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십서 1 : 손자병법, 오자병법 - 중국의 모든 지혜를 담은 10대 병법서
신동준 역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지 뚜렷이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학 책을 즐겨 읽게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기껏해야 "꿈의 해석" 정도를 읽어보았을 뿐, 그것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말이다.  내가 심리학에 빠져든 것도 기실 2009년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불어닥친 심리학 열풍에 나도 모르게 편승한 것이 주된 계기였지만 쉽게 사그라질 줄로만 알았던 심리학의 매력은 올해로 벌써 그럭저럭 3년이 되어가고 있다.  꺼질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잔불처럼 요즘도 나는 생각날 때마다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곤 한다.

 

내가 읽었던 심리학 서적은 대학이나 연구목적을 위한 전공서적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떤 전문적 깊이를 논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요, 학문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독서도 아니었지만 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영역으로 내 관심의 폭이 조금씩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가령 종교단체에서 주관하는 힐링 프로그램이나 템플 스테이, 또는 심리학 강의와 같은 색다른 것에 호기심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귀차니즘의 전형인 내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새로운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Curiosity killed the cat.'이라는 속담이 생각나 두렵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슬금슬금 영역을 넓혀가던 중 나는 우연찮게 병법서를 만났다.(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것도 한참 전인데 그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유행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인문학 서적을 이제야 알아보다니!)  심리학 서적과 병법서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고 뜬금없이 병법서를 들먹이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 서적이 주로 다양한 인간 심리를 케이스 바이 케이스식으로 다루는 데 반해 병법서는 인간 심리의 기저에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심리를 다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즉, 시시때때로 변하는 피상적 심리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변의 심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공통의 심리를 다룬 책이 병법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실수로 인해 백두난간 황천길로 떨어지고마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는 데 그 무엇보다 유용한 것은 상대의 심리가 아니었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일상에서의 피상적인 심리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앞에 둔 자의 본원적 심리, 아프게 응시하고 있는 자기 내면의 심연, 극한의 상황에서 마주치게 되는 원초적인 본성이 바로 그것이다.  병법서는 탈출구가 없는 천애절벽의 끝에서 만나는 인간의 절박함을 다룬다.

 

나는 병법서를 읽을 때마다 좀 더 겸손해지는 느낌이 든다.  남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 내 속에도 약간의 비겁함과 비열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 우쭐할 것도 없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 그런 여러 가지 상념이 오가곤 한다.

 

<무경십서>는 병법서의 집대성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손자병법>, 오자서의 <오자병법>, 사마양저의 <사마법>, 그 외에 <울료자>, <당리문대>, <육도>와 <삼략>을 "무경칠서"라 하고, 이에 더하여 <손빈병법>, <장원>, <삼십육계>를 더하여 "무경십서"라고 한다.  작가 신동준은 <손자병법>을 필두로 무경십서 전권을 다루고 있다.  병법서를 원문과 함께 해석하고 해설을 덧붙인 형식이다.  자칫 따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고전의 이미지를 불식시키 듯 현대적인 사례를 부록으로 첨부하여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제 겨우 그 제1권을 읽고 웬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깊은 지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제1권에는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이 나온다.  심리학의 '심'자도 몰랐던 그 옛날에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혜안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적이 편히 쉬고 있으면 심리전 등으로 피로하게 만든다.  배불리 먹고 있으면 식량을 탈취하는 등 굶주리게 만든다.  안정된 곳에 영채를 세워 굳게 지키고 있으면 기습공격 등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P.359)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 옛날의 병법서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본심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칼싸움이나 하던 원시시대의 전쟁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나의 마음과 적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결국 병법의 요체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도의 측면과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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