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세트 (전2권)
문학사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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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남들보다 더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침묵이 주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여 TV를 켤 때가 있습니다. 아마 혼자 실아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방안 가득 눅눅하게 퍼져 있는 고요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든 반드시 필요한 법이지요. 그럴 때 보게 되는 게 뉴스입니다. 요즘은 뉴스를 송출하는 방송사가 워낙 많아서 어떤 뉴스를 볼지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방안에 쌓인 침묵이나 밀어내자 생각하며 보게 된 뉴스 채널이 JTBC입니다. 그렇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이지요. 프로그램이 저녁 8시에 시작하는지라 매일 보지는 못하고 어쩌다 집에 일찍 귀가한 날만 보게 되더군요. 뉴스 포맷도 다른 방송사와 차별되는 듯하고, 아무튼 나는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석희 앵커의 차분한 진행을 예전부터 좋아했던지라 설령 내 맘에 들지 않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해도 그냥 내처 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한 달 이상 지난 얘기지만 손석희 앵커가 3월 12일 오전 서강대학교 개강 축복 미사에서 특강을 했더군요. '새 봄을 맞는 후배님들에게'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너는 자격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단히 행복했다"고 합니다. '마르첼리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손 앵커의 연설 일부를 옮겨 보겠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인 저는 요즘,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는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의문문으로 바꾸면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반대의 감정이 든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저에게 던지고 있는 이 질문을 여러분도 늘 던져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새 봄을 맞는 후배들께 드리는 오늘의 주제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세상이 참을 수 없이 무정하다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정치 음모, 폭력, 속임수 등 비정한 세계의 단면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매일 목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국가적 범죄가 아니더라도 냉담한 세계에서 받는 상처는 일상이 된 지 오래이지요. 경쟁을 강요하고 기준을 못 따르면 내쳐지는 것은 비단 직장뿐 아니라 학교와 가정까지 파고든 듯합니다. 참으로 냉정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계는 개인에게 결코 따뜻하지 않습니다. 약간은 생소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원래의 맥락을 떠나도 익숙하게 여겨지는 건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가 세계의 비정함을 피부로 실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2>는 제1부 마음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 제2부 숲 속의 겨울에 피는 꽃, 두 권 속에 전체 4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삶을 누리는 인간의 삶을 현실과 비현실(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깊숙이 파고들어 가, 두 세계를 번갈아 가며 평행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의 진수로 이 책을 꼽곤 하지요. 하루키 문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작가 본인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작가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삶을 대하는 자세 등 독자가 소설을 통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느끼게 합니다.

 

"인식 하나로 세계는 변화하는 거야. 세계는 분명히 여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만, 현상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세계란 무한한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지.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네가 오른쪽 발을 내밀까, 왼쪽 발을 내밀까, 하는 데 따라 세계는 변해 버린다 그거야. 기억이 변화하는 것으로 세계가 변화한다 해서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네." (2권, p.156)

 

이 소설은 두뇌 속의 의식을 편집 당해 기억을 잃어버린 '나'의 모험이 벌어지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자신의 마음을 버린 대가로 도서관에서 일각수의 두개골에 새겨진 오래된 꿈을 읽는 일로 하루하루 평온하게 살아가던 '나'가 탈출을 꿈꾸는 세계의 끝, 두 이야기가 한 편씩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인 나는 서른다섯 살의 이혼한 적이 있는 독신 남자로서 직업은 계산사이고 두뇌에 입력된 정보를 암호화하는 일과 다시 풀어내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샤프링 시스템을 개발한 노박사가 나의 의식 속에 자신이 다시 편집한 의식의 핵을 집어 넣어, 3일 후에는 자신과는 별개의 의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나의 추론은 이런 것이었어. 즉 뇌에 설치한 분기 장치의 기능이 헐거워졌거나, 타버렸거나, 소멸되었거나 해서 사고 시스템이 혼탁해지고, 그 혼탁해진 에너지의 힘에 의해 뇌의 기능이 견뎌 낼 수 없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야. 만약 분기 장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식의 핵을 해방시킨 일 그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인간의 뇌가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2권, p.131)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자네의 의식 속에서 세계는 이미 끝나 있어. 거꾸로 말하면 자네의 의식은 세계의 끝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지. 그 세계에는,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빠져 있다네. 거기엔 시간도 없고, 공간의 확장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정확한 의미에서의 가치관이나 자아도 없다네. 그 곳에서는 짐승들이 사람들의 자아를 통제하고 있지." (2권, p.136)

 

나는 노박사로 인해 내가 소속된 계산사 조직과는 다른 기호사들 조직과,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야미쿠로 조직 사이에서 벌어진 정보 전쟁에 휘말리게 된 셈입니다. 나는 노박사의 젊은 손녀딸과 함께, 파란만장의 탈출극을 벌입니다. 한편 세계의 끝이라는 이 소설의 반쪽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는 달리 정적이며 폐쇄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인공 나는 새와 일각수만 넘나드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그림자(마음)를 버린 대가로 평온한 생활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각수의 두개골에 숨겨진 오래된 꿈을 읽는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 도시의 벽을 넘어 올 때 문지기에게 맡긴 나의 그림자는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병들어 죽어 가고, 나 역시 서서히 마음을 잃어 갑니다. 마음이 없다는 건 욕망도 싸움도 희로애락도 없는 평온한 상태이지만 감정이 없는 인간들, 영혼 없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은 세계의 끝인 셈이죠. 그림자는 나에게 이 세계의 끝은 완벽하나 뭔가 잘못되어 있다면서 탈출을 권하지만 나는 결국 탈출 일보 직전에 그림자와 결별하고 내가 사랑하는 도서관 여자 직원을 찾아 갑니다.

 

"영원한 삶,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불사. "자네는 불사의 세계로 가려 하고 있네." 라고 노박사는 말했었다. 세계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이며, 거기서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 이전에 잃어버렸고 지금 잃어 가고 있는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노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내가 가게 될 그 세계가 불사라고 한다면 불사인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노박사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막연했다." (2권, p.251)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욕심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희로애락의 여러 사건들이 난무하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마음을 잃은 채 모든 것이 완벽한 '세계의 끝'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불사를 위해 우리가 사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영원히 소멸될 것인지, 아니면 아등바등하며 사는 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걸로 만족할 것인지 선택하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나의 소멸이 어느 누구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고,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남기지 않는다 해도, 혹은 또 그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나의 문제다. 분명히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묘하게도 내 안에는 상실된 것들의 잔재가 마치 앙금처럼 남아 있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지 않다." (2권, p.338)

 

나는 이따금 TV를 켬으로써 침묵을 몰아내는 대신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침묵 속으로 침잠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면서 말입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 내가 자신의 그림자와 결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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