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새벽 기온은 생각보다 푸근했다. 달도 별도 없는 어두운 하늘과 인적이 끊긴 숲은 적막하다 못해 괴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빗물에 젖은 낙엽의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냄새와 간간이 퍼지는 솔향기. 적당히 젖어 한결 부드러워진 흙과 점액질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로 인해 숲의 나무들은 안심하고 숙면을 취하는 듯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꿩이 이따금 푸드득 날아올랐다.

 

산길을 걷는 내내 나는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비겁으로 일관했던 대통령의 3차 담화문 발표를 들었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아마도 나처럼 한번쯤 '용기란 무엇인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진 게 많은 사람, 잃고 싶지 않은 게 많은 사람은 결코 용기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은 잃고 싶지 않은 게 너무도 많았나 보다. 가난한 사람은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더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비록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유혹이나 욕망을 초월한 사람, 물욕이나 권력에 대한 욕구를 초월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용기란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고, 두려움의 정복'이라고 했던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나 '용기는 가장 훌륭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며 지혜를 수반하는 인내라야 한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지금 시점에서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하기를 '인류의 경탄과 존경심을 자아내게 하는 자질 세 가지는 첫째는 사심없는 마음이고, 둘째는 실용 능력이며, 셋째는 용기'라고 했다. 진실을 말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며,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의 결과에 집착하여 이것은 되고, 저것은 되지 않는다'는 식의 구별은 사람을 한없이 비겁하게 만든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심사가 아닌가. 결국 우리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용기는 삶의 근본이며, 모든 덕목의 토양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던 성경 말씀도 결국 용기의 저변에 깔린 가난한 마음, 시인 에머슨이 말한 사심없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진실을 위해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용기있는 자의 어눌하고 솔직한 한마디 말이지 비겁한 자의 번지르르한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 때문에 분노했던 국민들에게 또다시 '거짓'의 말로 변명하는 대통령과 여당은 그 얼마나 비겁한 것인가.

 

오후가 되자 바람이 거세다. 마른 낙엽은 서걱거리며 보도 위를 뒹굴고 한 줌 초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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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0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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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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