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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일본 소설과 한국 소설의 근본적인 차이는 독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는 듯하다. 일본 소설은 대체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인터뷰에서 여러번 강조했듯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자신의 책을 읽으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것이 일본 작가들의 공통된 목표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한국 작가들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진지하다.
독자들에게 감동이나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은 때로는 부담스럽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두 나라의 민족적 정서에서 기인하겠지만 전통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절충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일본 소설은 다 좋고 한국 소설은 다 나쁘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소설의 가벼움이나 지나친 선정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게다가 한국 문학도 많이 변해서 신세대 작가의 소설은 일본 소설 못지 않게 유쾌하고 읽는 재미가 가득하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독자층이 얇은 한국의 출판시장에서 유명 작가의 명성에 눌려 신진 작가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쓰다 보니 얘기가 엉뚱한 쪽으로 빗나갔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공중그네』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말이다. 『공중그네』에 대한 평은
여러 경로로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호평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와 인연이 닿지는 않았었다. 일본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이나 거부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껏해야 무라카미 하루키나 텐도 아라타의 소설만 읽었을 뿐 다른 일본 소설가의 작품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 소설의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도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나는 처음 읽은 셈이다.
『공중그네』는 신경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소설이다. 표제작인 <공중그네>를 비롯하여
,<고슴도치>, <장인의 가발>, <3루수>, <여류작가> 등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던 이 소설은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통하여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비애와 고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듯한 거구의 이라부는 자신의 외모와 의사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름으로써 병원을
찾는 환자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다. 공중그네를 타는 베테랑 서커스 단원의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 하마 같은 몸으로 직접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선단 공포증에 시달리는 야쿠자 중간보스를 위해 야쿠자들의 담판 현장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갖은 훈수를 두기도 하고,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의대 동창생과 의기투합하여 육교에 기어 올라가 이정표를 슬쩍 고쳐놓고 도망치는가 하면 결국에는 동창생 장인의 가발을 벗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프로 야구선수를 위해 야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환자와 동일한 포지션인 3루수를 자청하기도 하고,
심인성 구토증이 있는 여류작가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쓴 형편없는 글을 출판하겠다며 되지도 않는 생떼를 쓰기도 한다. 이라부의 치료방법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 각각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다양한 환자들을 대할 때 환자와 의사로서가 아닌, 어설프고 서툴더라도 그 직업군에 동참함으로써
실수연발의 자신의 모습을 환자에게 직접 보여주곤 한다. 환자는 천진난만한 이라부를 결코 미워할 수 없다. 그와 한동안 시름을
잊고 어울림으로써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는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이라부’식 처방전인 셈이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모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어제 사쿠라가 한 말이 큰 격려가 되었다. 반성도
했다. 자신의 작은 그릇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심각한 일들에 비하면 작가의 고민 따위는 모래알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대도 상관없다. 바람에 날려가도 괜찮다. 그때그때 한순간만이라도 반짝일 수만 있다면. 아이코는 진찰실을 나왔다. 여기
오길 잘한 거겠지.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거나 마음은 편해졌으니까." (p.304 ~
p.305)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이 가장 힘들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자신의 어깨에 얹혀진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라부는 개별적인 삶의 무게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것임을 체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인생을
항상 무겁고 진지하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끔은 별것 아닌 것처럼 가볍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처럼 실수해도 된다고
말이다. 누구든 자신의 삶에 프로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놓아주는 비타민 주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