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의류 수거함 -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0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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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한가한 시간이 찾아와도 멈출 줄 모르고 쉼 없이 작동하는 나의 뇌를 생각할 때 조금 걱정이 되곤 합니다.  마치 방전된 자동차가 '푸르륵 푸르륵'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정적 속에 농밀한 절망만을 남겨둔 채 멈춰버리는 것처럼 나의 뇌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말입니다.  머릿속의 상상이나 걱정들은 대체로 쓸데없는 것들이어서 적어도 한가한 시간에는 나의 뇌도 육체와 함께 편히 쉬었으면 좋으련만 무슨 궁리가 그렇게도 많은지...

 

모처럼 맞는 한가한 오후를 『오즈의 의류수거함』을 읽으면서 보냈습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낯선 불청객이나 느닷없이 벌어지곤 하는 특별한 사건이 나의 오후를 방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쌓여 독서를 하려니 책의 내용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모래알갱이들처럼.  어쩌면 현실을 비껴간 작가의 작위적 구성이 약간의 거부감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대략 이렇습니다.  외고 입시에 낙방하여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도로시(본명), 구제 의류숍을 운영하는 마녀(닉네임), 자발적으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숙자 씨, 식당을 하는 마마, 탈북 새터민 카스 삼촌, 자살을 꿈꾸는 195.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뭉텅뭉텅 사라져가는 행복과 급기야 칼날 위에 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슬픈 자화상.

 

이야기는 독서실에서 늦은 귀가를 하던 도로시가 의류수거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수거함 속으로 다 들어가지 않은 멀쩡한 스키니진을 발견한 도로시는 마치 득템한 기분이었고,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장비를 갖춰 동네의 의류수거함을 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의류수거함 속에는 옷만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버려진 강아지 토토를 맡길 데가 없어 구제 의류숍을 운영하는 마녀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수거한 옷을 넘기게 됩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도로시가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의사 부부였던 숙자 씨는 구제역이 창궐하였을 때 가축 살처분 현장에 있었고, 그의 아내는 그 트라우마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후로 숙자 씨는 홀로 전국을 정처없이 떠돌게 됩니다.  마녀를 통하여 알게된 마마는 유능한 자동차 딜러였습니다.  도박 중독자였던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들은 집 근처의 건물 옥상에서 투신을 했던 것입니다.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마마는 아들이 숨진 옥상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탈북을 하다 다리에 총을 맞았던 카스 삼촌은 도로시처럼 의류수거함을 털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도로시는 카스 삼촌과 구역을 나눠 옷을 수거하기로 약속하고 마녀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줄거리는 도로시가 누군가의 일기장과 상장 뭉치, 사진첩을 발견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물건들로부터 자살의 분위기를 감지한 도로시는 그 물건을 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끝없이 시도합니다.  195번 의류수거함 위에 올려 놓은 책 속에 메모지를 끼워 놓음으로써 대화는 이어지고 결국 그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자살을 막아보려는 도로시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195는 결국 미국으로 마약 중독 치료를 받으러 떠나게 되지만 그 전에 도로시와 함께 의류수거함을 돌며 옷을 수거합니다.

 

"숙자 씨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  왜 그렇게 195의 일에 매달리느냐는 숙자 씨의 물음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숙자 씨에게는 단순히 자살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195의 존재가 이미 내 속에 깊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뚜벅뚜벅, 소리나게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바람처럼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게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있다.  내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들어서는 사람도 있다.  195는 어어, 하는 사이에 쑤욱 내 속으로 들어왔다."     (p.118)

 

그렇게 밤의 세계에서 우연처럼 만난 사람들은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어 갑니다.  폐지를 주워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를 위하여 집에 보일러를 놓아 주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면서 부자 마을의 의류수거함을 터는가 하면 각자가 모았던 돈도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여태껏 살아오며 이렇게 자존감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항상 1등만 해온 너는 이런 내 심정을 잘 이해 못할 거야."  195는 정면을 응시한 채로 힘없이 웃었다.  "자존감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그 대신 자존심이 자리하고 있지."  "그것들의 차이가 비슷한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아.  굳이 설명하자면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나는 195가 너무나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나를 이해시켜준 데에 크게 감탄했다."    (p.218~p.219)    

 

사실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이 몇 달씩 의류수거함을 털 수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없거니와 정기적으로 옷을 수거해 가는 허가 받은 업자가 그것을 모를 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것은 아마도 의류수거함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고등학생인 도로시가 미처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나눔을 베품으로써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머릿속에 지식을 우겨넣음으로써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부작용을 겪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도 모두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내가 매일 들르는 식당 아주머니가 오늘 "수고하세요." 라는 나의 인사에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과 라일락 꽃의 향기가 어제보다 조금 옅어졌다는 것과 공원의 등나무 넝쿨에 꽃이 피고 있다는 것 등을 생생히 느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상상의 세계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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