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숙제의 힘
로버트 프레스먼 외 지음, 김준수 옮김 / 다산라이프 / 2015년 3월
평점 :
여운이 길게 남았던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진한 아쉬움이나 어쩔 수 없는 회한 같은 것 말이지요. 마음의 찌꺼기와도 같은 그런 느낌은
어쩌면 자신의 열정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고3 수험생 시절, 한눈에 반한 첫사랑의 연인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른 청춘의 기억처럼 언뜻언뜻 떠오르며 긴 여운만 남기는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기억들이 나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잘난 체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학창시절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힘겹게 버텼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마다 왠지 애잔하고 가엾다는 생각만 되풀이됩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숙제의 힘>은 내가 자랐던 환경과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처한 환경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구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들은 가끔 잊고 지내게 마련이지요. 최근에도
아들은 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더군요. 그 또래의 아이들 대부분이 느낄 만한 가벼운
불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때가 있습니다. 형제도 많고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여겼으니까요.
사실 이 책 <숙제의 힘>은 아이들의 숙제 문제에 국한하여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학습 습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 학습 습관 연구서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바람직한 미디어 사용 습관, 숙제 습관, 시간 관리 습관, 목표 설정 습관, 효율적 대화 습관,
책임지는 습관, 집중하는 습관, 자립하는 습관 등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8가지 학습 습관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하나의 습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를 만큼 넓은 범위일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방안을 간략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컴퓨터와 태블릿 PC를 적정하게 쓰는 아이들의 경우는 아예 쓰지 않는 대조군에 대해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사용 시간이 45분을 넘자, 성적이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3시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5시간이 넘게 되면 수학이나 영어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은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TV 시청 시간이 1시간 30분만
넘어도 아이들은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TV 시청이 4시간을 넘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학교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 (p.97)
"아이에게 선물로 핸드폰을 사주지 마라. 핸드폰은 선물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정 갖고 싶다면
자신의 용돈으로 사야 한다." (p.113)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불도 갤 줄 모르는 아이의 손에 핸드폰을 쥐어 주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라고 아무리 당부한들 통할 리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른도 하기 힘든 절제를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셈이지요. 놀이 상대가
부족한 요즘의 아이들에게 TV나 핸드폰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이들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것 또한 부모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면 길고 힘든
고행의 과정을 통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알다시피 배움이란 점진적으로 쌓여 가는 과정이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 습관을 심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아닌 듯합니다.
"부모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남을 가르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일종의 기술이다. 효과적으로 남을, 특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당신에게 교사 자격증이 있거나
혹은 실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섣불리 당신의 자녀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 그건 다른 직종이다. 지금 당신의 직업은 엄마,
아빠이다. 오직 당신만이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기술인 '숙제하는 법'을 익히도록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학교 숙제를 하도록
두어야 긍정적인 학습 습관을 길러 줄 수 있다." (p.135)
나는 이따금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부모가 내 의견에 동의할지
아닐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돈을 물려줄 수 없기에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배우고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내 말이
과히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부모의 습관을 판박이처럼 따라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예컨대 약속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제대로 지키지는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게 되고, 다 쓴 물건을 아무데나 두거나 밤낮 누워 지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물건을 정리할 줄 모르는 법이지요. 그러나 잘못된 습관에도 불구하고 욕심의 수치는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 인생의
비애는 거기에 있나 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한 용기를 갖춘 사람보다 단지 유명해지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다. 이런 명성에 대한 집착은, 많은 아이들에게 '최고가 아니라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결국 그냥 포기하고, 좀 더 쉽게 희망을 이룰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게 된다. 지금 이 일이 안 될 것 같으면, 뭔가 다른 것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것처럼." (p.310)
이 책의 구성은 1부 ‘평생 학습의 모든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2부 ‘평생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8가지 학습 습관의 법칙’, 3부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21가지 놀이 과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2부가 주가 되겠지요. 나는 그동안 자녀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을
읽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뭐가 뭔지 방향을 잃고 헤맬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나처럼 자녀 교육에 대한 원칙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부모에게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들어 금연을 실천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배웠던 것은 중독의 무서움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런 까닭에 아내는 게임을 일체 하지 않습니다. 나도 물론 게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무엇이건 일단 한번 중독되면 그것을 끊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매일 느끼는 커피 한 잔의 유혹을 나는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가장
훌륭한 생활을 선택하라. 습관은 인생을 즐겁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지요. 힘들이지 않고 좋은 습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내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오래된 좋은 습관도 한순간만 방심하면 잃기 쉽고, 얼마 되지 않은 나쁜 습관도 버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힘든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