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 그가 구한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The Earth)’였다!
로렌스 앤서니 지음, 고상숙 옮김 / 뜨인돌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  딱 십 년 전 오늘이었어.  TV 화면에선 밤하늘을 가르는 녹색 섬광이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번쩍였고, 스포츠 중계를 하듯 과한 아드레날린으로 새된 목소리의 기자는 밤하늘의 별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날카롭게 외치고 있었지.  화면 밖으로 기자의 더운 입김이 뿜어져 나올 듯한 밤에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먼 나라의 소식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전쟁은 허무맹랑한 이유와 함께 시작된다.  그것은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의사와는 무관한, 안락 의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는 명령권자의 몫이었다.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Fredom of Iraq)'!  그것이 비록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복수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무자비한 폭력은 전쟁광 부시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충분했다.  그는 이제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그 전쟁에서 사망한 13만 4000명의 민간인에 대한 사과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때의 기억을 회색빛의 어슴푸레한 실루엣으로만 남게 했다.  먼 나라의 얘기였고, 먼 과거의 기억일 뿐이라는 듯 이라크의 사막에도 지금쯤 작열하는 태양이 그때의 기억들을 거둬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의 희미한 기억을 되새기며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를 읽었다.  님이프리카공화국의 환경보호운동가 로렌스 앤서니도 나처럼 CNN의 뉴스를 보고 있었나 보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두 눈을 거의 실명한 사자 마르잔을 보았다고 했다.  나라면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그 한 순간의 장면이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걸 이유가 되었나 보다.  사람의 목숨도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전쟁터를 향해, 그는 오직 동물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지를 향해 달려갔다.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진 끔찍한 현장에서 버려진 물건처럼 나뒹굴던 동물들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나 보다.

 

"나는 이라크에 온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단지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리 지구에 더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인 기준, 윤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러한 깨달음과 더불어 나는 우리가 모범사례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책임감 있는,나아가 영향력 있는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곳이 바그다드라고 여겼다."    (p.156)

 

모두가 이라크를 빠져나가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쿠웨이트에서 빌린 렌터카를 타고 이라크로 들어가려는 백인 남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동물원의 모습은 처참했다.  벽의 일부는 폭격으로 무너져 있었고 남은 벽에는 수많은 총격의 흔적들이 있었다.  전기도, 식수도, 식량도 끊긴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파리 떼와 썩어가는 사체들로 시궁창이 된 바그다드의 동물원은 그야말로 지옥의 모습이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오직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저자는 당시 광경을 보고 차라리 총을 하나 사서 동물들을 하늘나라로 고이 보내주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앤서니는 자비를 털어 동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오물과 사체를 치우고, 약탈자들을 막아내며 사막에서의 끔찍한 날들을 겪는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바그다드의 동물원 식구들이 목숨을 걸고 그를 도왔고, 안타까운 현실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많은 군인들과 기자들의 도움으로 동물원은 점차 안정을 찾았다.  전 세계에 그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구호품과 구호자금이 속속 도착했고, 그는 사담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가 기르던 사자들을 구출했고, 위험천만한 지역 아부그라이브에서 사담 후세인이 기르던 아라비아 종마들을 무사히 동물원으로 데려오는 등 6개월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동물원은 정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2007년 7월 17일, 바그다드 동물원은 다시 문을 열었다.

 

바그다드에서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아 남아공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으로부터 '지구의 날 메달'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그때의 경험 이후 '지구 기구'라는 환경.동물보호단체를 운영하게 되었다.

 

"내가 바그다드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문명화된' 인간이 야생동물을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악행이 지구에 가해지고 있을까?  우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이 멸종해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의 멸종은 곧 먹이사슬의 중요한 고리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략)...자연이 지구, 그리고 그에 의존해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와 이렇게 역동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까지는 수십억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단 100년 만에 그 균형이 깨질 위험에 봉착한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범인을 지목하는 손가락은 모두 한곳, 즉 인간을 가리키고 있다."    (p.334 - 335) 

 

바그다드의 작은 동물원을 구한 것처럼 지구라는 거대 동물원을 구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진심을 이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연대만이 위기에 처한 지구 동물원을 구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전쟁과 탐욕으로부터 지구 동물원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종말을 행해 나아갈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