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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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하루키에 대한 나의 팬심이 대략 30리터쯤 덜어졌었는데 그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다시 채워진 느낌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말하자면 이 책에서 작가는 예전의 그의 모습, 소설가로서 내가 상상하는 그의 면모를 다시 회복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단편집 <중국행 슬로보트>를 읽었을 때의 순한 감동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하루키 문학의 특징은 독자와의 일정한 '거리두기'에 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거리두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작가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보았거나 때로는 상상해보았다"는 식으로 툭 던져놓고는 작가 자신은 왜 그것을 말하려 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도통 말하지 않는 것이다. 독자가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 작가는 독자의 관심이나 애정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런 하루키식 '거리두기'는 수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소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루키의 이런 방식은 그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 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한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처럼.

 

세상과(또는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작가의 태도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자와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생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읽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인간의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한계, 그 절망적인 한계를 인식한다면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더 가까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관음증적 욕구는 어차피 사그라드는 게 아닐테니까. 작가는 그 한계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듯하다. 작가가 이 책의 제목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고 붙인 이유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짐작된다. '여자'는 젠더(gender)적 구분이 아닌 남자가 가장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가까워질 수 있는 대상, 또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다만 해소될 수 없는 욕구일 뿐이다.

 

이러한 거리두기의 방식은 인간의 절대적인 고독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한편 인간의 선천적인 관음증적 욕구를 최대로 자극하곤 한다. 나는 모든 지적 욕구가 선천적인 관음증에서 비롯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타인의 감춰진 비밀을 엿보려는 심리나 자연이나 기타 다른 사물의 비밀을 캐내려는 욕구는 그 대상만 다를 뿐 방식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본능인 동시에 지극히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 알아내려고 하는 일련의 행위,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욕구는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관음증적 욕구는 더더욱 강해지는 게 아닐까.

 

이 책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표제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을 포함하여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여자가 없다. 아니, 여자는 있는데 관심을 갖고 상대방의 비밀을 속속들이 탐구하고 싶어하는 대상은 아닌 것이다. 소설을 이해하는 관점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성욕이나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감추어진 어떤 것을 은밀히 엿보거나 탐구하려는 욕구.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 책의 첫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아내와 사별한 가후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배우인 그는 아내가 암으로 죽기 전에 몇 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후쿠는 그 중 한 명인 다카스키를 만난다. 가후쿠는 아내가 죽기 전 왜 그 사람과 섹스를 했는지, 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었는지 끝내 묻지 못했다. 가후쿠는 다카스키를 통해 그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의문으로 남는다.

 

두 번째 작품인 '예스터데이'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던 기타루와 에리카가 등장한다. 연인 관계였던 둘은 에리카가 대학에 합격하고 기타루가 재수를 하게 되면서 소원해진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끝내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던 기타루에 대해 에리카는 이해하지 못한다. 에리카는 일일 데이트 상대였던 화자에게 자신이 꾸었던 꿈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단둘이 작은 선실에 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저건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되어 있고, 두께는 한 이십 센티미터쯤이야.' 아키가 내게 알려줘.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두는 게 좋아.' 그런 꿈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꿨어." (p.97)

 

세 번째 작품인 '독립기관'에는 성형외과 의사인 도카이가 등장한다. 그는 쉰두 살의 독신남이다. 그는 지금껏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가 원하는 것도 '매력적인 여자들과의 친밀하고 지적인 교류'일 뿐이다. 상대는 대개 유부녀거나 연인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여자들을 만나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었던 그가 결국에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상대는 물론 애가 있는 유부녀다. 도카이는 그녀로부터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한 언젠가 닥쳐올 이별에 대해 염려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젠 그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뭔가로 단단히 묶여버린 느낌이에요.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이런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감정입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이대로 점점 그리움이 깊어지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될까 하고." (p.145~p.146)

 

네 번째 작품인 '셰에라자드'에는 늘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하바라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에게는 그를 대신해 일정한 주기로 장도 봐주고 그와 섹스도 하는 여자가 한 명 있다. 그녀는 성행위가 끝나면 매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왕비처럼.

 

"그는 원래부터 혼자인 것에 익숙했다. 그의 신경은 혼자가 된다고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하바라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그렇게 되면 더이상 셰에라자드와 침대에서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좀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뒷부분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p.178~p.179)

 

다섯 번째 작품인 '기노'에는 스포츠용품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던 기노가 등장한다. 그가 출장을 갔다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자신의 집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후 그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을 나왔다. 이모의 가게를 임대하여 바를 개업했었는데 어느 날 이혼을 한 전처가 그의 가게로 찾아온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만 그는 다만 형식적인 용서를 할 뿐이다. 일시적으로 가게의 문을 닫고 여행을 떠났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그때 상처를 받았음을 인식한다.

 

여섯 번째 작품인 '사랑하는 잠자'는 다들 짐작하겠지만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 잠자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진 듯 느끼는 그레고르 잠자는 고장난 자물쇠를 수리하러 온 꼽추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 여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그녀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아련히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이 점점 기쁘게 다가왔다. 두 다리로 걷고 옷을 입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는 것은 분명 몹시 성가신 일이다. 이 세계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었다면 이렇듯 신기한 마음속 온기를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p.311)

 

일곱 번째 작품은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나'는 한밤중 한 시가 넘은 시각에 엠의 남편으로부터 그녀의 자살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아주 사소한 인연으로(단지 지우개를 빌려주었다는) 연인 관계로 발전했던 그녀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만났었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나'의 열네 살은 세상에서 함께 사라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p.327)

 

작가의 소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탐구(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그리고 흐르는 시간과 그 속에서 존재했던 사람들의 관계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어렴풋이 짐작하는 일일 것이다. 문학이란 결국 나 스스로, 오픈된 장소가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몰래 엿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타인과의 대화가 그렇고, 드라마 시청이 그렇고, SNS가 그렇고, 독서가 그렇다. 그러나 가장 은밀하고 스릴있는 방법은 역시 독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왜 그때 그것에 끌렸을까? 작가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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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와 관계없이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따로 적는다.

 

"스무 살 전후의 나날, 나는 일기를 쓰려고 몇 번 노력해봤지만 영 잘되지 않았다. 당시 내 주위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쉴새없이 일어났고, 그걸 따라잡기에도 벅찼다. 도저히 날마다 멈춰 서서 그날 일어난 일들을 일일이 노투에 적어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건 꼭 적어둬야지' 하고 생각할 만한 사건도 아니었다. 나로서는 거센 맞바람 속에서 가까스로 눈을 뜨고, 호흡을 가다듬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p.111~p.112)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p.211~p.212)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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