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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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롭게 리뷰를 쓰겠다, 장담했지만, 정작 다읽고 나니 어떻게 리뷰를 써야 될지 잘 모르겠다. 이 서재를 둘러보면 알다시피 에세이에 관한 리뷰는 없다. 소설에 관한 리뷰도 몇 개 없다. 그러고보면 옛날에 신간평가단 담당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왜 과학/인문 계열과 소설 계열에 동시에 지원을 못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과학/인문 계열 쪽에 쓰이는 리뷰와 소설을 쓸때의 리뷰는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는 것이 그 대답의 요지였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넘겼지만,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보면 저 말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게, 당장 지금도 이렇게 막상 원래 쓰던 분야의 리뷰가 아닌, 다른 분야의 리뷰를 쓰려고 하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막막함을 타파하고자, 컨닝이라도 한 번 해보려고 에세이에 대한 리뷰를 쓰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컨닝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참조가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신간평가단서재에서 찾아서 들어갔다. 신간평가단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분야가 에세이/소설 등등으로 나누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조차도 잘 모르는 에세이들을 검색하는 것 보다는 분류에 따라서 들어가 읽어보면 나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글들을 조금씩 읽어보았지만, 더욱더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 분들은 이런 책들에 대하여 어떻게 이렇게 리뷰를, 그것도 양질의 리뷰를 편하게 써내려가는걸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면서 말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나는 저런 책들, 예를 들어 법륜스님의 인생수업, 과 같은 책들을 저렇게 리뷰를 쓰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나에게 인생수업, 에 대한 리뷰를 쓰라고 한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쓸 것이다. 먼저 법륜 스님에 대한 정보를 조사한다. 당장 떠오르는 것을 들자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들, 즉문즉설강의를 했던 것들을 다시금 확인해본다. 그리고 법륜 스님의 말들이 지리멸렬하지는 않는지 혹은 이상적이지는 않는지 등을 검토해본다. 다음 단계는 그런 사전 정보와 이 책을 비교해나가면서 법륜 스님이 자신의 말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만약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다면 이 또한 지적할 점이 된다. 마찬가지로 멘토라 불리는 혜민스님을 법륜 스님에 비교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륜 스님, 이라고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즉문즉설, 에 대하여 예를 들어가며 의문을 제기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 즉문즉설과 언어유희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나한테는 우상도 없고, 멘토도 없다. 그리고 성역도 없고, (무엇보다도 당장은 여자친구도 없기 때문에) 당장 감정에 사로잡힐 일도 적다. 결국 어느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그다지 거리낄 것이 없다. 물론 책의 저자를 생각할때면, 그리고 그 저자가 정말 낮은 확률을 뚫고 내 리뷰를 볼때를 생각하면 막무가내로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칼로 흥한자 꼭 칼로 망한다.) 적어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상대방의 말이 지리멸렬하지는 않는가, 발화하고자 하는 내용이 작용하고자 하는 '현실'에 제대로 옳은가, 와 같은 기준 등을 꼭 적용해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얼개가 잡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에세이 쪽은 좀 다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글들이 아닌 것 같달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나도 좋아하고 많이 읽어보았지만, 그런 글들에 대하여 리뷰를 쓰려고 생각해본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번 이 책, 다락방님의 책에 대한 리뷰도 만약에 리뷰를 쓰겠다, 라는 그런 이야기를 이전에 쓰지 않았었다면 영영 쓰여지지 않았을 글이리라. 그렇기에 이 글은 읽으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서 쓰는 글에 다름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이렇게 많다니, 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저 독서공감, 에 나오는 책의 90퍼센트는 읽지 않았다. 당장 첫머리를 장식하는 빅토르 위고, 의 웃는 남자는 들어보지도 못한 책이다. 두 번째는 다행히 어슐러 르 귄의 책이다. 오, 아는 책이야. 세 번째는 하트의 전쟁? 이건 무슨 책이지? 네 번째는 19세고 다섯 번째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라는데 다섯 책을 소개하는 중 겨우 한 권만 알고 있다. 이전에 다락방님의 서재를 들르며 독서 취향이 정말 많이 다르구나, 라고 여겼었지만 이렇게까지 다를 거라고는 사실 상상도 못했다. 알고 있는게 없으니 글을 읽을때 쓸만한 사전정보가 없다. 그렇다고 이 책들에 대해 다 검색을 시행하면서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웃긴 일인 것 같고, 결국에는 반쯤 체념하다시피 그저 글에 눈을 맡기게 된다.

