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중 올해 수능을 치르는 세 명의 아이들과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조촐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여학생 두 명과 한 명의 남학생.  내가 아는 그 아이들은 식성도 좋고, 성격도 밝은 아이들이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밥을 앞에 놓고 깨작거리기만 할 뿐 예전처럼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여도 그 지난한 세월을 견디기 어려울텐데 아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인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면 이 아이들로부터 '그때가 좋았다' 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금세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서둘러 아이들을 돌려 보냈다.  바람이 거셌다.
나는 아이들에게 "요 모퉁이만 돌면..."이라는 희망 섞인 말은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번에는... , 이번에는...'하면서 많이도 속아왔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수능시험 잘 치르라고 이르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발 부자는 되지 말아라'하는 말을 여러번 했었다.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어른이 되면 부자로 살라는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그들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요, 악담을 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었다.  어줍잖게도 나는 그 근거를 물리학에서 찾았다.  우주 탄생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빅뱅 이론에서 보면 밀도와 에너지가 높았던 빅뱅 초기의 고에너지 원시입자는 서로 결합하여 물질을 이루지 못하는 '쿼크-글루온-플라즈마'상태를 유지했었다.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보다 낮은 온도와 에너지에서나 가능했었다.

이런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까닭은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이 있으면 '든든하다'고 한다.  즉 돈은 현대인에게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원이요, 삶의 기반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자연계의 입자들도 에너지가 너무 높으면 서로 결합하지 못하듯이, 사람에게도 돈이 너무 많으면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할지 모른다.  사람도 자연계의 일부이니 이러한 자연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입자는 서로 결합하기 이전에는 물질이라 말하기 어렵다.  하물며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어쩌면 실존하는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터티를 상실한 채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부자가 아니라서 일종의 열등의식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참살이는 이웃과 어울려 그 속에서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라고 규정할 때, 부자는 그 기회를 상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니르바나'나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이러한 깨달음의 상태가 아닐까?
그래서 성경에도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씌어졌나 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지 못한다면 어찌 '극락'이나 '천국'을 욕심낼 수 있으랴.  그래도 부자가 되고 싶다면 <티벳 사자의 서>를 읽어볼 일이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제발 부자는 되지 말아라."

수능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건만 나는 그 아이들에게 전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은 잘 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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