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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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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사이에 여행기를 많이도 읽었다. '여행작가'라는 새로운 직업군에 편입된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한 탓도 있을 테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뭔가 특별한 걸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여행기만큼 달콤한 유혹이 또 있을까.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푸른 하늘과 이국적인 건물들, 그리고 넘실대는 파도와 마냥 행복한 듯 보이는 관광객들. 그러나 여행기를 탐독하며 한 켜 두 켜 부러움이 쌓이는 동안 여행기가 주는 위로와 대리만족의 기쁨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여행기를 읽지 않았다. 유행하는 여행기라면 다들 비슷비슷해 보였다. 내용보다는 사진이 더 많은 여행기를 굳이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분명 다른 사람인데 마치 한 사람이 장소만 바꾸어 여행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기라면 이제 하도 많이 읽어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몇몇 생각나는 여행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성용의 '여행생활자'나 후지와라 신야의 책들, 정희재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와 박준의 '온 더 로드',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이병률의 '끌림',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오다나의 '미치도록 즐거워',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그리고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그 외에도 많았다. 여행기라기보다는 외지 생활기라고 해야 옳을 듯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기억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여행기들. 내게 손미나는 아나운서 손미나보다 여행작가 손미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녀의 첫작품이었던 '스페인 너는 자유다'가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 출간된 '태양의 여행자'를 비롯한 몇몇 책들은 나를 실망시켰다. 말하자면 이 책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는 내가 읽은 손미나의 두 번째 여행기인 셈이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녹색 평원에 드러누워 있자니 내가 잔디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간이란 애초에 잔디나 바람 같은 존재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 채 주어진 삶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p.154)

 

마추픽추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페루, 작가는 능통한 스페인 어 덕분인지 페루 현지인들과 쉽게 동화되어 그들 속으로 녹아든 듯했다. 아마존 열대 밀림과 티티카카 호수, 쿠스코와 바예 사그라도, 나스카 라인과 콜카 캐니언의 콘도르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페루의 명소를 마치 현지인 안내자처럼 소개한다. 그러나 나의 괸심을 끌었던 것은 그런 명소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구 반대편의 명소이지만 나는 이미 텔레비전과 다른 매체를 통해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이제 그런 것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작가가 만났던 현지인들과 그곳에서의 에피소드, 또는 자연 속에서의 작은 깨달음에 더 눈길이 갔다.

 

"젊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p.92)

 

위의 인용문은 푸에르토 말도나도에서 만난 작은 식당의 여주인이 작가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우연처럼 다시 만난 택시 기사 그레고리의 따뜻한 환대와 스페인 유학 시절에 만나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이야와의 만남 그리고 마추픽추 동행. 페루를 떠나기 전날 이야 가족의 초대. 여행은 이처럼 뜻하지 않은 작은 우연의 결합으로 인해 더 풍성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나씨, 살다 보면 아주 우연히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때가 있죠. 그것이 아무리 찰나라 해도 인생을 두고 영혼을 행복하게 해줄 만남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너무 부담 갖지 마요." (p.273)

 

잠시 동안 사귄 외국인 친구 그레고리가 작가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의식을 치러주고 작가에게 건넨 말이다. 그에 더하여 그레고리는 작가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자신의 집에 초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깜짝 파티인 셈이었다. 가난하지만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우정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그들에게 작가는 깊은 감동을 받았던 듯하다. 우리가 시시각각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인생의 대로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인생의 샛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연처럼 작은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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