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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평점 :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얘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마냥 철부지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피부로 체감하는 순간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 부모는 차이를 좁혀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물론 다른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자유학기제 덕분인지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무작정 놀기만 하는 듯했고, 이를 지켜보는 아내와 나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놀아제끼면서도 하나 다행인 점은 어떤 책이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아내도 말했었지만 우리집에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들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었다. 그러나 나도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한민국의 부모 중 한 사람인지라 내심 '저렇게 놀아도 되나?'하는 근심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던 아들이 지난 주말에 아내에게 털어놓았던 말은 꽤나 진지했고,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린애라는 편견을 나와 아내의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아들의 말인즉슨 이랬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수업이 끝난 평일 오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PC방에 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PC방에서 쓰는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PC방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 싶어도 습관이 되어 그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 친구의 고민을 들은 후에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친구가 지켜야 할 하루하루의 일과표를 꼼꼼히 작성해주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 일과표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PC방에 가는 횟수도 줄이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아들은 말했다. 그 친구가 일과표를 얼마나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이래라 저래라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부모의 말과 친구에게서 듣는 조언은 분명 그 친구에게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었을 터였다. 그 아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방치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들과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는 그 친구의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 전 다 읽은 조정래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2>에도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맡고 있는 이소정 선생님은 자신의 반 학생 중 한솔비가 며칠째 결석을 하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다. 솔비의 오빠가 가출을 해서 엄마는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솔비 또한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밥도 굶은 채 학교도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이소정 선생님은 먹을 것을 사 들고 솔비의 집을 찾는다. 중학교 2학년인 솔비의 오빠는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공부만을 고집하는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에 반발하여 결국 집을 나갔다고 했다. 솔비의 오빠 한동유는 자신이 존경하던 유명 만화가를 찾아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소정 선생님의 설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풀꽃도 꽃이다2>에는 1권과는 달리 아이들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최은숙은 알바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나중에 장사를 하고 싶어 하고, 대장간을 하는 같은 반 친구 아버지를 본 후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 하는 최윤섭,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대안학교로 전학을 온 원누리, 원명준 남매, 집안이 가난하여 학원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해가며 공부를 하는 신석우 학생 등 다양한 모습이 전개된다.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p.90)
소설은 대한민국 과외1번지로 통하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을 그리면서 끝을 맺는다. 어찌보면 달리 대안이 없다는 서글픈 결말인지도 모른다. 대학입시와 취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그 이전의 모든 교육은 동력을 잃는다. 수저 계급론으로 대변되는 불공정 경쟁의 만연은 대한민국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자 국가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자녀의 대학이 결정되는 사회, '노력'이 곧 '노오력'으로 변질되는 사회에서 교육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교육이 단지 일부 계층의 교양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날이 차다. 공정한 경쟁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의 미래는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