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세월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잠시 팔랑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 아스라한 순간을 하릴없이 지켜보아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정녕 내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세월호의 침몰 사고 순간부터 나는 눈과 귀를 막은 채 TV와 멀어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입마저 막을 방법은 내게 없었습니다.  잔인하게도 나는 여린 생명이 죽어가는 소식을 내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듣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실시간 중계로 말입니다.  어쩌면 나는 사고 수습이 다 마무리 된, 마치 조문객이 다 물러 간 슬픔의 언저리에 주저앉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했던 순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입니다.  슬픔으로부터 멀어지려던 원래의 계획은 책을 몇 장 읽기도 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날 테니 안심 해.'라고 말해 줄 악마의 스포일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사고 소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소설 속의 주인공 때문이었는지 분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자식을 잃은 어느 학부모의 핏빛 오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남자 주인공 '윌'이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국 시골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윌'은 일찍부터 능력을 발휘하여 부와 명예, 아름다운 연인까지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는 사지마비 환자가 되고,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살게 됩니다.  '윌'의 자살 기도가 실패한 이후 부모님과 '윌'은 6개월이라는 한시적 유예기간을 두는 데 합의하였고, 그래도 생을 마감하고 싶다면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안락사를 도와주는 병원에 갈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윌'이 태어난 시골 마을의 치안판사로 재직중인 어머니는 그 약속된 시간마저 지켜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윌'의 추가적인 자살 시도를 방지하고, 삶의 의지를 되살려줄 간병인을 찾는 과정에서 '윌'과 만나게 된 사람이 여자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입니다.  고향 마을을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전형적인 시골뜨기였습니다.  '루이자'는 간병인 모집 공고가 났을 때 자신의 직장이었던 카페가 문을 닫아 실직 상태에 있었고, 그녀의 집에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던 루이자는 새로운 직업이 절실했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 간의 한시적인 고용 의무를 다하려던 루이자는 '윌'의 까다롭고 괴팍한 성격 탓에 간병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합니다.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짜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p.84)

 

어느 날 '루이자'는 6개월이라는 자신의 한시적 고용 관계가 끝나면 '윌'과 그의 가족들이 '윌'의 자발적 죽음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루이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 후로 '루이자'는 '윌'이 안쓰러워 그 결정을 돌리기 위해 헌신합니다.  반면에 '윌'은 그런 '루이자'가 불쌍합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 평생을 살아갈 '루이자'가 말입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배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합니다.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p.114)

 

변심한 '윌'의 옛 연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루이자'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하고, 혼자서는 시도조차 어려웠던 문신도 합니다.  행복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급기야 사랑의 감정까지 싹트게 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윌'과 엉뚱하고 순진한 '루이자'의 사랑은 그렇게 깊어갑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약 기간의 끝이 다가오면서 '루이자'의 마음은 초조해집니다.  '루이자'는 '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긴 여행을 계획합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겼던 '윌'을 위해 사지마비 환자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꼼꼼히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결국 '윌'의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인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 바람에 '루이자'는 7년이나 사귀었던 애인과도 결별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쓰라린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쓸쓸하지도 않았고, 감당 못할 슬픔에 휩싸이지도 않았고, 몇 년씩 사귄 연애를 끝장낼 때 응당 느껴야 할 감정들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몹시 차분했고, 약간은 서글펐고, 어쩌면 조금은 죄책감을 느꼈다.  헤어진 데 내 책임이 크다는 생각도 들고 이토록 아무 감정이 없다는 것도 죄스러웠다."    (p.436)

 

'윌'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루이자'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합니다.  열흘 간의 꿈같은 시간이 흘러갑니다.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행복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확인하였음에도 '윌'은 끝내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루이자'는 '윌'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결별합니다.  '윌'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에서 삶을 마감하려는 '윌'과 자신의 집에서 '윌'을 그리워하는 '루이자'.  '윌'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은 '루이자는 결국 스위스로 향합니다.  '윌'과의 마지막 인사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루이자'의 동생 '카트리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아들 토머스를 생각하며.

 

"나는 언니가 윌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자를 사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남자를 좋아했던 적도 있고 같이 자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가끔은 나한테 무슨 감수성 칩이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귀던 남자들 때문에 운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된다.  내게 유일하게 그 비슷한 사람은 토머스일 텐데, 그 애가 낯선 나라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내 마음 속에서 뭔가 펄떡 뒤집어졌고, 그게 너무나 섬뜩하게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 깊은 곳 정신적인 서류철에다가 그 생각을 꽂아 정리해두고 '생각 불가'라는 딱지를 붙여 닫아버렸다."    (p.502)

 

차마  쳐다볼 수조차 없는 상실의 아픔을 외면하기 위해 선택했던 책.  그러나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더 깊은 슬픔의 수렁에 빠진 듯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직시하는 슬픔보다는 유예된 슬픔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에 생명의 소멸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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