 

두 번째 감상은 바로 위 지점에서 시작한다.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데, 글을 읽는데 지장이 없다. 예를 들어 인문학적인 책을 한 권 본다고 가정하자. 내가 좋아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를 가져와보면, 우리는 저 논고, 를 한 번 읽기 위해서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원리에 쓰이는 기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며, 당시의 철학 사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저 책이 이후의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그런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말을 하는가, 등을 살펴보아야한다. 그렇다고 바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내서가 필요하다. 레이 몽크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번역본들도 여러가지가 있다. 원어를 읽지 못하는 이상 몇 권을 함께 보아야 한다.. 등등등.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하여 정말 수많은 책들과 수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게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이 독서에세이는 다루고 있는 책의 내용에 그다지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다, 라는 이야기이다. 언젠가의 어느 날 썼을 이 책의 한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삼겹살이 주메뉴인 을지로의 한 식당에서는 파절이 위에 계란 노른자를...

여담이지만 저 식당이 어디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서울 시티즌이었다) 모를 것 같기도 한데,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것은 놓아두고서라도, 삼겹살이 주제가 될만한 책은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다락방님이 여기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자.

 

나는 계란 두 개를 꺼내 프라이를 했다. 당연히 반숙으로 한다. 접시에 건져 내어 소금을 살살 뿌리고 포크를 들어 노른자를 톡 터뜨린다. 그리고는 접시를 턱에 대고 후루룩 계란을 마신다.

삽겹살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계란에 관한 이야기였다. 젠장, 방심했어! 삼겹살이라면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참을 수 있지만 계란 정도는 프라이해먹을 수 있지 않는가. 저런 묘사를 보면 그날 반드시 계란 프라이를 해먹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독서 에세이 아니었던가? 책은 계란 프라이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회색 영혼, 이라는 책에서 그 등장인물 중 한 명이 계란 반숙을 그렇게 좋아한단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이 글에서는 부차적인 이야기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란 반숙이다. 계란 반숙 정도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그냥 떠올릴 수 있으니깐. 이 책의 글들은 이런 식이다. 등장인물의 조그만 습관들, 그 중에서도 우리 또한 일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그런 습관들이나 음식이 계기가 되어 우리를 이끈다. 책 내용도 제대로 말하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나는 회색 영혼, 이라는 책을 (앞으로도 읽게 될런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계란 프라이를 하려고 계란을 깨는 순간, 나는 분명 저 책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 조그만 계기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책으로 나를 이끌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저자 소개에서도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한국의 독서율이 낮은 이유는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처음에는 사실 이 문장을 보고 조금 실소를 머금었다. 문장을 보면 동어반복이다. 독서율이 낮다, 라는 말 안에 책을 안읽는다, 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A는 A다, 라고 하는 문장은 어떤 새로운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동어반복적인 문장임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독서율이 왜 낮은 걸까?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왜 안 읽는걸까? 시간이 없다고? 물론 오늘날을 살아가다보면 정말 시간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보다도 더 큰 원인은 '우리를 책으로 이끄는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를 원하는가? TV를 틀어 예능프로그램들을 보라. 스릴을 원하는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도 좋고 게임을 하면서 느껴도 좋다. 삶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싶은가? 소주에 맥주를 타서 마셔라. 급하게 교양이 필요한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라. 도무지 이 순환 속에서는 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는 책을 읽고자 하는 요인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당장 앞서 예로 든 결코 잊지 못할 회색 영혼, 의 계란 프라이부터 소시지, 도넛 등 수많은 음식에서 저자는 책들을 떠올리고, 그 책들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린다. 이는 일견 요네하라 마리가 자신의 에세이들에서 음식들을 소개하는 것에 비견할만하다. 음식에만 국한되는가? 아니다.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과 극장에서 만나자고 했던 에피소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직장 상사와 동료에 얽힌 이야기까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서 저자는 매듭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겪었을 때 자신의 글을 떠올리면서 그 매듭을 풀도록 한다. 이런 경우, 위에서 말한 저런 악순환 속에 책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게 된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나는 판타지 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다. 물론 최근에 발매된 판타지들은 또 그다지 읽지 않았지만, 몇 년 전 판타지의 중흥기때,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자작소설을 올리는 공간으로 형성되어갈때, 나 또한 그 시류에 동참하면서 읽어나갔었다. 이영도의 책들은 그야말로 성전이었고, 이우혁의 책이 나올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런데 이런 판타지 작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드리우는 여류작가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전민희였다. 전민희는 그녀를 스타덤으로 올렸던 세월의 돌, 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물론 한참 독서공감, 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판타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들어올 것이다. 응? 전민희와 이 독서공감, 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세월의 돌, 은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파비안과 여주인공인 유리카는 수백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 만나게 되어, 여행을 같이 다니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또 아닌지라, 저 둘은 그들을 적대하는 세력들에게 쫓겨 생사의 위기를 넘기도 하고, 때로는 납치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가장 마지막의 시련이었다. 저 둘은 어떤 의식을 완성해야만 했는데, 원래라면 아무런 일 없이 끝났을 의식이지만, 적대하는 세력으로 인하여 의식을 완성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여주인공의 희생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러 사건으로 인하여 눈을 잃어버린 남주인공에게 그녀는 자신의 눈을 하나 주고는 의식을 마무리짓는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 혹은 불행이 있었다면 저들과 함께 여행하던 동료 중 한 명이 그 의식에서 여주인공을 어떻게든 영향을 받지 않도록 봉인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남주인공에게 말한다. 자신은 이 봉인을 푸는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넓으니 언젠가는 이 봉인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녀의 곁에 있을 자신이 있냐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다리겠냐고. 결국 여주인공은 봉인되고, 남주인공은 그 봉인석을 들고 세상을 방황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남주인공은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을 보게 된다. 그 음유시인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더욱 받게 된 음유시인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노래에서, 남주인공이 지금까지 여주인공과 함께 지내온 일들이 노래로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 예언시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결국 영겁의 세월을 두고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바로 그때 남주인공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아니라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게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많은 방황속에서 서로 함께 있게 되었다고. 비록 봉인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고, 자신은 그녀를 봉인에서부터 풀겠다는 그런 마음이 담긴 한마디였다. 음유시인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까지, 낭랑한 목소리로 반론하는 그를 보면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남주인공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마치 마법같은 그 한마디에 다시금 음유시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다음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현실이 버틸만하다는 이야기이다.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봉인석 속에 차갑게 가둘 수 밖에 없었고, 어쩌면 자신의 평생을 바쳐도 그녀를 다시 밖으로 깨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잃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설령 헛되게 보이는 희망일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이런 마음에서 이 책은 독서 공감, 과 만난다. 우리는 앞으로도 힘들게 살아갈 것이고, 쉽게 변하지 않는 순환의 바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돌려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라도 그 다음을 그릴 수 있다면, 아직은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독서 공감, 에서는 그런 그 다음, 을 그리는 에세이들이 가득 차 있다. 자연스럽게 독서 편력을 삶에 끼워넣으면서 그런 독서를 통하여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마지막장을 넘기며 이 책의 저자에게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다. 이 다음은, 이 다음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어떤 하루를 보내었나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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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2-06 01:37   좋아요 0 | URL
세월의 돌, 은 읽어본 적 없지만 <츠바사 크로니클>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사쿠라의 날개(이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다 잊어버렸지만, 깃털이라고 해야 할지도)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일이 일어나서 여기저기 다른 세계로까지 모두 흩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돼서 사쿠라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을 샤오랑과 사쿠라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하나씩 찾으러 다녀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뒤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것에서 샤오랑이 둘이나 있었어요 지금까지 함께 깃털을 찾아다니던 샤오랑은 진짜가 아니고 복제된 샤오랑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진짜가 나타났으니 진짜와 다녀야 할지, 지금까지 함께 있어온 사람이 진짜라고 여겨야 할지... 그때 함께 다니던 샤오랑이 조금 이상해져서 어딘가로 가 버렸어요 그 뒤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군요 진짜가 따로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본 사람한테 정이 들어버려서...

