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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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계절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로 말하자면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네 영혼이 푸른 빛깔로 맑게 되살아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살에 열병을 앓은 이후 수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른 살 무렵에는 걷기조차 힘들었다는 작가는 그런 불편한 몸으로도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빛깔로 밝게 빛이 납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창작이란 신을 찾는 길'이고 '쓸 수 없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작가의 창작열을 생각하면 나는 이따금 숙연해집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자본주의가 불러온 폐해는 우리의 몸을 살찌우는 대신 영혼을 황폐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카슨 매컬러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갈수록 몸은 약해졌지만 그녀의 영혼은 더욱더 밝아졌으니까요.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대체로 겉으로 드러난 것만 중시하는 까닭에 사랑도 주로 선남선녀의 결합이나 조건 대 조건의 만남만 생각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에 오염된 사랑을 진실한 사랑인 양 믿는 것이지요. 소설 속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대부분 예쁘고 멋지게 묘사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주목할 필요도 없거나 그들이 하는 사랑은 사랑도 아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것처럼 매컬러스가 창조한 세계에는 착각에 빠진 상처 입은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개인적인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를 고독, 고립, 소외의 감정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슬픈 카페의 노래>에 등장하는 세 사람도 그러합니다. 매컬러스는 인간은 사랑의 감정을 줄 수는 있지만 사랑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는 될 수 있어도 사랑받는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인간은 타인의 사랑을 완벽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체적 기형도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줄 수는 있어도 되돌려 받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미스 아밀리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료 가게를 운영하면서 돈 버는 일에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만들어 팔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등 손재주가 뛰어난 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고 말조차 어눌하여 사교성은 없었습니다.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아밀리아는 키가 6척 장신이고, 몸무게는 70킬로에 육박하며, 창백한 얼굴에 회색빛 사팔눈이 너무 심하게 가운데로 쏠려 있고, 골격이나 근육도 마치 남자 같고, 짧은 머리는 뒤로 빗어 넘겼고,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긴장과 핀곤함이 감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여자로서의 매력은 눈곱만치도 없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밀리아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니 마을에서 괴팍하기로 소문이 난 마빈 메이시였습니다. 얼굴이 번듯하고 방직공장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던 그는 아밀리아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성격도 온순하게 바뀌는 등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결국 결혼합니다. 그러나 마빈 메이시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아밀리아로부터 밀주일만에 쫓겨났고 복수를 다짐하며 마을을 떠납니다. 전 재산을 그녀에게 주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아밀리아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꼽추 '라이먼'이었습니다. 거지나 다름없는 차림새로 자신이 아밀리아의 사촌 오빠라고 주장하는 '라이먼'을 그녀는 극진하게 대합니다.

 

약한 몸이었지만 교활하고 말주변이 좋은 '라이먼'의 의견에 따라 사료 가게는 카페로 변합니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아밀리아의 카페는 그야말로 깊은 위로와 위안을 주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질을 하다 교도소에 갇혔던 마빈 메이시가 가석방이 되어 마을로 돌아옵니다. 마빈 메이시와 아밀리아의 관계를 알 리 없었던 라이먼은 마빈 메이시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왜라고 물어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말하듯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라이먼은 갈 데 없는 마빈 메이시를 카페로 불러들입니다.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셈이지요.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 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 난롯불만 타고 있는 방에서 갑자기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멈출 때 느껴지는 정적과 텅 빈 집 안에 너울거리는 그림자 - 이런 혼자라는 공포와 마주하기보단 차라리 철천지 원수를 들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p.112)

 

아밀리아가 라이먼을 끔찍이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토록 싫어했던 마빈 메이시를 집에 들인다는 것은 그닥 내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라이먼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녀는 마빈 메이시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마빈 메이시와의 결투를 선택한 아밀리아는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마빈 메이시 또한 그에 대비합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두 사람의 결투가 시작되었고 승기를 잡았던 아밀리아는 결국 그녀가 사랑했던 라이먼에 의해 패하고 맙니다.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고, 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면 삶의 가격은 얼마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때때로 삶이란 전혀 가치 없거나 만약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이 결국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오지 않는가." (p.102)

 

마빈 메이시와 라이먼은 아밀리아의 전 재산을 파괴한 후 귀중품만 챙겨 달아납니다. 아밀리아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사랑받는 일을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나아가 사랑받기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지요.

 

언젠가 카슨 매컬러스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고독은 거대한 현실, 사랑은 거대한 필수, 사랑이란 하나의 특수한 학문"이라고 말이지요. '고독이 거대한 현실'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절실하게 느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만 뜨면 자살 소식을 듣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고독은 이미 오래된 지병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학문을 처음서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누구나의 가슴속에도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 사랑은 거대한 필수가 아니라 사랑은 거대한 현실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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