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되어지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시간의 소멸이라든가 새벽의 축구중계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름대로 뭔가 해야 할
일이 잇을 것 같은데 단지 생각뿐이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켜보았는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것들. 마치 어둠 속에서
다트를 던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느낌이 내 머릿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그런 일들을 지켜보고 잇노라면 하루키의 표현처럼 '문득 들여다본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드'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막연히 손을 놓게 된다. '이제부터 월요일 새벽까지는 무작정 쉬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어느 광고 카피의 문구처럼
시간의 잔상 위에서 마냥 흔들리고만 싶은 것이다. 어차피 그래도 시간은 가고 어떤 모습으로든 월요일은 도래하니까.
내일 오후에는 큰누나의 아들(그러니까 내게는 조카 되시겄다)의 결혼식이 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갈 것이다. 아무리 친척이라지만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향하게 된다. 화장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 보며 시간의 경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나온 시간 동안 그 친척분은 뭘 하면서 보냈을까 생각하곤
한다. 부작위에 의한 시간의 소멸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변화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