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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지난 토요일에 아랫동서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오랜 암투병 끝에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철저히 개별적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문학 작품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죽음의 모습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살아 있는 자들은 말과 행동으로써 죽음을 미화하거나 철저히 도외시할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썼던 김훈 작가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살아 있는 자의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누구나 겪는 '상실의 아픔'도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겪게 마련이지만 그 보평성과는 상관없이 각자가 혼자서 슬퍼하는 것이다. 모든 슬픔은 끝끝내 개별적이며, 흐르는 세월 속에서 홀연 보편성 속으로 스며들다가 결국 망각의 늪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상실의 시대>에서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렇다. 여름의 녹음 속에도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던 것처럼.
낮게 드리운 잿빛하늘을 배경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제부터 나는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읽었다. 3년쯤 전에도 나는 이 소설을 읽었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이 책을 읽으면 따뜻한 햇볕이 녹작지근하게 풀어지는 오후에 깊은 단잠에 빠져들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아무런 근심도 없이 말이다. 650쪽에 가까운 작지 않은 책의 볼륨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어쩌면 작가는 평화 속에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삶과 죽음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꼈었다. 그때 나는 '진리'란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통하여 스며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느낌을 말로 풀어헤칠 자신이 없었고, 나는 결국 리뷰를 쓰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리뷰를 쓸 자신이 없다. 나는 다만 잊고 싶지 않은 책의 구절들을 천천히 메모하면서 나의 느낌을 적고자 한다.
"그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가? 누군가가 어떤 일로 그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가?" 매일같이 죽은 이들을 찾아다니지만 이 세 사지만 알 수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유일한 인물로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설령 그 사람이 병자였건, 장애를 안고 있었건, 직업이 있었건 없었건 간에, 또 인생 경험이 적은 아이 혹은 갓난아기라 하더라도 이 세 가지 질문의 답만 갖추면 어떤 형태로든 만족스럽게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죽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한 가지라도 좋으니 답을 찾아내 가슴에 새긴다. 때로는 억지나 오해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원래 그런 억지나 오해들까지 쌓여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니,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p.265~p.266)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현상으로서만 기억할 뿐 그가(또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살다 갔으며, 그로 인해 그의(또는 그녀의)삶은 우리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사건이 그 자체로서 엄청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의 삶을 살아 있는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 시즈토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편협된 시각을 지적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언어와 물건으로 사체를 장식하고, 그로 인해 고인에게 영원성을 부여하려고 하거나 그 인생에 점수를 매기려 해. 인간이 사는 이유는 사랑도 꿈도 아니야. 세포의 힘이지. 원생동물과 같은 세포의 탐욕스러운 생명력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고. 인간이라는 종을 존속시키기 위해 발달한 뇌가 이른바 부작용을 일으켜 짚신벌레 같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하고, 사랑이나 일 때문에 사니, 신이나 부처님 같은 성스러운 존재 덕분에 사니, 하고 어리석은 핑계를 만들어낸 거지. 뉴스를 오 분만 보면 그런 변명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어.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세포는 원하는 것을 뺏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먼저 공격하는 쪽으로 작용해. 이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증명된 진리인데,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망상으로 도망쳐. 그럴듯하게 생을 포장하고 죽음을 장식해. 아마 개죽음을 두려워하는 거겠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것,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원생동물의 죽음과 똑같은 것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두려운 거지." (p.351~p.352)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사쿠야의 말이다. 소설에서 사쿠야는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아내인 나기 유키오는 그렇게 한다. 그의 아내 유키오가 4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후 주인공 시즈토와 동행할 때 사쿠야는 혼령이 되어 아내 유키오에게 등장한다. 삶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쿠야에게서는 허무주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태어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신이 '애도하는 사람'이 된 데는 가족과 환경, 인생의 상처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 당신도 분명 모른다. 그렇게 보였다.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세상에 만연한 이런 부담감이 쌓여서, 그리고 그것이 차고 넘쳐서 어떤 이를, 즉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신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 말고도 '애도하는 사람'이 태어나 여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이유로 죽었건 차별하지 않고, 사랑과 감사에 관한 추억에 따라 가슴에 새기고, 그 인물이 살아있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걸 원하니까...... 적어도 지금 난 당신을 찾고 있다. 만약 살아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아도, 꼭 '애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할 텐데." (p.431~p.432)
소설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마키노의 말이다. 마키노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악덕 기자로 나온다. 그의 기사는 조작도 서슴지 않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이었지만 시즈토를 우연히 만난 후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위에 적은 말은 그가 조직 폭력배에 의해 보복을 받고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 그가 한 말이다. 아무리 악한 인간도 죽음 앞에서는 삶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시오도 변비가 더 신해져 고생하고 있었다. 모녀가 식탁에 앉아 변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극히 일상적인 화장실 문제로 고민하는 서로의 모습에, 죽음에 관해서도 탄생에 관해서도 폼나게 말해봐야 소용없어. 인간도 생물이니까 동물이니까 하며 깔깔거렸다. 참 이상한 데서 마음이 통한다 싶었다." (p.440)
(어쩌면 그날의 광경이 그 아이 마음에 새겨졌을지도 몰라. 주목받지 못한 죽음, 아무도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 죽음이 있다는 현실을 알고, 죽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은데 어째서! 하는 슬픔과 함께...... 그 일이 지금 그 아이에게 전국을 걷게 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좋을까.)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조부모의 죽음과 소아 병동 아이들의 죽음, 소중한 친구의 죽음...... 다만 어떤 사람의 죽음을 그 연유에 상관없이 똑같이 애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히로시마를 맞은편에 둔 이 모래사장에서 많은 피서객들의 웃는 얼굴에 둘러싸인 가운데 처음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p.476)
위의 두 대목은 주인공 시즈토의 어머니이자 끝까지 시즈토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카쓰키 준코의 말이다. 준코는 암 말기 환자로서 자신에게 남겨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남편과 딸 미시오와 함께 집에서 지낸다. 시즈토의 여동생인 미시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림을 받았다. 그녀의 오빠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준코는 임신한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낀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이어지나 보다.
"인생의 본질은 어떻게 죽었나가 아니라, 사는 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p.551)
죽음에서 간신히 살아난 마키노의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말은 내 가슴에도 메아리처럼 남았다. 삶이 가득한 세상이다. 그림자처럼 죽음 또한 가득한 세상이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자의 말이나 장식에 의해 화려하게 장식되고 기억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죽음과 동시에 잊혀지기도 한다. 죽어서도 인간은 평등하지 못한 것이다. 그 쓸쓸함을 달래기에는 이 책 <애도하는 사람>이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