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면 헉헉대는 숨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 듯하다.  무더운 날이었다.  옆에 앉은 사람의 열기가 훅훅 느껴지는 듯했다.  간간이 불어 오는 바람마저 없었다면 호수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입만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길게 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권태에 지친 오후는 시간의 모노레일을 천천히 미끄러져 흐른다.  대책이 없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요즘 들어 부쩍 재미를 붙이고 있는 물리학책에도 도무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러서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빌렸다.  책을 들고 들뜬 마음으로 나오려는데 한 권만 빌리기는 뭔가 아쉬운 듯해서 다시 서가를 맴돌다가 찾아낸 책이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였다.  한번쯤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빌려 도서관을 나섰다.

조금 더 있다가는 도서관 전체의 책을 탐낼까 두려웠다.  도서관 옆의 작은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했다.  머리꼭지가 이글거리는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는 이미 산책 나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비집고 앉을 틈이 없어 보였다.  미련이 남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여전히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컴퓨터 열기도 무시하지 못하겠어서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제 여름의 초입인데 앞으로 견딜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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