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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변화의 모습을 말할 때면 나는 항상 허둥대게 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정지된 스틸사진처럼 누군가에게 딱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선악이나 호불호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시간의 이쪽 편에 서서 저쪽 과거를 바라보는 관계로, 또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저들이 사는 그곳을 바라보는 관계로 객관성이라는 건 언제나 담보될 수 없는 어떤 하위 개념에 놓이게 된다.

 

가령 왕정 체제였던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의 사람들과 비교될 때 승자는 항상 대한민국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근시안적인 사고는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변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사고는 언제나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격일 뿐 우물 밖의 세상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 핸드 타임>을 읽으면서 위에서 내가 언급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작가는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무수히 많은 러시아인들을 만났고, 그들이 작가에게 들려주었던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증언을 이 책에 실었다.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인간', 이를테면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짜르시대부터 갖고 있던 그들의 경제적 토대나 정치체제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마저 달라진 '새로운 인간', 소비에트 문명에 적합화 된 '소비에트적 인간'이었다. 그러나 1991년 자본주의 러시아의 탄생과 함께 70여년 동안 지속되던 사회주의 실험은 급하게 막을 내렸다. 사회주의 소비에트 이후의 시대를 흔히 포스트 소비에트라고 부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 시대를 세컨드 핸드, 곧 중고품 시대라고 부른다. 스탈린 시대부터 푸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난 처음에는 미처 녹음기를 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삶이, 그냥 삶이었던 것이 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녹음기를 켰어야 했는데 말이다. 난 사적인 대화든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대화든 항상 그 순간을 놓칠세라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처럼 경각심을 잃을 때가 있다. '문학의 작은 조각'은 어디에서나, 때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다." (p.526)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편집하고, 기록하는 그 모든 것을 과연 문학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작가가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작가는 무슨 수로 되짚으려 했던 것일까. 공산주의 속에 살던 인간, 민주주의 속에 사는 인간, 전쟁터에서의 인간, 평화로운 삶 속에서의 인간 등 작가가 전하는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유형은 다양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인간 개개인의 적나라한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어떤 체제나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참인간의 모습을 만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혼란은 내 의식의 한 쪽 끝을 길게 잡아당기는 것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했다.

 

"인생은 개 같아요! 내가 얘기를 해주죠. 인생은 선물을 선사하지 않아요. 난 내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기억에도 없어요. 아무리 떠올리게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아요! 난 독도 마셔보고 목도 매달아봤어요. 한 세 번 정도 자살을 시도했었어요. 지금은 손목을 그은 상태고요." (p.561)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주고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려고 했던 사회주의 혁명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자본주의 체제도 결국 러시아인의 삶을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러시아의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이 나타나는가 하면 강제수용소 체험이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단다.

 

시간의 흐름을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현재는 언제나 좋은 것, 선하고 아름다운 것일 테고 그에 비해 과거는 언제나 나쁜 것, 미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꼭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만은 아닐 터였다. 구소련을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과 박정희 시대를 동경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인간의 가치 판단은 외부환경의 객관적 기준에 기인한다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환경에 익숙했었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예컨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0년의 어느 날 그 소식을 알지 못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전보다 나아진 환경에 만족해 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의 지금 시점에도 '그때가 좋았지' 회상하는 인간들이 더러 있다.

 

이 책은 한 편의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작가가 추구하거나 지향하는 바는 명확해 보인다. 어떤 체제나 환경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데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십일 세기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는 지구 온난화나, 테러나, 종교 문제처럼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문제가 더 시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번쯤 되물을 것이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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