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말할 필요 없는 권력자에 대한 우화다. 물론 엄석대 중심으로 읽으면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겠고, 한병태 입장에서 읽으면 '어떻게 소시민은 폭력에 굴종하게 되는가?' 라는 명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한병태에 대한 엄석대의) 왕따, 그러니깐 집단따돌림의 수위가 실제 학교랑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것은 덤. 혹은 실제 학교는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늘 소설보다 놀라운 법이라.. 이미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고, 대학 새내기때만 해도 괜스레 졸업했던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괜스레 수능컷[..]을 검색해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중고등학교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터져서.. 참으로 오랜만에 본 학생들에 관한 기사가 게임셧다운제였고, 그 다음으로 오랜만에 본 학생들의 기사가 집단따돌림에 대한 기사였으니.. 가해자들은 충분한 벌을 받았는가?

 

 

 

내가 봤던 글은 이런 표지가 아니었는데, 찾다보니깐 이 책이 제일 위에 있길래.. 황석영이 쓴 '아우를 위하여' 는 위의 책과 함께 많이 읽히는 책 중 하나다. 또한 마찬가지로 교과서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책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의 줄거리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전체적으로 아우에 대한 편지글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화자는 그와 그의 급우들이 병아리 선생, 그러니깐 교생 선생이 오면서 겪는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 '한 겨울에 걸인이 한 명 얼어죽어도 그것은 우리 탓이어야만 한다.' 라고. 사실 정말 끄적거리고 싶은 것은 내가 고등학교때 겪은 일이다. '아우를 위하여' 에서는 병아리 선생이 자기들 마음대로 휘둘러지지 않아서 영래패거리들이 병아리 선생이 잠깐 뒤돌아 본 사이에 욕을 하고 안보는 곳에서 음란한 글이나 낙서를 끄적거리는 모습이 나온다. 내가 고등학교때, 기간제 교사로 어린 여선생이 온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그 여선생의 외모가 마음이 안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젊은 여선생이니깐.. 잘 따르는 척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장난을 치고, 그게 선을 넘더니 칠판에 필기하려고 여선생이 뒤로 돈 틈을 타서 반에서 껄렁했던 학생이 일어나서 이상한 몸짓을 해보였던 적이 있다. 여선생도 여선생 나름대로 아이들이 자신을 잘 안따르는 것을 이윽고 알게 되었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고, 나중에 학교를 떠나면서 그 여선생이 남긴 이메일 주소에 나는 그저 메일을 한 통 쓸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왜 나는 그때 그 아이를 말리지 못했던가? 지금이라면 주저없이 막아설테지만 그때는 변명같지만 나도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우리는 졸업해버렸고 아직도 나는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이 책도 위의 두 책들과 함께 종종 언급이 되는 책이다. 내용도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유명한 책이고, 아마 위의 두 권을 보고 이 책이 따라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그런데 보통 이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라면 직접적인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집단의 힘..과 관계된 내용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저자도 그렇게 의도를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나는 무섭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나는 집단의 광기에 대해서 항상 되새기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소설 첫머리에 폭력, 그리고 악으로 대변되는 '기표'와 그를 따르는 재수파가 정말 충분한 처벌을 받았는가, 에 솔직히 의문을 남기고 싶다. 그가 저지른 폭행과 도둑질, 심지어 윤간에 이르는 범죄들은 감옥에서 썩어야 정신을 차리지 않겠나, 싶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변하였다면 그 변하기 전에 저지른 죄의 대가를 웃으면서 받아들여야만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권력층으로 그려지는 선생과 형우는 도리어 일종의 초법적 제재를 가한 셈이다. 재수파 나부랭이들에게 윤간당한 여학생으로는 통쾌할 따름이겠지만, 아니 통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녀를 해꼬지한 나쁜 놈들이 도리어 매스컴을 타고 영웅시되니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연사들. 이 것이 옆의 No Image로 뜨는 책의 제목이다. 사실 정말 소개하고 싶은 책은 이 책인데 너무 오래된 책이라 절판이 된 듯 하다. 일종의 연작소설인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인호라는 학생의 권력 투쟁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인 이상 권력은 반장이 되는 것, 공부를 잘 하는 것, 싸움을 잘 하는 것. 특히나 반장이 되는 것이 일종의 권력의 상징인 모양이다. 저때는 그랬나요? 내가 학교를 다닐때에는 반장은.. 뭐, 물론 선생의 총애를 쫌 받을 수도 있었고, 받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여하튼 그렇다고 무슨 힘이 있지는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주먹질이 가장 큰 권력이었던 것 같다. 싸움 잘하는 거. 몰라, 특목고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학교는 평준화 지역이든 비평준화지역이든 사납고 싸움 잘하고 끼리끼리 잘 뭉치는 게[...] 최소한 따돌림은 안당하는 지름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혹시나 이 글을 보는 고등학생이나 중학생들에게 싸움을 잘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ㅠ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지만.. 아 슬프다. 이야기가 많이 샜는데 이전에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극진가라테를 익히는 고등학생을 인터뷰하는데, 아니 글쎄 그 고등학생이 한다는 이야기가, '싸움 잘하고 싶어서요' 일반인이라면 무도를 익혔을 경우 상해죄를 무도를 익히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배로 물게 되지만,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손 댈 방법이 없다. 소년원 2년이 최고 형벌이던가? 아니, 그 전에 너무 어릴때 무술같은거 심하게 익히면 뼈가 안자란다.

