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얼마나 푹하던지요. 새벽에 산을 오르는데 어찌나 덥던지 운동복 상의 지퍼를 내려 땀을 식혀야만 했습니다.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의 캄캄한 어둠은 숲의 숨결을 더욱 가라앉게 했습니다. 은사시나무의 잎이 떨어진 등산로 위를 상수리나무의 길쭉길쭉한 갈색 잎들이 뒤덮고 있습니다. 켜를 이룬 낙엽을 밟는 기분이 마치 어느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마른 낙엽이 비처럼 떨어집니다. 나는 결국 운동복 상의를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걸었습니다.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나도 모르게 구르몽의 시가 떠오릅니다. '시몬, 나뭇잎 져 버린 숲으로 가자./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지금은 고인이 된 이브 몽땅의 노래 "고엽"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깊은 저음으로 울려퍼지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쓸쓸한 느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박영근의 시인은 그의 시 '다시 11월'에서 11월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뿐"이라고.

 

이따금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계절의 감상을 말하노라면 '오글거린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계절의 감상이라는 게 일상이었던 듯합니다. 편지 첫머리에는 으레 계절 인삿말 한두 줄이 쓰이곤 했으니까요. 첫인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어디 멋진 말이 없을까 형이나 누나가 읽던 시집을 뒤적이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상적인 멘트도 받아 적곤 했었지요. 그렇게 온 몸으로 계절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눈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계절을 오롯이 느껴보지도 못한 채 또 다른 계절을 맞곤 합니다. 한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속에서, 한겨울에는 후끈 더운 난방 속에서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른 채 보냅니다. 그러니 계절에 대한 느낌이 있을 리 만무하지요.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계절 부적응자 또는 계절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삐삐가 유행하던 그 시절의 감성을 요즘 아이들은 모를 테지요. 

 

나태주 시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달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되었다는 황인숙 시인의 11월,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하다고 말하는 이해인 수녀의 11월, 흩어진 낙엽 위에 나이테를 키우는 김경숙 시인의 11월, 무어라고 미처 이름 붙이기도 전에 찾아온다는 유안진 시인의 종교의 계절 11월,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이라 말하는 오세영 시인의 11월을 요즘 사람들도 온몸으로 느껴봤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계절의 불구자가 아닌 계절 탐닉자 또는 계절 마니아로 살았으면 하고 말입니다. 한스 에리히 노삭의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을 읽으면 그 느낌을 조금 알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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