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네게 편지를 쓰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블로그에는 딱 6개월이 지난, 소인도 찍히지 않은 편지가 미래의 편지 주인을 기다리며 손을 내밀고 있다.  어느새 가을이란다.  망각의 속도가 미래의 두려움보다 늘 한발 앞서는 네게, 언제나 현재는 달콤한 배추 속고갱이 같은 네게 이렇게 한 통의 편지를 쓰는 일이 내게는 명상처럼 고요한 평화요, 나무 울창한 숲그늘이었단다.
 

아들아
 

어제는 네가 태어나 처음으로 안경을 맞춘 날이었지.  네 시력이 더 나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나와 네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너는 잘 보여서 너무 좋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땀이 나면 불편하겠지 하는 네 말은 들뜬 목소리 탓이었는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의 염려라고는 믿기지 않았단다.  한결 마음이 놓이더구나.  초등학교 2학년인 네가 벌써부터 안경을 끼고 생활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쩌겠니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레고와 독서를 부모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마저 금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 않겠니?
 

아들아
 

오늘은 너와 '삶'에 대해 말하고 싶구나.  무거운 주제라고?  그렇구나.  하지만 가을이잖니.  이 편지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성급한 나는 이렇게 미래의 너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게 된단다.  어쩌면 삶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단다.  네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스파이 가이드북>을 읽는 것이라면 이해가 빠를까?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힌트를 찾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너만을 위해 준비한 하느님의 질문에 답하면 된단다.
 

아들아
 

네가 잘 알지 못하는 미래를 염려할 필요는 없단다.  지금처럼 너는 현실의 기쁨을 소중히 껴안고 문득 떠오르는 지난 일에서 질문의 힌트를 발견하면 된단다.  그 질문을 아직 받아본 적이 없는 나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정답에 대해 네게 살짝 귀띔을 하자면(이것은 어쩌면 천기누설로 벌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이렇단다.  너는 모든 문제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꾹꾹 눌러 쓰면 정답이 될 듯 싶구나.
 

아들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유난히 비가 많았던 이 여름이 지난 며칠 사이에 저만치 물러가고 있구나.  파란 가을 하늘에 깔깔대는 네 웃음이 양털구름처럼 걸려있단다.  이 소중한 시간에 너를 그리며 편지를 쓰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아니 할 수 없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