 

어, 그런데 권력 중 돈의 힘이 없네?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 정인호는 가난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항상 절대 지면 안된다, 라는 사고를 강박적으로 주입했던 것이고.. 그래서 정인호는 가상의 토끼(아이들에게 줄 뇌물)와 비행기 조종사라고 주장하는 자신의 아버지(실제로는 거의 백수다)를 내세워 아이들에게 신망을 얻으려 하고, 반장선거에서 이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말은 비참하였으니, 아이들은 실제로 토끼를 보지 못하여 불만에 가득 차 있다가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정인호를 나락으로 빠뜨린다. 그리고 나중에 정인호가 자라서 자신의 딸을 키우게 되는데, 아니 이 딸래미도 자신이랑 비슷하게 반장 선거, 아니 권력욕을 보이는 거 있지.

 

그런데 여기서 지켜보아야 할 점은 저렇게 권력욕을 가지고 있는 정인호가 나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담임은 가난뱅이인 주인공을 별로 좋게 보지 않으며(주인공의 시점으로 쓰여지기에 어쩌면 편견일 수 있겠지만) 반 급우 중 하나인 식당집 아들래미와 뒷거래가 있었고(엄밀히 말하면 아들래미보다는 식당 주인과 커넥션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 결과 정인호를 다시금 좌절시킨다. 아무리 잘해도 성공할 수 없는 이 더러운 세상! 인맥과 돈이 정녕 짱인것인가?

 

결국 주인공은 방관자로 남게 된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날뛰어봤자 되는 놈들만 되는 거야, 라는 냉소주의와 소시민적인 생각을 가지고 말이지. 그러나 그 소시민적 생각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일단 나는 살아야지, 라는 저 말이 정말로 '살고 싶어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런 소시민적 무사안일주의를 조세희는 일갈한다.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최근 있었던 강연에서 한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그 강연을 듣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 읽었을 뿐이지만. 난쏘공은 그런 냉소에 찬 이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아직도 쇄를 거듭해 발행되고 있다. 나온지 정말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지금 여기' 에서 읽히고 있는 이 책의 힘이란. 처음 이 책을 내가 접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이거 은근히 야한데? 정도 였다, 젠장. 그렇다. 이 책은 은근히 야했다. 빨간 커튼이 처진 호텔로 데려간다거나 손을 뻗어 여학생의 가슴을 만진다거나 바스락거리는 원피스를 벗고 안아준다거나 등등..(어떻게 이런 것들은 토시 하나 안틀리고 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넘어서고 나중에 다시 읽은 이 책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두 개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소설의 마무리에서 결국 난장이네 삼형제 중 큰 형 영수는 은강그룹의 총수를 죽이려다가 총수의 동생을 죽인다. '짧은 시간의 즉사였기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편안한 죽음을 선사한 영수는 '우발적 살의로 결행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형장으로 끌려나가고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살인은 어느 때든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수가 형장으로 끌려나갔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덧붙일 말이 없으리라. 그러나 이런 개인적 영역의 살인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면, 그런 죄는 어떻게 물어야 할 것인가? 영수의 총수의 동생에 대한 살인이 그 살인 행위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개인적 차원의 살인이라면, 영수가 이윽고 형장에서 당하는 죽음은 제도와 기업 그리고 사회 환경이 몰아넣은 사회적 영역의 살인일 것이다. 사실 위의 에피소드에서 사회와 개인은 깊게 얽매여있어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사회적 영역의 살인이 영수에게만 일어난 것도 아닐터이고, 이윽고 생활비가 부족하여 거리로 쫓겨나 죽는 경우도 예로 들 수 있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아우를 위하여' 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게 된다. '거리의 걸인이 얼어죽더라도 그것은 우리 탓이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살인죄를 단일한 대상에 묻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도 사회적 살인에 방조자로서 가담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죄를 씻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 죄의 사함은 우리가 '잊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살아가기도 바쁜 우리인데 그런게 가능할까? 조세희는 최근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냉소는 버리라고, 그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p. s. 글 쓰고 있는 동안 위로가 되어준 버스커 버스커의 동경소녀에 심심한 감사를..

p. s. 2. 몇 권 더 있겠지만 너무 졸려서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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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27 23:00   좋아요 0 | URL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소설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영화를 보기는 했어요 '우상의 눈물'도 제목은 아는데, 읽지는 않은 것 같군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읽어봤습니다(지금은 난쟁이가 맞죠 하지만 예전에 나왔고 그때는 이 말을 썼기 때문에 그대로 두는 게 낫겠죠) 오래전이라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이 그랬던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런데 가연 님 아주 일찍 이 책을 알았군요 저는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때 책을 읽었다면 비어있던 마음을 채울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지금 책을 읽어도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군요 어쩌면 마음에 조금 빈 곳이 있는 게 나을지도... 그러고 보니 꽉 찬 느낌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군요


희선

가연 2013-07-31 18:05   좋아요 0 | URL
빨리 읽으면 좋은 점들이 조금은 있어요, 풋, 예전에 읽었던 감정과 지금 읽었던 감정을 다시금 비교할수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