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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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너 그런 거 알아?  좋은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곁에 있는 누군가를 붙잡고 나의 행복한 느낌에 대해 한나절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심정 말이야.  그래, 때로는 약간의 과장된 몸짓을 섞을 수도 있겠지.  만약 내 얘기를 듣는 상대방이 나의 느낌에 격하게 반응한다면 아마 더없이 좋을 거야.  어쩌면 내 수다는 한나절이 아니라 날밤을 샐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지.  마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풋내기 청춘처럼 말이야.

 

나는 오늘 딱 그런 심정이야.  맘에 쏙 드는 그런 책을 만났거든.  할레드 호세이니라고 너도 들어봤을 거야.  못 들어봤다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연을 쫓는 아이>를 썼던 그 작가 말이야.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들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워낙 책을 싫어하는 너로서는.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  네가 기억할 정도면 아마 우리나라 국민의 반 이상이 적어도 책의 제목은 들어봤을 거야.  최근에 그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냈거든.  난 오늘 그 작품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  그렇게 노골적으로 뚱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  너도 들어보면 좋아할 테니까.

 

음, 무슨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 그래.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에서 느꼈던 내 느낌부터 말하는 게 좋겠어.  뭐랄까?  내 생각에 그는 작품을 쓸 때 잉크대신 암청색의 짙은 슬픔을 듬뿍 찍어 글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해.  책을 읽으면 그다지 슬픈 내용도 아닌데 난 금세 슬퍼지곤 하거든.  나만 그렇다고?  그럴지도......  아프카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에서 의사로 지내는 그가 내면에 그런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을 품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이긴 해.  몇 대목 읽어줄 테니까 들어볼래?

      

"아버지는 딱딱했다.  그의 눈은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무관심밖에 보지 못했다.  끝이 없는 고생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세계는 비정했다.  좋은 건 아무것도 공짜가 아니었다.  사랑마저도 그랬다.  모든 것에 값을 지불해야 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통이 화폐였다."    (p.42)

 

"그녀가 잔인하다거나 무정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르코스 씨, 나는 오래 살았습니다.  내가 오래 살면서 알게 된 것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때는 겸손하고 측은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p.158)

 

"나는 반세기가 넘게 술레이만을 보살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와의 교류와 그가 뭘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걸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자, 그 자유가 환영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대부분, 나한테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목적을 찾고 그걸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삶에 목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삶을 살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나는 그걸 다 이뤘으니, 목적도 없어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p.184)

 

어때?  그닥 슬프지 않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이 책은 57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니까 그 일부를 읽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거야.  더구나 너는 작가가 쓴 다른 작품도 읽어보지 않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  나는 가끔 할레드 호세이니처럼 처연한 슬픔이 묻어나는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를 만날 때면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감정을 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어쭙잖은 운명론자 같지?

 

너무 보채지 마.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책의 내용을 말하려던 참이야.  네 표정을 보니 조금 지루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사실 네가 바라는 것처럼 아주 긴 애기를 짧고 간결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  더구나 너는 몹시 지루한 표정인데 말이야.  어떻게 하면 너의 흥미를 잃게 하지 않으면서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아무튼 시작해보자.  1952년의 아프가니스탄. 압둘라와 여동생 파리는 아버지, 새어머니와 함께 작은 마을 샤드바그에 살고 있었어. 날품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아버지 사부르는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그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지.  친엄마를 잃은 압둘라와 파리. 요정이라는 뜻을 지닌 여동생 파리는 그때부터 압둘라의 모든 것이었던 듯했어.  깃털을 좋아했던 파리를 위해 공작깃털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신발을 맞바꾸기까지 했으니 말이야.  파리에게 압둘라는 오빠라기 보다는 부모였던 거야.

 

어느 날 압둘라와 파리 남매는 아버지와 사막을 건너 카불로 향하고, 그때까지 남매는 그것이 평생의 이별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이 소설은 큰 틀에서는 두 남매의 이별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고 있어.  쌍둥이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압둘라의 새어머니 파르와나와 쌍둥이 언니 마수마의 이야기, 파르와나의 오빠로, 부잣집에서 일하는 나비와 그가 사랑하는 여주인 닐라, 나비가 평생을 돌보았던 닐라의 남편 술레이만의 이야기, 미국으로 이민 가서 의사가 되어 안주하는 이드리스와 사촌 동생 티무르의 이야기, 프랑스 혈통을 가진 진보적인 여류 시인인 닐라와 그녀의 양녀인 파리가 술레이만과 헤어져 프랑스에 정착하여 살았던 길고 지난한 삶,  압둘라와 파리가 어릴 적 살았던 샤드바그의 과수원에 대저택을 짓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타락한 전쟁 영웅과 그의 아들 아델 이야기, 전쟁이 끝난 후의 카불에서 구호반원으로 활약하는 그리스인 성형외과 의사 마르코스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어릴 적 개에게 물려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탈리아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노년에 극적으로 재회한 압둘라와 파리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인생 이야기가 문학에서 다룰 수 있는 다양한 형식으로 기술되어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거야.  때로는 회상의 형식으로, 때로는 유언장과 같은 편지의 형식으로.

