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6시 30분
아침에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같습니다.
일정한 시각,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죠.
오늘도 그랬습니다.
산의 능선에서 만나는 할머니와 그녀의 딸.
검은 선캡을 쓴 모습도 다른 날과 같았습니다.
오늘은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한 분도 만났습니다.
자주색 생활한복에 중절모까지 갖춰 입은 폼세가 범상치 않습니다.
게다가 운동화는 벗어 한 손에 쥔 채 맨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내린 비로 바닥은 촉촉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할머니 왈,
"길 닦아 놓으니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더니...
내가 지금껏 살아보니 속담 틀린 거 하나 없더라."
이 말에 딸은 옆에서 소리가 나도록 크게 웃었습니다.
#2 낮 12시 30분
점심을 먹으러 자주 들르는 식당에 갔었습니다.
왁자한 분위기의 식당은 손님들로 만원이었죠.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마쳤을 즈음
내가 앉은 테이블의 바로 옆에는
부부 또는 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주문을 하고는
이내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주문한 식사가 나왔는데도 쉽게 게임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들은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3 낮 1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봄비가 꽤나 요란하게 내렸습니다.
바람도 불고, 빗줄기도 굵고.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보도 위를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감기들텐데..' 생각했습니다.
분홍색 우산을 받쳐 든 어린 여학생이 인사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쯤의 아주 어린 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얼떨결에 어색한 인사를 합니다.
"그래, 안녕?"
아이는 그 길로 또 저만의 생각에 빠져듭니다.
길가의 풍경들에 이것저것 관심을 두면서.
어쩌면 '어린왕자'가 '어린공주'로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풍경일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항상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그들은 3인칭의 '그'와 '그녀'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