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숙소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럴 때면 납덩이처럼 무거운 피로가 방안 곳곳에 제멋대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피곤한 내색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공부로 지친 아이들에게 나의 피로까지 얹어줄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언제나 기운이 넘쳐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어쩌면 선생이란 위치는 가르치는 일보다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 드디어 터질 것이 터져버렸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아이. 틱 장애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게 되는 그 아이는 오늘도 다르지 않았고, 학교에서와는 달리 아무도 놀리지 않는 분위기여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처음보다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
중학생들의 수업을 마칠 즈음 다른 아이들의 불만이 봇물이 터지듯 터져나왔다.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불만과 함께 그 아이가 계속 나온다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원칙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지만, 어느 누구라도 본인 스스로 개선할 수 없는 신체적 약점을 갖고 다른 친구를 놀려서는 안된다는 것.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 아이는 더 이상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내 방침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원칙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내 원칙을 감히(?) 깰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일주일을 버텨왔었나 보다.
어쩌면 그것이 무료로 배우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쌓인 불만을 모두 듣고는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수업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같이 하겠지만 자습을 할 때는 그 아이만 따로 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이 문제로 틱 장애를 가진 그 친구를 따돌려서는 안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다른 아이들의 불만을 조용히 듣기만 하던 그 아이를 따로 불러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장애를 딛고 큰사람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는 순간 그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될 수 없는 법이라고 일러주었다. 어쩌면 자신의 신체적 약점으로 인해 그 성과가 더욱 빛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중학생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끝낸 고등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나는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 몸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성인이 아닌 아이들이다. 배울 것도 많고, 참고 인내할 것도 많은 나이.
나는 그 아이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사람임을 절감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 표정을 바꾸고 고등학생 수업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던지...
주말을 쉬고 다음주가 되면 오늘의 일은 이 밤처럼 까맣게 잊혀지기를...