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날씨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날씨가 풀리자 서둘러 운동을 결심했던 사람들은 벌써 그 기세가 꺾였는지 아침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고, 며칠 사이에 큰 결심을 하고 운동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자연도, 사람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

운동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은 동짓달 한나절만큼이나 짧은 초가을 무렵과 지금 이맘때쯤이 아닐까?  사람들은 겨우내 불린 체중을 겨우겨우 감당하며 너도나도 봄산을 오른다.
그러나 사시사철 운동을 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이 계절이 전혀 마뜩지 않다.
아침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나날이 짙어가는 녹음은 그저 반갑지만, 새로이 등장한 신참(?) 등산객의 왁자한 소음에 오롯이 즐기고픈 계절의 낭만을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짧은 계절의 금쪽같은 시간이 마냥 아쉬울 수밖에 없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산의 초입에서 다른 날과는 달리 까치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근처를 둘러보니 이제 막 비상을 연습하는 어린 까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 새끼 까치를 집어 들어 나뭇가지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높은 데서 지켜보던 어미 까치는 내가 마치 제 자식을 금방이라도 해칠까 두려웠는지 악을 쓰며 울어댔다. 나는 괜한 걱정을 끼쳤다 싶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내가 어미 까치의 시야로부터 멀리 사라질 때까지 까치의 울음소리는 멎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건만 오늘 아침에도 까치는 나를 보자 큰 소리로 울어댔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바닥만 보고 걸었다.  내가 산의 중턱을 오를 때까지 따라오던 까치는 그제야 원래의 위치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번의 괜한 참견이 까치와 나 사이에 깊은 앙금으로 남은 듯하여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항상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런 도움도 필요치 않은데 괜한 참견을 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던 나처럼, 자연을 자연 그대로 놔둔 채 그저 멀리서만 바라보면 좋을 것을 인간의 손길이 한번이라도 더 닿아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인간의 오만함이 내 유전자 속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수록 더욱 빛난다.

오늘도 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객들의 왁자한 소음에 나는 그들을 대신하여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진실로 자연 앞에 고개를 들 자격이 없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대자연의 품에서 겸손한 자세로 예의를 갖출 수 있을까?
그날이 정녕 오기나 할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