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어찌나 올랐는지 요즘은 지갑을 열기가 두렵다.
정부는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7%로 발표했지만,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효과를 제외하면 무려 5%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 수치일 뿐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오른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사업을 했던 때가 있었다.
 빠듯한 자본금으로 시작한 탓에 나는 언제나 돈에 쪼들렸고,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했던 나는 그 난국을 어찌 헤쳐가야 할 지 난감하기만 했었다.  늘 고민을 달고 살던 내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교회에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금전적 스트레스도 조금 덜고, 인맥을 형성하여 매출도 늘려보자는 심산이었다.  어려서 성탄절이 아니면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던지라 주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간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헌금 수거함을 투명한 것으로 바꾸자는 말씀이 있었다.  딴에는 헌금의 액수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내자는 것이었는데 나와 같이 얄팍한 심산으로 출근하듯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 부담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적은 액수의 돈으로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는데 투명한 헌금통으로 바뀌면 체면상 그마저도 어렵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있었던 다음 주일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그 수가 현격히 줄었었고, 그 일을 계기로 나 또한 교회에 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다 어느 순간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사업에서도 손을 떼었고 교회와는 영영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때 그 교회의 헌금통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지갑의 월급쟁이로 산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이 지난 해에 비해 얼마나 더 늘었느니 하는 발표를 들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지난 달 물가가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깨가  처지는 그런....

현 정부 출범 후 3년간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주요 경제국 중 한국의 환율상승률(통화가치 하락률)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의 대기업 수출 지원을 위한 고환율정책이 물가 급등을 불렀다는 일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증이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인위적이거나 최소한 ’묵시적인’ 고환율 정책이 대기업의 배를 불려주었는지는 몰라도 소비자물가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분개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특정 환율을 목표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정부가 그동안 사실상 1100원선을 ’마지노선’으로 삼아 시장 개입을 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위기 이후 150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2009년 하반기부터 점차 안정됐으나 1100원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물가대란’이 현실화하면서 고환율 기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4월 재보선까지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어느 정도 환율 하락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여전히 올해 5% 성장률을 고집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수출 증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가 ’고환율 기조’를 완전히 포기하고 큰 폭의 환율 하락을 용인할지는 미지수다.  그럴 경우 우리는 방사능 낙진과 함께 고물가의 폭탄을 피할 수 없다.

며칠 전 발표된 통계청의 사망통계자료에 의하면 직업별 수명에 있어 종교인이 80세로 1위, 정치인이 75세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고물가와 고실업, 극심한 소비침체의 시기에도 스트레스 없이 지갑을 불릴 수 있는 직업은 역시 종교인과 정치인 밖에 없는 듯하다.

이 참에 나도 수능을 다시 치뤄서라도 신학대나 정치학과를 택해야 하나? 하는 현실성 없는 상상을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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