아직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니 나는 아직은 어른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인생 사는게 힘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나쁜 감정도 없고, 주선자에게도 그다지 나쁜 감정도 없지만, 그냥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 자체가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결혼도, 연애도 어딘가 조건에 맞춰야 될것만 같고, 그렇다고 정말 아무런 아가씨나 데리고 갔다가는 집에서 쫓겨날것만 같고 말이지. (우스개소리로 하는 소리지만) 뭔가 뭔가, 그래, 뭔가 불만족스럽고 힘든게 있다. 굳이 이 불만족스러운 것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써야만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내가 안다는 점.

 

결국 사랑이랍시고 떠들어대는 그 무엇인가는 호르몬의 문제이고, 어쩌면 최근에 읽은 단편처럼 - 곽재식의 신비한 사랑의 묘약 (사실 제목이 잘..) - 살살 조합해서 호르몬을 쫙, 하고 뿌리면 쩍, 하고 나에게 상대방의 마음이 달라붙게 만드는 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호르몬의 혈중농도가 내려가면 따라 식어버리는 그런,

 

그런 마음이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면 결국 조건에 맞춰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내 자신의 인생이 참 X같네,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될때가 있다. 당연히, 당연히, 이는 굳이 이런 애정문제에만 통용되는게 아니고, 애정문제같이 포기할 수 있는 (괜히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그런 문제가 아닌, 당장 내가 이번해가 지나면 이제 뭘해야 되지? 하는 그런 삶이라는 무거운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내 자신의 인생이 참, 참, XXX같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솔직히 이런 인터넷 공간에 끄적거릴 수 있는 문제는 그저 이런 애정문제다. 이런 공간에 끄적일 수 없는 그 수많은 내밀한 생각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소설 속 주인공들이야 뭐 금사이로 훌쩍 가버리면 되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컴퓨터에 리뷰 쓰는 나는? 어디로 가야 되는데.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이 소설에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그저 철저히 X같네, 를 보여줄 뿐이다. 사실 소설 중 한 편은 X에 꽃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깐, 좋아하는 말을 X에 넣어달라고 했으니, 그 좋아하는 말이 꽃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그런 소설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우울할 따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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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1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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