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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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은 언제나 첫문장을 기억하게 된다. 첫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가 그렇고,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로 시작되는 <남한산성>이 그렇고,'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출항하지 못했다.'로 시작된 <흑산>이나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뿐이다.'의 <현의 노래>가 그랬다. 작가에게는 이런 언급이 흘러간 세월처럼 무용하고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첫문장의 느낌은 '그래. 이래야 김훈이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그것은 곧 책의 마지막장까지 숨가쁘게 달려갈 독서의 여정을 위해 첫숨을 고르는 역할을 한다.

 

"마동수(馬東守)는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p.7)

 

소설은 그렇게 신문 기사의 한 문장처럼 건조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1979년이라는 과거에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그해의 한 귀퉁이를 살았던 '마동수'라는 인물을 독자는 기억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진 누군가의 삶을 기억한다는 건 그가 살다 간 시간을 두서없이 뒤적이는 일이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시간은 어떤 대상이나 물질로 형상화되고 조금 더 선명해진 색채로 우리의 의식에 조롱조롱 맺힌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p.140)

 

일제 강점기에 중국을 떠돌던 마동수는 해방이 되자 서울 외곽의 고향집 근처로 돌아온다. 부모의 생사나 행방을 찾을 길 없었던 터라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단신으로 그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그는 피 묻은 군복을 잿물로 빠는 빨래꾼이 된다. 빨래터에서 그는 흥남부두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고 탈출한 이도순을 만나 부부가 된다. 장남 마장세가 태어나고, 지우려고 했던 차남 마차세가 태어난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온 마동수의 가족. 그러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돌던 마동수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르곤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순전히 이도순의 몫이었다. 입대하여 월남전에 파병된 마장세는 그곳에서 제대하여 미크로네시아로 떠나고, 전방 GOP에 배치된 마차세는 상병 휴가를 나왔다가 아버지 마동수의 임종을 맞는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p.184)

 

퇴역한 미국인 문관과 함께 미크로네시아에 정착한 마장세는 그곳에서 고철업과 호텔업을 벌인다. 아버지의 임종에도 그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 제대를 한 후 마차세는 사귀던 여자 박상희와 결혼한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주간지 인턴 기자로 취직하엿지만 3개월 만에 해고된다. 미대를 졸업한 박상희는 미술학원의 강사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요양원에 입원한 이도순의 병원비며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빠듯한 여건이었다. 마차세는 물류회사에 취직하여 오토바이 배달 일을 시작한다.

 

"박상희는 이 가엾은 남편과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살아온 날들의 시간과 거기에 쌓인 하중을 모두 짊어지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의 벌판을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벌판은 저쪽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p.185)

 

마장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전우 김정팔의 형을 통하여 오장춘을 소개받는다. 마차세의 친구이기도 한 오장춘은 제대 후 고물상을 시작했다. 폐타이어와 고철을 취급했던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여 고철과 폐타이어를 수입하는 무역회사로 발전한다. 마장세를 통하여 마차세의 소식을 듣게 된 오장춘은 마차세를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도록 한다. 오장춘의 거래업체가 된 마장세는 미크로네시아 곳곳에 방치된 폐자동차와 고철을 치워주는 대가로 그 나라에서 돈을 받고 그것을 다시 오장춘의 회사에 판매한다. 그리고 모래에 묻혀 인양이 쉽지 않은 폐자동차는 바다에 빠트려버리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아버지가 죽어서 세상은 홀가분했다. 아버지의 몸은 검불 같은 것이었지만, 그 무게가 마차세의 시간을 짓누르는 중력은 컸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생활의 지표가 될 리도 없었고 생계에 보탬이 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어서 남은 사람의 삶이 더 막막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한평생 끌고 온 시간과 아버지가 한평생 지고 온 짐이 소멸함으로써 아버지 없는 세상은 더 새롭고 가벼워질 것도 같았지만 아버지의 시간과 아버지의 짐이 과연 소멸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버지가 검불같이 하찮고 의미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어서 없어지고 난 후의 세상은 더욱 막막했다." (p.198)

 

마동수가 죽고 8년을 더 살았던 이도순은 요양원에서 죽었다. 그때도 역시 마장세는 오지 않았다. 월남전에서 작전을 나갔던 분대원이 고립되어 적들의 공격을 받고 일부는 죽고 김정팔이 부상을 당하자 그는 살아 남은 두 명의 부하와 함께 탈출하기 위해 김정팔을 사살했다. 그리고 그와 나머지 두 명은 탈출하여 살아 남는다. 그 공로로 전사한 김정팔과 마장세는 훈장을 받았다. 마장세가 숨겼던 비밀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숨긴 비밀이 밝혀질까봐 두려웠었다.

 

"마장세는 감방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다가왔다. 수염이 자랐고 몸이 말라서 옷이 헐렁했다. 걸음걸이가 끌리는 듯했고 나이보다 한참 늙어 보였다. 마차세는 멀리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어느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지, 두어 달 만에 한 번씩, 겨울이면 새벽에 기침을 쿨럭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장세의 걸음에 옮겨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 (p.342)

 

가족이라기보다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던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전쟁터에서 있었던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나라를 등졌던 마장세는 결국 모든 걸 잃은 채 안 좋은 모습으로 귀국한다. '나중에 나는 죽어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아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습관을 따라하거나 아버지가 밟았던 삶의 길을 따라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인 양 질기다.

 

몇 년 전 작가는 이병률 시인과 함께 미크로네시아의 추크섬을 여행한 후 여행 에세이를 썼었다. <안녕 다정한 사람>이라는 제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섬에는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여 그곳에 정착한 김도헌 씨가 살고 있다. 그가 쓴 <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에 김훈 작가의 추천사가 실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곳곳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오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 많은 까닭도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작가의 탁월한 문장 표현력이 없었더라면 작품에 대한 평은 훨씬 박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나 작품성보다는 작가의 능력이 빛났던 소설이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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