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씨크 명랑 - 근대 광고로 읽는 조선인의 꿈과 욕망
김명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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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어느 기사는 바둑기사 이창호, 작곡가 주영훈, SBS 윤현진 아나운서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을 묻는 것으로 글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퀴즈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엿한 기사였는데 시작만 그랬다는 것이죠. 혹시 정답을 아시는지. 그렇습니다. 저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들은 모두 남양유업과 MBC 방송국이 주관했던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에 참가했던 경력이 있다더군요. 40대 이후의 세대라면 TV에서 방영되던 그 때의 장면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실토실 살이 찐 아기들이 홀딱 벗은 몸을 엄마의 손에 의지한 채 카메라 앞에 서서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아주 서럽게 울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1971년에 시작돼 1983년 1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던 우량아 선발대회는 숱한 사연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여담이지만 이창호는 1977년 대회에 참가하여 전국 2위를 차지했다는군요. 당시 19개월 되었던 이창호의 몸무게는 4.8kg이었다네요. 우량아로 선발되면 선물도 받고, 광고모델로 활동도 했으니 가난했던 그 시절의 부모님으로서는 자격만 된다면 참가를 한번쯤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첫 대회 참가 신정자만 1830명에 달했다고 하니 이벤트가 많지 않았던 당시에 20개월 미만의 아기를 둔 부모들이 우량아 선발대회에 쏟았던 관심이 지대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분유가 처음 들어온 건 언제였을까요. 일제강점기의 광고를 분석한 <모던 씨크 명랑>의 기록으로 보면 1924년쯤이었나 봅니다. 김명환의 <모던 씨크 명랑>은 중견 언론인인 저자가 1920년부터 1940년까지 20여 년간 발행된 신문 6천여 부의 광고면들을 뒤져 신문광고에 담긴 근대 조선인의 삶과 사회상을 흥미롭게 짚어낸 책으로서 1924년 5월 조선일보에 실린 분유 광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근대 광고로 읽는 조선인의 꿈과 욕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분유 광고 이외에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기록들이 여럿 실려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산의 분유 '라구도겐Lactogen'(락토겐)은 한술 더 떠 '분말 순유純乳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분유의 용도를 여섯 가지나 나열했다. 즉 젖먹이나 허약아, 임산부의 영양 보충용, 이유기 아기용으로 쓸 뿐 아니라, 멀쩡한 성인 남녀들에게도 분유를 물에 타서 '보건용 음료'로 마시자고 제안했다. 영양 보충용 식품으로 광고한 것이다." (p.64)

 

저자는 20년 치 신문광고 전체를 샅샅이 훑어 190여 점의 중요 광고의 원본 이미지를 수록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1부 놀라지 마시라, 모던한 이 맛!, 2부 환락의 경성 근대의 에로티시즘, 3부 명랑하다! 오리지나루 팻숀과 발명품, 4부 고통의 세상 만병통치약의 꿈, 5부 흰옷 입은 민족의 슬프고 기발한 시, 모던 광고 파노라마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의 실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광고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문물에 대한 그 시절 사람들의 경이와 흥분이 고스란히 담았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지금의 광고 문구에 비하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도 광고를 통하여 구매를 유도한 후 물건은 보내지 않고 돈만 챙기는 사기가 횡행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나체 사진집 광고들이란 대부분 속임수였다. 업자들이 보내온 것은 광고와 전혀 달랐다. '아주 빨가버슨 사진'도 아니고 '남녀가 바라고 바라던 사진'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소포 안에는 기생이나 여배우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서 헤엄치는 장면 같은 사진이 들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여자가 아닌 장정들이 벌거벗고 땀흘리며 일하는 사진을 보내오는 일까지 있었다." (P.72)

 

'살찌라! 건강의 추秋에 살 안 찐 분은 에비오스 정을!'이나 '위생상으로나 미용상으로나 남자들은 3일에 한 번, 여자들은 10일에 한 번은 (머리 감기가) 꼭 필요'와 같은 광고 문구에는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위안소에 들어가는 사병에게 성병 예방을 위해 제공했다는 '돌격1번突擊一番'과 같은 콘돔 광고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삶은 절대적으로 남성 위주의 사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말이죠.

 

오늘 이 책을 읽는 내내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옆에서 얼마 전에 사준 "The Currents of Space By Isaac Asimov"를 읽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들의 나이 때에는 SF소설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역사에 더 애착이 가는 듯합니다. 내가 겪었던 시절에 더하여 그 이전 세대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그리움처럼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날들이 많지 않은 어린 시절에는 과거보다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겠지요. 김명환의 <모던 씨크 명랑>은 내 할아버지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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