 

나는 그 중 나비가 마르코스씨에게 남겼던 편지 형식의 인생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  압둘라의 새어머니 파르와나의 오빠인 나비는 카불의 부잣집에서 요리사 겸 운전기사로 일하게 되지.  그가 주인으로 모셨던 술레이만은 처음부터 나비를 좋아했었어.  그래, 맞아.  술레이만은 동성애자였던 거야.  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지만 술레이만은 나비의 일상을 지켜보며 그의 모습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남겨.  어느 날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의 부인이었던 닐라와 양녀 파리가 프랑스로 떠나고 집에는 이제 나비와 술레이만만 남게 되지.  나비가 짝사랑하던 닐라가 떠난 후 술레이만이 자신을 그렸던 스케치북을 발견한 나비는 술레이만을 떠나려고 결심도 했었지만 결국 그는 술레이만이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고 마지막 순간에는 술레이만을 꼭 안아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돼.  그 내밀한 이야기를 나비는 그의 집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친해졌던 마르코스에게 편지로 남긴 거지. 
   

"술레이만은 나한테 결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어쩌면 사람들이 결혼에서 찾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걸 깨닫고 있었습니다.  나한테는 편안함과 벗, 그리고 나를 언제나 환영하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p.174)

 

"나는 반세기가 넘게 술레이만을 보살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와의 교류와 그가 뭘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걸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자, 그 자유가 환영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대부분, 나한테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목적을 찾고 그걸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삶에 목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삶을 살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나는 그걸 다 이뤘으니, 목적도 없어지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p.184)

 

나비는 그가 짝사랑했던 닐라가 프랑스에서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술레이만이 자신에게 물려준 유산을 주인집의 양녀이자 자신의 조카인 파리에게 전해달라고 마르코스씨에게 부탁하지.

 

"나는 그녀가 자살했다는 걸 알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처럼 불행을 느낀다는 걸 말입니다.  은밀하고 강렬하게,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서."    (p.188)

 

프랑스에서 공부하여 수학자가 된 파리는 그녀 자신이 양녀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랐어.  닐라가 그녀의 친어머니라고만 생각했던 거지.  닐라가 죽고, 그녀의 외삼촌인 나비마저 죽은 후 마르코스씨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그녀는 자신의 지워진 어린 시절을 찾으려고 해.  닐라가 죽은 후 파리가 했던 그녀의 독백은 내 가슴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던 것 같아.

 

"어머니, 당신의 자궁에서 잉태되고 자라면서 나는 뭐가 되어야 했나요?  희망의 씨엇이었나요?  당신이 어둠의 늪을 건너기 위해 구입한 표였나요?  당신의 가슴에 난 구멍에 댈 헝겊 조각이었나요?  그렇다면 내가 충분하지 못했죠.  충분 근처에도 못 미쳤죠.  나는 당신의 고통에 대한 진통제도 못 되었고 또 다른 막다른 골목이자 짐이었을 뿐이죠.  당신은 그걸 일찍부터 알아차렸던 게 분명해요.  그러나 당신이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전당포에 가서 나를 팔아버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p.310)

 

어때?  이제 이 소설에 조금쯤 흥미가 생기지? 내친 김에 마르코스의 이야기도 들려줄까?  음... 마르코스는 그리스 태생이야.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자랐어.  어머니에게는 어려서부터 절친했던 친구가 있었지.  둘은 사이가 너무 좋아서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도 곁에서 같이 살자고 굳게 약속했었어.  그러나 배우가 된 어머니의 친구는 개에게 물려 얼굴이 흉하게 된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나.  그 애가 아까 말했던 탈리아야.  탈리아는 마르코스와 한 집에서 자란 셈이지.  누이처럼 말이야.  NGO활동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마르코스를 대신해 탈리아가 어머니를 돌보기도 해.  마르코스는 사실 탈리아 때문에 성형외과 의사가 된 거야. 

 

"나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성형외과 의사로 실습을 시작할 때, 그날 부엌에서 탈리아에게 티노스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라고 할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살과 뼈에 가려진 희망과 꿈과 슬픔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그처럼 단순하고 불합리하고 잔인했다.  나의 환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들의 골상의 좌우대칭, 눈 사이의 간격, 턱의 길이, 코끝이 이상적인 비전두각에 따라 정해지는지 알았다.  아름다움은 임의로, 어리석게 그냥 주어지는 엄청난 선물이다."    (p.464)

 

"나는 지금, 쉰여섯 살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려고 평생을 기다렸다.  너무 늦은 걸까?  우리에게는 너무 늦은 걸까?  우리는, 어머니와 나는 너무 오랫동안 유랑했던 걸까?  나의 일부는 우리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살아가고, 우리가 얼마나 서로한테 안 맞는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덜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때늦은 말보다는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 모른다.  우리 사이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에 대한 어렴풋한 감지.  가슴 떨리는 감지.  그것은 회한만을 가져올 뿐이다.  회한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다."    (p.485~486)

 

이제 내 얘기를 마칠 때가 된 것 같아.  조금 길었지?  하지만 네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뻐.  그나저나 작가는 의사인데 뭐하러 소설을 쓰느냐구?  글쎄, 내 생각에 그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을지도 모르지.  가슴 속에서 흘러 넘치는 애기들을 아마 주체할 수 없었을 거야.  독자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는 꽤나 힘들지 않았을까?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길은 없다.  가령 이 순간이 그렇다.  내 어머니와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같이했던 수많은 순간 중에서, 가장 빛나기도 하고 가장 큰 울림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눈부신 햇살이 그녀의 피부에 반짝거릴 때, 어머니가 고개를 내려뜨린 채 어깨 너머로 나를 올려다보며 알라께서 얼마나 나를 착하고 강하게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묻는 모습이다."    (p.535)  

 

내 기억력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말을 잘하는 달변가였더라면 네게 이것보다는 더 재미있게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네.  하지만 네가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너와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거야.  물론 그렇게 되리라고 나는 기대하고 있어.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가슴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도 몰라.  오늘 내가 들뜬 모습으로 네게 들려주던 이 순간의 기억들도 네 가슴에서 조용히 편집되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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