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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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은유만으로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스트 모던 계열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독자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유발할 정도로 불친절하거나 난해하지 않게 책을 쓴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지만. 소설가로서의 내공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가지고 현실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아무리 '소설은 현실의 모방'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현실의 한쪽 모서리를 그대로 옮겨 온,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다 그렇고 그런 작품만 쓴다면 독자들은 언젠가 소설에서 영원히 멀어지고 말 테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등단 25주년을 맞는 해에 발표한 11번째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는 그의 작품 성향과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가 쓴 대부분의 장편소설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쓴 단편소설의 소재나 문장의 일정부분을 차용하는 그의 습관은 이 책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하루키의 소설을 애독하는 독자라면 그가 쓴 단편소설 <TV 피플>을 단박에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작품과의 유사성이나 연계 가능성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첫머리에 <TV 피플>에 썼던 문장을 차용한 것은 맞지만 소설의 소재나 구성은 전혀 다른,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는 심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아사이 마리'에게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거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PM 11:56'이라는 챕터의 소제목도 이채롭다. 작가는 그런 식으로 특정하지 않은 도시의 하룻밤을 시간별로 세분하여 그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도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1시 56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다음날 아침 6시 52분에서야 끝이 난다. 도시인의 특성을 대변하듯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럿이지만 딱히 이렇다 할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작가는 마치 감정이 없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그들의 모습을 그저 관찰만 할 뿐이다.

 

대학생인 아사이 마리에게는 이름에서 한 글자만 다른 언니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언니 아사이 에리는 두 달째 잠에 빠져 있다. 어려서부터 얼굴이 예뻤던 언니는 잡지 모델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고,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꼈던 마리는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두고 중국인 학교로 전학한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마리는 대학에 진학하여 중국어 통역이나 번역을 목표로 미래를 설계한다. 항상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자신의 삶이라곤 살아보지 못했던 에리와 누군가의 보호와 떠받듦은 없었지만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왔던 마리의 모습이 소설 내내 교차된다.

 

마리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는 다카하시이다. 에리의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데이트 장소에 함께 나갔던 다카하시는 그곳에서 보았던 마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리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재즈 동아리에서 트럼본을 불고 있는 다카하시는 심야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가던 중이었다. 다카하시가 사라진 레스토랑에 러브호텔 알파빌의 매니저인 가오루가 등장한다. 불법체류자인 중국인 창부에게 폭력 사건이 있었던 것. 가오루는 마리에게 통역을 부탁한다. 한때 알파빌에서 알바를 했던 다카하시의 소개로 마리를 찾았던 가오루는 중국인 여성을 무사히 돌려 보낸 후 마리를 근처의 락카페에서 잠시 머물도록 한다. 밴드 연습을 끝낸 다카하시가 다시 마리를 찾아온다.

 

다카하시는 사실 최근에 에리와 만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때 에리는 매우 위태해 보였고, 동생과의 사이가 멀어진 것을 슬퍼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에리는 많은 사람들과의 형식적이고도 의례적인 관계맺기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관계맺기에 지쳐버린 에리와 관계맺기에 목마른 마리는 소설 속의 자매인 동시에 도시인의 두 단면인 듯 보인다. 마리는 알파빌의 빈 객실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청소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고오로기를 만난다.

 

"마리. 우리가 서 있는 지면은 말이지,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밑이 쑥 꺼지고 그래. 한번 꺼지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해. 저 아래 어둑어둑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p.189)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망자 신세가 된 고오로기의 고백은 한동안 이어진다. 마리는 고오로기와의 대화에서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시간을 들여서 자기 세계 같은 걸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자각은 있어요. 혼자서 거기 들어가 있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놓여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구태여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란 뜻 아닌가요? 게다가 그 세계란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세계라고요. 종이 상자로 지은 집처럼 조금만 센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날려갈 것 같은……" (p.199)

 

마리는 비로소 잠으로 빠져든 언니를 자신조차 피해왔다는 걸 깨닫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지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캄캄한 어둠 속에 어쩔 수 없이 갇히게 되었을 때 언니 에리가 두려워하는 자신을 꼭 안아주며 안심시켜 주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후 에리는 늘 바빴고, 떠받듦을 받는 언니가 늘 부러웠던 마리는 일부러 그녀를 피해왔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도망쳐 온 언니를 이제는 자신마저 피하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p.202)

 

소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라고 명명된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도시의 이곳 저곳을 조감한다. 에리의 밤과 마리의 밤이 교대로 비춰지는 동안 작가는 어떠한 식으로든 설명을 더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냉정한 말이지만 타인의 삶은 그저 관찰할 뿐 개입할 수 없음을 작가는 그런 식으로 밝혀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위에서 원인과 결과는 손을 잡고, 종합과 해체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갈라진 틈새 같은 곳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한밤중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그런 곳이 어딘가에 은밀히 암흑의 입구를 연다. 그곳은 우리의 원리가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는 장소다. 언제 어디서 심연이 사람을 집어삼킬지, 언제 어디서 토해낼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다." (p.210)

 

한때 <어둠의 저편>(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소설은 출판사와 제목을 달리 하여 재출간된 것이지만 시니컬한 도시인의 모습을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재현해 낸, 하루키만의 소설 형식 이른바 하루키류를 공고하게 하는 데 일조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사족이지만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다카하시의 좌우명은 재미있다. "천처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 하루키의 다른 작품 <1973년 핀볼>에도 등장하는 이 말은 모든 독자에게 전하는 그의 충고인지도 모른다. '다음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구가 눈에 아른거린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 오늘 아침은 분명 어제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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