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예측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일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하루를 보내는 것은 마치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내 기억의 빈 공간(만약 있다면)에 동전이 쌓이는 것처럼 부피를 늘리지 않은 채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평소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조금쯤 과도한(그렇다고 생각되는) 통행세를 요구할 때가 있다.  밋밋하고 심심해 할까 봐 그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개빈 익스텐스가 쓴《우주 vs. 알렉스 우즈》는 돼지저금통에 만 원짜리 지폐를 넣을 때의 뿌듯하고 든든한 느깜처럼 뭔가가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뭐랄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배제한 채 독자가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만을 옮긴 듯한, 다소 시니컬하고 간결한 문체로 465페이지의 긴 얘기가 끝날 때까지 독자의 마음을 흔들림 없이 사로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개빈 익스텐스는 비록 30대 중반의 젊지 않은 나이이지만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소설은 알렉스(이 소설의 주인공)가 열 살이었을 때 벌어진 일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그의 집 천장을 뚫고 들어온 2킬로그램짜리 운석에 머리를 맞은 알렉스는 수술을 받고 2주만에 가까스로 깨어난다.  그 후 알렉스는 간헐적 간질을 앓게 되고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알렉스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싱글맘인 그의 어머니는 타로 점을 보거나 그것과 관련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몇 년 뒤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된 알렉스는 동네의 불량배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엄마가 따르는 규칙과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달랐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 이게 엄마의 규칙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건, 앞뒤가 맞건 안 맞건 상관없었다.  시험 성적을 잘 받아서 장차 내가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 이게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이었다.  내가 간질을 앓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엄마는 내가 뒤쳐져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었고, 우리 주의 어떤 학교도 내 입학을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p.101)

 

어느 날 하굣길에서 동네 불량배들을 피해 달아나던 알렉스는 피터슨 씨의 집으로 뛰어든다.  알렉스를 찾지 못한 불량배들은 피터슨 씨 집의 온실 유리를 부수고 알렉스는 속죄의 대가로 피터슨 씨의 편지 쓰는 일을 대신하게 된다.  피터슨 씨는 베트남전의 참전 용사로서 아내를 잃고 은둔자적 삶을 사는 평화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다.  작가는 우연과도 같았던 알렉스와 피터슨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카오스로 가득한 한 세계의 정점인 동시에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려 한다.  이 순간 덕분에 생각하게 됐다.  보기에 따라 인생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또 보기에 따라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다음의 이야기는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p.112)

 

알렉스는 피터슨 씨의 집에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빌려 읽게 된다.  그러던 중 버스 안에서 동네 불량배들을 다시 만났고, 알렉스가 읽고 있던 커트 보네거트의 희귀 초판본이 그들 중 한 명에 의해 버스 밖으로 내던져진다.  알렉스는 그 아이와 주먹다짐을 하고 그 일로 인해 알렉스는 외출 금지 명령을 받는다.  감금 상태에서 풀려난 알렉스는 피터슨 씨에게 사과하고 한동안 공부에만 몰입한다.  어느 날 피터슨 씨의 애완견 커트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알렉스는 처음으로 실제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애완견 커트가 죽은 후 피터슨 씨의 정신건강이 염려되었던 알렉스는 <커트 보네거트 세속 교회>라는 이름의 독서 모임을 만든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락을 적어와 피터슨 씨의 집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알렉스는 자신이 보관하던 운석을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마중나온 피터슨 씨를 만나 함께 귀가하던 중 가벼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피터슨 씨는 놀랍게도 진행성핵상마비. 신경이 점차적으로 마비되는 희귀한 퇴행성 질환으로, 아저씨는 이제 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열네 달 동안의 독서 모임이 끝나는 마지막 날 알렉스는 피터슨 씨에게 할 말이 있어 다시 들렀다가 자살을 시도한 피터슨 씨를 만난다.  알렉스의 신고로 되살아난 피터슨 씨는 병원에 입원하고 알렉스는 피터슨 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돌보기로 결심한다.  줄곧 대마를 직접 재배하여 마리화나를 피워왔던 피터슨 씨를 대신하여 알렉스는 대마 재배하는 법을 배우고 피터슨 아저씨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피터슨 아저씨의 몸은 점점 쇠락하여 가고 알렉스가 약속했던 스위스로 향하는 여정을 결행할 즈음 아저씨는 바닥에 넘어져 다시 입원한다.

 

병원으로부터 피터슨 아저씨의 퇴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알렉스는 피터슨 아저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빠져 나온다.  피터슨 아저씨를 차에 태워 스위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고 알렉스는 피터슨 아저씨가 죽기 전 스위스 세른에서 마지막 관광을 한다.  '과학 혁신 전시관'에서 알렉스는 우주와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별난' 입자의 수명을 생각하고, 우주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생각하고, 우주가 마지막 열적 종말(모든 별이 사라지고 블랙홀이 증발하고 모든 핵자가 붕괴하고, 기본 입자만이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을 떠다니는 순간)을 겪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다가,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문제란 '별난'입자와 닮았다는 것을.  우주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금방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우주의 규모로 보면 눈을 깜박이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빨리 사라진다."    (p.429)

 

병원의 신고로 알렉스는 영국 방송사의 뉴스 메이커가 되고 피터슨 아저씨의 유골을 차에 싣고 귀국하던 중 경찰에 의헤 체포된다.  그러나 알렉스는 무사히 석방되어 열여덟 살 생일에 피터슨 씨가 남긴 유언장에 의해 5만 파운드의 상속금을 받는다.

 

"나는 피터슨 씨가 이 편지를 쓰면서 아주 즐거워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한테 편지를 건네주었다.  엄마는  편지를 읽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엘리에게 편지를 넘겼다.  엘리는 울지 않았다.  편지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까딱 흔들면서 내게 돌려주었다."    (p.464)

 

도서관에 들러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 도살장>을 빌렸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인연이 되지 않았을 소설.  어쩌면 내 삶에서 결코 등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커트 보네거트라는 낯선 이름이 우연처럼 내 삶을 파고들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손쉽고 짧았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내가 던진 동전이 언젠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내 기억을 깨울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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