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스렁이로 불어오는 습습한 바람이 휴일 오후의 나른함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모든 무기력이란 무기력은 죄다 꺼내 놓은 채 째깍이며 도는 시계바늘 소리만 무심히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하는 일 없이 무료하게 보냈던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경험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속절없이 보내는 그런 시간들을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별 쓸모는 없지만 하다못해 TV 채널이라도 돌려야 할 것 같고, 침대 협탁에 내려앉은 먼지라도 닦아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뭔가에 쫓기는 듯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지요. 문득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조차 없었던 나는 그 생각마저 억지로 막아서야 했습니다.

 

휴식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하릴없이 보내는 그 시간들을 두려워하는 이와 같은 이중 심리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나 봅니다. 할 일을 찾아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나는 지금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무의미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냈던 까닭인지 작가의 이야기가 한결 편하게 느껴집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얇디얇은 이 책에서 작가는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지면을 채웁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무의미한 일들로 채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런 시간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무의미한 그런 삶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거스렁이로 불어오는 습습한 바람에 나는 또다시 무력해집니다. 침대를 스치는 무의미한 시간들이 나를 강하게 유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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