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가까운 공원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말매미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올 들어 처음 듣는 매미 소리.

가슴이 설렙니다.  언제나 처럼 '처음'이라는 말은

콩닥콩닥 가슴을 뛰게 합니다.

바야흐로 성하(盛夏).

 

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녀가 양산을 받듯 해 보인

마타리꽃도 없는 거리에서

다리엔 한 근의 힘이 붙습니다.

 

나는 이 힘으로 나른한 오후의 권태를 이기고

또 하루를 살아낼 겁니다.

 

유리창엔 오후의 나른함이

알갱이로 부숴지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어의 소녀도 없는 빈 하늘엔

매미 소리 가득하고

어제 못 다 읽은 책을 다시 펼쳐도

번번이 헛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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