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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격변기를 살아온 앞세대의 사람들은 그 고단했던 세월을 무사히 견뎌온 것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으로도 부족할거야."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때로는 3박 4일 동안 말로 풀어도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 기나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반복하기도 한다. 그 엄혹했던 시절을 살았던 게 마치 뒷세대를 대신한 희생의 결과물인 양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그 시절에는 자신이 살고 싶은 시기를 손쉽게 골라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간혹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 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직접 겪는 경험은 소설이나 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다소 무디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남들이 볼 때에는 참혹한 일이지만 자신은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자신이 직접 겪는 일조차 매 순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주어진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란 그만큼 놀랍다.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800년대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한 흑인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실존했던 흑인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를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 쓴 소설로 흑인 노예에 대한 끔찍한 고문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처참한 살해 장면 등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 신랄한 묘사는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코널리는 그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둘을 살갗이 벗겨지도록 매질했다. 죄를 지은 순서대로 우선 체스터부터 시작했고, 그런 다음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등을 후춧가루 푼 물로 문질렀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것이 체스터는 처음, 코라는 반년 만이었다. 코널리는 이후로도 이틀 동안 아침마다 매질을 반복했다." (p.49)
소설의 주인공인 코라는 그녀의 할머니 아자리가 아프리카에서 랜들가(家) 대농장으로 292달러에 팔려온 후 그녀의 엄마 메이블이 태어났고, 메이블은 자신의 딸 코라가 열 살이던 해에 농장을 탈출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코라는 문제가 있는 노예들의 거주지인 호브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북부에서 팔려온 시저가 그녀에게 함게 탈출하자고 청한다. 단 한 번도 농장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코라는 시저의 청을 거절한다. 탈출을 시도한 노예의 결말이 어떻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저는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계획한다. 노예로 팔려오기 전, 부모와 함께 살았음은 물론 글도 읽을 줄 알았던 시저는 매주 일요일마다 시장에 나가 동향을 살핀다. 그러다 우연히 플레처 씨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을 약속받는다. 탈출을 시도했던 흑인이 백인 구경꾼들 앞에서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걸 목격한 코라는 시저와 함게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그들은 잔디밭에 모였다. 랜들가에 온 손님들은 사람들이 빅 앤서니에게 기름을 바르고 불에 굽는 동안 향신료 넣은 럼주를 홀짝였다. 목격자들은 첫째 날 그의 남근이 잘려 입안에 넣고 꿰매졌기 때문에 그의 비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장치는 연기를 피워 올리며 새까맣게 타들어갔고, 나무에 새긴 형체들은 살아 있는 듯 얽혀 들었다." (p.60)
코라와 시저의 탈출은 험난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한 코라와 시저는 자유인처럼 행동하는 연습을 하면서 잠시 동안 안정된 생활을 한다. 코라는 읽고 쓰기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농장주의 추격은 집요했다. 그들을 돌봐주던 샘의 도움으로 코라는 추격조를 따돌리고 탈출한다. 마틴의 도움으로 그의 집 다락에서 숨어 지내던 코라는 결국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끌려가는 동안 코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헤어진 시저가 참혹하게 죽었다는 소식과 랜들가에서 함께 탈출했던 러비도 그들에게 붙잡혀 농장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코라가 열 살이었을 때 농장을 탈출했던 엄마 메이블의 소식도...
"그녀는 가짜 안식처와 끝없는 사슬을, 밸런타인 농장의 학살을 남겨두고 앞으로, 앞으로 갔다. 터널에는 어둠뿐이었고, 저 앞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것이다. 혹은 운명이 그렇게 결정한다면, 막다른 골목 - 텅 빈 무자비한 벽뿐이리라. 마지막 쓸쓸한 농담. 마침내 녹초가 되었을 때 코라는 핸드카 위에서웅크리고 잠들었다. 가장 깊은 밤하늘에 안긴 것처럼 어둠 속에 홀로 떠서." (p.340)
헤택을 누리는 사람이 소수일 때 인간의 잔인함은 그 빛깔을 더하여 선명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목화 산업이 번성했던 1800년대, 노예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던 미국 남부의 대농장은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몇몇 농장주와 그에 동조하는 소수의 백인들이 온갖 혜택을 누리고, 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 이하의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일인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 정권도 다르지 않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 국민의 고통도 그와 같았을 터, 해방 이후 남한의 군부 독재 시절인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따지고 보면 군부 독재로 혜택을 누렸던 몇몇 부역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우리 국민 대다수는 '책으로 쓰면 열 권으로도 부족'한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걸 우려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부의 대물립과 부의 집중이 심화되는 한 1800년대 미국 남부의 백인들에 의해 자행된 비인간적 만행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