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면서 이벤트에는 딱히 관심도 없었고, 워낙 게으른 탓에 마음먹은 바를 제대로 실천도 못하는지라 매번 '소 닭 보듯' 지나쳤던 내가 최근 며칠 동안 한 사이트에서 주관하는 리뷰 대회에 세 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렸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숫자를 갖고 씨름하는 나의 업무상 점점 정서가 메말라간다는 자각을 아니할 수 없었고, 그래서 블로그를 일종의 '영혼의 방부제' 역할로 삼아 숨통을 틔워보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이벤트는 자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세 개의 이벤트를 연달아 참가하다니...

 

지난 달의 어느 날, 직장의 후배와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후배가 뜬금없이 리뷰대회 얘기를 꺼내며 한번 참가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소에 후배나 나나 직장에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후배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고 난데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직장내에서는 블로그 접속을 금하는 까닭에 후배가 왜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 그 출처가 궁금했다.  후배는 내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듯했다.

 

후배의 감수성이 미덥지 않았던 나는 왜 그런 제안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 대상이 왜 나였는지 다그치듯 물었다.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던 후배가 식은 숭늉처럼 내뱉은 대답은 사는 게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제까지는 참 재미있게 살았는데 오늘 갑자기 있던 재미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식이다.  여우비에 맑게 드러난 하늘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과 전공자가 대부분인 우리 부서에서 문과 전공자를 찾다 보니 내가 눈에 띄었고, 나라면 이런 제안을 해도 자신을 '미친 놈' 취급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그냥 재미삼아 하자고 하면 안 할지도 모르니 내기를 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둘 중 하나가 당선이 되면 떨어진 사람이, 둘 다 당선되면 그 순위에서 밀린 사람이, 둘 다 떨어지면 각자 돈을 내어 저녁을 먹기로 하자는 제안.  그래야 적극적으로 글을 쓰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책도 읽고 가끔 글도 쓸 수 있지 않겠냐며 떨떠름해 하는 나를 부추겼다.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따라 나서는 경우가 있다.  미적거리던 겨울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것처럼.  그 다소곳함에 이유를 묻는 것은 참 부질없다.  나는 후배의 제안에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승낙을 했고. '배신자'의 낙인이 두려워(?) 글을 올렸다.  아직은 젊디 젊은 후배는 이제 사는 게 재미없단다.  그러나 조금 더 세월이 가면 곁에 뉘를 두지 않아도 지난 세월의 숱한 경험을 떠올리며 종일이라도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수북한 경험들을 닳을새라 아껴가며 떠올리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오고야만다는 것을 후배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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