츠바사 크로니클에는 클램프에서 만든 만화에 나오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만드는 만화 자체가 세계는 하나가 아니고 같은 사람(얼굴이 같다고 해야겠군요)이 다른 세계에 산다고도 하죠 평행우주와 비슷할까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군요^^
그런데 카드캡터 사쿠라는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사쿠라와 샤오랑이 좀 큰 게 츠바사 크로니클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은 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생활과 책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오래 기억하고 그런 글을 보는 사람은 한번쯤 그 책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 쓰지만...^^


희선

가연 2014-01-03 22: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츠바사 크로니클.. 클램프가 그린 만화 아니었던가.. 카드캡터 사쿠라도 다 같은 세계관이었던 것 같은데, 하하하... 희선님께서도 담담히 글을 잘 쓰시던데요, 풋. 다들 글 쓰는 성격이 다르기도 하고..

희선 2013-12-06 01:42   좋아요 0 | URL
하나 더 생각났는데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시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는 말에, 어떤 시인(이름 잊어버렸습니다)이 자기 것이면서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 말 맞습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지 않을지...

이 책에는 그런 점이 많이 있겠습니다


희선

가연 2014-01-03 22:22   좋아요 0 | URL
책을 받고 바로 읽어나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빌려줬다가 이제 받았습니다, 풋. 이 책은 자기 것이면서도 모두의 것이어야 될 책들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었던 것 같네요.

2013-12-09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3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