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어지간히 없어졌겠지, 생각할라치면 도돌이표처럼 원래의 자리에 그 감정 그대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때마다 하릴없는 한숨만 깊어지곤 한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슬픔은 그렇게 숨죽인 채 조용히 가슴 한켠을 붙박이로 차지하고 있다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우연과 같은 작은 일에도 슬픈 감점을 봇물처럼 터뜨리곤 한다. 그렇다고 가슴 속의 눅눅헤진 슬픔을 깨끗이 털어내고 마른 걸레로 보송보송하게 훔쳐낼 수도 없으니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저 스스로 잠잠해지기를 기다려며 참고 인내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무대책의 무기력하기만 한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슬픔의 유효기간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는 것은 내 안의 슬픈 감정이 지금 현재 요동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 슬픔을 영원히 잠재울 수는 없는 법. 슬프지 않은 사람이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유예된 자가 슬픔이 발현된 자를 향해 내보이는 동지애이거나 말할 수 없이 착잡한 연민의 감정이 아닐런지. 너나 할 것 없이 살아간다는 건 결국 슬픔 보균자로서의 가엾은 처지를 견디는 것. 그렇게 내가 당신을 이해하는 것.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재 무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 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는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는 나의 슬픔으로 너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렇게 그득해진 우리의 슬픔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2016년을 하루 남겨 놓은 오늘, 지금 슬퍼하는 누군가에게 아직 슬픔이 찾아오지 않은 한 사람의 자격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다. 슬픔이 또 다른 슬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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