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이었다.
고등학생들 수학 강의를 마치고 아이들이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나는 그 잠시의 짬을 헛되이 버릴 수 없어 뒷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로 했다.
늘 잠이 부족한지라 짬짬이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은 금세 난장판으로 변한다.
가끔 여학생들이 청소를 거들어 주겠노라 팔을 걷어붙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피곤에 지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마저도 거절하게 된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돌아간 후 건성건성 정리를 해도 새벽 한 시는 되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면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주섬주섬 빨래를 걷다가 밖을 내다보니 젊은 남녀가 심하게 말다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사는 숙소는 아파트 단지내에서 가장 뒷쪽에 위치해 있고, 뒤로는 작은 산책로가 있다.
아침이면 그 산책로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지만, 밤이면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 불빛으로는 조금 어둡다 싶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통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 호젓한 길에서, 더구나 자정이 가까워 오는 한밤중에 그들의 모습은 내 시선을 붙잡을 수 밖에 없었다.  빨래를 걷다 말고 잠시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니 여자는 분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는 듯 보였다.  그런 여자를 뒤로 하고 떠나려는 남자와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여자.
잠시 동안 그렇게 실갱이가 벌어졌고, 한 순간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감싸더니 갑작스레 진한 키스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빨래를 걷으러 나왔던 본연의 임무를 빨리 마쳐야겠기에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들어와 빨래를 내려 놓으며 한 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웬 사람들이 가로등 밑에서 뽀뽀를 하네.  이 늦은 시각에..." 했더니 사내 녀석들은 불에 데인 듯 자리에서 벗어나 뒷베란다로 몰려갔다.
빨리 들어오라고 해도 좀체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밖을 주시하던 아이들 중 한 녀석이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 그 가엾은 청춘남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안에서 문제를 풀던 여학생들은 남자 아이들을 향해 '변태같애'라는 말을 되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 아이들은 유난히 '변태같다'는 말을 자주 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갖가지 상황에도 그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사내 녀석 중 하나가 뽀뽀를 하던 남자가 자신의 친구 같더라는 말을 하자 아이들은 또 그 아이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정말이냐며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냥 두었다가는 아침이 될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을 기세였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로 옆집 사람들이 혹시 잠이라도 깰까봐 나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보냈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보며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짖궂었던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번진다.
학교를 오가는 길목 어귀에서 흘레개라도 발견하면 돌을 던지거나  찬물을 끼얹으며 낄낄대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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