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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평점 :
소한이 지나고부터 '확실히 겨울은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일 아침 하게 된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부는 차갑고 매운 바람이 내 몸에 훅 끼칠
때마다 귀와 코끝에 알싸한 자극이 전해졌다. 차 없이 걸어서 다니는 것의 장점은 건강도 건강이지만 이처럼 계절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추위를 몸으로 직접 느껴보지도 않은 채 단지 차창 밖의 풍경만 보고 계절을 가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책을 읽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이 되어서도 날씨는 풀리지 않았다. 미농지처럼 얇은 햇살이 사람들의 발길을 밖으로 한껏 유인하는 듯 보였지만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냉냉한 한기만 흐르고 있었다. 다만 바람이 아침보다 조금 잦아들었을 뿐이었다. 어제는 추위 때문이었는지 모처럼 들른 도서관에서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목이 조금 촌스럽거나 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대출을 결심했던 건 역시 '뜨겁게'의 위력이었다.
'또 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로 시작되는 노래가 생각나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도 철이 덜 들어 감동하기만 하고 서른이 넘은 지금에야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을 반드시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술집 아줌마들이야말로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선생님들이었다. 이모는 그중에서도
큰스승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무심하게 그냥 참는 것, 몸이 놀고 자빠지려고 하면 후들겨 패는 것, 자꾸 편하려고 하는 걸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좋은 결과를 내려면 어떨 때는 필사적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어차피 세상은 참고 참고 또 참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 왕십리가 결국 내게 가르친 것은 입 다물고 버티는 연습이었다." (p.106 ~ p.107)
이야기는 책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와는 영 딴판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오늘 자비를 베풀 생각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하늘을 향해 약간의 온기를
구차하게 빌었던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꽃띠 여자의 순애보도 아니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인간들의 '남녀상열지사'는 더더욱 아니다.
강압적이기만 한 고등학교를 박차고 나와 줄곧 글을 쓰고 있다는 작가의 서울 생존기라고나 할까 아니면 이사기라고 할까? 아무튼 돈 없고 빽 없는
그녀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했던 기억들을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웃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상도동에서 남창동으로, 홍대입구에서 왕십리로, 다시 옥수동으로 그녀는 서울의 외곽, 변두리, 달동네로 지칭되는 곳으로 차츰 밀려났다. 나도
겪어본 일이지만 서울에서의 이사는 본인의 의사와 크게 상관이 없다.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집값 상승의 속도를 추월하지 못기 때문이다. 소득과
집세의 속도 차이는 오십 씨씨 스쿠터와 람보르기니의 속도에 비견될 정도만큼이나 큰 것이고 세월이 갈수록 그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서울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다. 특별시민의 지위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채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경기도민의 신분을 취득하게 되는 과정은 흔하디흔한
이력서이다.
"옥수동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에는 방이 세 개에 광활한 다락이 두 개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손바닥만 한 마당도 딸려 있었다. 그런데도 강남에서 월세 얻기도 어려운 돈으로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서울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월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마 곧 서울에서 밀려날 것이다. 더욱 서울 외곽으로 돌다가 경기도로, 거기서 더 간 지방 어딘가로 떨려날 것이고
그렇기에 더 애틋하게 남아 있는 우리 집, 옷장만 한 화장실이 두 개나 있던 희한한 우리 집, 그리운 우리 집."
(p.146)
작가는 이제 겨우 삼십대 초반이라고 했다. 젊디젊은 나이의 작가가 애 서넛은 족히 딸렸음직 한 아줌마 포스를 폴폴 풍기는 건 왠지 짠하고
안쓰럽다. 더 늦은 나이에 경험해도 될 일을 너무 이른 나이에 많은 걸 압축해서 겪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있을까마는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고 사는 건 또 왜 이렇게 지랄같냐' 하늘을 향해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자들이 직장 생활 2~3년차 정도가 되면 루이비통 스피디백 하나씩은 산다고 한다. 남자들은 차를
사는 것 같다. 그 백이 뭐 꼭 그렇게 예쁘다든가 그래서가 아니라 뭐 하나 할부로 질러놔야 직장 다닐 맛도 나고 직장에 억지로 좀 매어두는 고삐
같은 의미도 있고 뭐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내 경우는 술 마시다가 잃어버릴 염려가 있는 고가품은 절대로 사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럴
여유도 없었다." (p.225)
지난 연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송년 모임이 있었다. 술도 못 마시는 까닭에 대부분 1차만 참석하고 몰래 빠져나오곤 했지만 이따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끝까지 남아야 할 경우에는 뒷처리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한 사람을 부축하여 택시를 잡아 보내거나 대리기사를 불러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것은 토하는 사람의 등을 두들겨주거나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사람의 옷 여기저기에 묻은 토사물을 대충이라도 닦아내는 일일 것이다.
이래저래 연말연시는 힘들다.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버텨내지 못한다. 이렇게 몇 십 년 수도를 하면 성불할지도 모른다. 작가도
이 시각 그렇게 참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